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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 ming Nov 30. 2022

안녕 포르투갈

2022년 10월 27일


리스본의 조식이 지난 포르투 조식보다 좋은 점은 메뉴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호스텔 부엌


시리얼, 견과류, 토스트,  각종 티와 잼, 우유, 과일들... 먹고 싶은 취향대로 담아 먹을 수 있다.


조식


와플과 에그 스크램블은 직원이 직접 만들어주기 때문에 더 인기가 많은 메뉴다. 내가 묵은 굿모닝 솔로 호스텔은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혼자인 여행객이 많다. 혼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투숙객들은 자연스레 친구가 된다. 둥근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조식을 먹으며 스몰 톡을 해보는 귀한 경험. 이것이 많은 청춘들이 호스텔을 찾는 이유이자 내가 호스텔을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다.


원래 오늘의 일정은 리스본 근교 도시 '신트라'를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시가 걸린 Y의 목 염증이 약 없이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목이 아프니 열도 나고, 머리도 아프고... 몇 개월 전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목 아픈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해 가는 나였기에 내가 먼저 신트라를 포기하고 리스본 시내 구경을 하루 더 하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Y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리스본 대성당


의도는 아니었지만, 리스본을 구경할 수 있는 하루가 더 주어졌다. 어제 28번 트램으로 빠르게 지나친 리스본 대성당을 제대로 구경하고 싶어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포르투 대성당이 너무 좋았던 것일까. 수도의 대성당이라 하기엔 규모가 작았고, 성당 내부도 여느 성당과 비슷해서 특색이 없었다. 사람들의 접근성과 결속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시내의 중심에 위치시킨 탓에 전망대도 없어 아쉬웠다.


아센소르 다 비카


Y는 리스본의 상징인 노란색 트램을 찍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녀가 알아낸 포토 스폿은 'Ascensor da bica'라는 곳. 여기서 운영되는 교통수단은 정확히 이야기하면 트램이 아닌 '푸니쿨라'이다.


푸니쿨라


정류장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깔끔하게 노란색과 흰색으로 도배된 푸니쿨라가 내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푸니쿨라의 천천한 움직임과 경적소리,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해주시는 여성분. 이 모든 게 한 데 어울려져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위에서 내려가는 푸니쿨라


낮은 계단을 여러 차례 올라오다 보면 어느새 푸니쿨라 길의 꼭대기에 다다르게 된다. 여기서 사람을 태워서 다시 내려가면 그곳에 또 다른 사람을 태우는 방식이다. 편도로 3.8유로인데 길이 짧은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리스본 교통패스가 있으면 할인 가능하다.) 그래서 Y와 나는 사진만 열심히 찍고, 정작 타지는 않았다는...


영국식 국제 학교 맞은편의 음식점


약을 먹기 위해 뭐라도 음식을 먹어야 하는 Y를 위해 푸니쿨라 근처 크림 브륄레를 파는 가게로 향했다. 맞은편에 영국식 리스본 학교가 있었는데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학생들이 하나둘씩 들어가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Y는 크림 브륄레를 나는 새우요리와 cafe solo(에스프레소), 크림 브륄레를 시켰는데 맛이 다 괜찮은 편이었다. (새우가 짭짤해서 커피보다 맥주가 더 잘 어울렸을 것 같긴 했지만)


분명 우리가 밖에 자리를 잡을 때만 해도 테이블 하나에만 손님이 있었는데, 어느새 사람이 몰려 대기줄까지 생겼다. 우리가 홍보효과를 낸 것일까? 아니면 원래 맛집이었던 것일까? 알 수는 없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음식을 다 먹고도 영수증을 받기 위해 20분을 기다려야 했다. 유럽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종업원을 손짓으로 부르면 큰 실례가 된다. 테이블마다 벨이 있고, 계산을 하기 위해서 포스트기에 먼저 가 있는 빨리빨리 문화를 가진 우리로선 약간의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것이 그들의 문화이며 존중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종업원과 눈을 맞추려고 애를 썼다. 문화 차이를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도 당연한 여행의 일부분이니까.


유럽 모델의 화보 촬영


몸이 더 악화된 Y는 결국 숙소로 돌아가 쉬기로 결정했다. 당장 병원을 가기에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미친 병원비와 언제 치료를 받을지 모르는 유럽의 느려 터진 예약시스템이 문제였다. 여행, 특히 해외여행에서 다치는 것은 정말이지 최악을 넘어선 죄악이다. (새삼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감사함을 느낀다.)


하는 수없이 나는 혼자 여행을 재개해야만 했다. 1,2일 차에 자세히 보지 못했던 리스본 시내의 거리 곳곳을 누비는 중 분수에서 물을 맞고 있는 한 모델을 발견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녀는 옷에 물을 흘려보내고 있었고, 사진작가는 이를 열심히 담아냈다. 길을 걷다 마주하는 특별한 장면은 내가 외국, 그것도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있음을 환기시켜준다.


Cartier 매장


혼자서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가 브라질 친구 휴고가 추천해준 신시가지의 '에드아르두 7세 공원'을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대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명품거리가 나오는데 웬만한 럭셔리 명품 브랜드는 이곳에 다 있다.


폼발 후작 광장


리스본의 현대화적인 건물들을 지나면 한눈에 봐도 눈에 들어오는  '폼발 후작 광장'이 등장한다. 동상을 둘러싼 원형 로터리는 광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무너진 도시를 재건하는데 큰 공을 세운 폼발 후작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잔디 정원


폼발 후작 동상에서부터 에드아르두 7세 공원이 시작된다. 공원의 규모는 매우 크고 넓어서 생각보다 더 볼거리가 많았다. 기하학적인 미로 모양의 중앙 잔디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전망대가 등장하는데 그곳에 털썩 걸터앉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날아갈듯한 치마를 움켜잡고서 잔디 정원과 동상,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테주강까지. 아주 오랫동안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겼다.


미대생으로 보이는 학생들


멍하니 힐링하다가 문득 에어팟을 뚫고 들려오는 말소리. 교수님으로 추정되는 한 사람이 열심히 학생들에게 잔디 정원을 가리키며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이내 스케치북을 펼치더니 그림을 쓱쓱 그리기 시작했다. 분명 과제이겠지?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그릴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들을 쳐다보니 지난 대학교 3년의 내가 생각이 났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아등바등 공부하고, 방학 때는 연구실에서 일하며 적성을 깨달아가는 나. 잘할 수 있는 일(can)과 원하는 일(want)의 괴리에서 생기는 무수한 고민을 저들도 하겠지. 언어와 국적은 달라도 대학생은 꽤 힘든 직업(?)이다.


공원에서 더 위로 올라가면 보이는 건물과 교도소


잔디 정원에서 더 위로 올라가다 보면 새로운 풍경이 등장한다. 발 닿는 대로 이곳 저것 걸어 다니다 보면 리스본 신시가지 이면을 발견할 수 있는데, 항상 구글 지도에 의존해서 길을 찾는 것보다 무작정 길을 찾는 것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발견한 건물은 교도소였지만.


고등학생들


교도소의 아찔함에 다시 공원으로 돌아왔다. 공원 잔디에서는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학생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어떤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서로 포옹을 하고 박수를 쳤다. 공원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그들의 순수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깔깔거리며 웃었던 고등학교 시절이 괜스레 그리워졌다.


공원 입구


리스본의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여유로운 삶을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공원이기에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한 번쯤 방문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베르트랑 서점


다시 바이샤 지구로 내려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베르트랑 서점'을 갔다. 18세기에 문을 연 서점이지만 리스본 대지진 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그래서인지 서점 내부는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다. 다양한 언어의 책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한국어 책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풍겨져 오는 새 책 냄새는 이곳에 잘 왔다는 확신을 가지게 해 주었다.


카르모 수녀원


서점 근처에 '카르모 수녀원'도 있어서 외관을 구경했다. 대지진 때 파괴된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는데 아픈 역사를 관광명소로 유지시키는 포르투갈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예쁘고, 아름다운 문화재만 구경하고 쫓는 세상에서 흉측하고, 버려진 문화재들은 설 자리를 잃고 소외된다. 비극을 지닌 문화재들이 또 다른 비극을 불러오지 않게 사람들의 환기를 불러올 수 있지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부분은 다크 투어리스트(죽음, 고통 혹은 비극과 연관된 장소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편하더라도 아픔을 직시하고, 외면하지 않는 노력. 그것이 여행자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뷰


여기저기 많이 쏘아 다녀 지친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Y는 여전히 컨디션이 엉망이었고, 나 또한 저녁 먹으러 나갈 힘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미리 호스텔의 석식 서비스를 신청했다. 리스본의 마지막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갔던 곳을 어플로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먼저 석식을 먹으러 리셉션에 내려가니 투숙객들이 벌써 줄을 서서 음식을 받고 있었다. 줄을 기다리던 중 뒤의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여자 : Hi. I like your hair.

(안녕. 너 머리 마음에 든다.)


나 : Thank you!

(고마워!)


여자 : Where did you dye your hair?

(어디서 머리 염색했어?)


나 : Nearby my home.

(우리 집 근처에서.)




캐나다에서 온 친구의 이름은 세실리. 그녀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좋아하며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쳐보고 싶다며 말을 이어갔다. 수저와 나이프까지 친절히 건네준 그녀와 더 대화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자리가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감자와 치즈


유럽답게 그들이 사랑하는 소울푸드 : 감자와 치즈가 저녁으로 나왔다. 맛은 예상대로 느끼함이 8할이었다. 한 접시에 10유로라고 생각하면 비싼 편이지만, 밖에서 먹을 기력이 없던 나에겐 감지덕지였다. 그러나 접시를 들면서 먹는 문화는 정말이지 적응 안 된다. Y와 나는 소파에서 조용히 먹고 인싸들의 모임에서 벗어나 침대로 돌아왔다.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리스본을 여행하러 온 것이 아니라 어쩌면 혼자가 외로워 사람들을 만나러 온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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