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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일본을 기대하는 이유”

by 지향점은 SlowLife
나고야-111.jpg 2024년 시라카와고


2024 시라카와고
2024 시라카와고




여행을 준비할 때는 항상 날씨 정보를 자주 찾아보게 된다. 보통의 여행도 좋은 날씨가 함께하면 더 특별한 여행과 기억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사진 찍기를 좋아하다 보니 비나 눈이 많이 내리는 날씨는 최대한 피하거나 대비를 해야 했기에 여행지의 날씨는 항상 궁금한 정보였다. 그런데 24년 1월에 계획한 나고야 여행은 처음으로 눈이 펑펑 오기를 기다리고 기대했다. 여행 일정의 3일 차에 시라카와고 마을이 포함된 버스 투어 상품을 신청해 두었기 때문이다. 겨울에 해외여행을 하는데 눈이 펑펑 오기를 기다린다니? 그것도 버스를 타고 투어를 해야 하는데? 하는 의문점이 생길 수 있다.


시리카와고는 나고야 시내에서 버스로 약 2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일본 내에서 적설량이 가장 많은 마을 중 한 곳이다. 눈이 워낙 많이 오다 보니 눈의 무게에 지붕이 무너지지 않도록 아주 가파른 삼각형 모양으로 지붕을 만들었고 그런 특이한 모양이 매력적인 전통가옥으로 구성된 마을이다. 보통 여행지들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온라인이나 여러 SNS를 통해 접하고, 그 모습을 기대해서 여행지를 방문했을 때 실제로는 기대와 다른 모습에 실망감을 느꼈던 경험들을 있을 거다. 나도 시라카와고의 아름다운 야경과 요정들이 살 것 같은 마을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고 여행지로 결정을 하긴 했지만 어쩌면 이전 경험들처럼 사진으로 기대했던 마음이 실망감으로 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걱정과 좋지 않았던 경험들을 전부 잊게 만들 만큼 시라카와고의 첫인상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마을에는 기대했던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고 마을을 둘러싼 산 전체도 온통 소복한 눈으로 덮여있는 설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이런 마을의 첫인상뿐 아니라 마을을 돌아다니면서도 곳곳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득한 곳이었기 때문인지 시라카와고에서의 시간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에 흠뻑 빠졌었기에 습기에 약한 카메라에 대한 걱정은 잠시 넣어두고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마을의 이곳저곳을 사진으로 남기려 돌아다녔다. 그러다 사원의 입구로 보이는 공터를 발견하고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이미 완벽해 보였던 시라카와고 마을에서의 경험을 더 완벽하고 기억에 남게 만드는 장면을 만나게 됐다. 그 장면은 공터의 하얗고 소복하게 쌓인 눈을 밟으며 장대 같은 나무 사이로 걷고 있는 전통 의상을 입은 두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분들과 함께 하는 일행들의 모습으로 보아 전문 촬영을 하는 것인지? 동호회 목적으로 방문한 것인지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이 공간에 그분들의 존재로 하여금 아름다운 설경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겨울의 일본에서 함박눈을 기다린 것도 그리고 글에 첨부한 사진의 장면이 뇌리에 깊게 남은 것도 아마도 청소년기 내가 갖게 된 일본에 대한 이미지 때문인 것 같다.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년기에 듣는 노래와 인상 깊었던 영화, 책들이 이후의 삶에서의 감수성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나에게는 그런 존재가 일본의 영화였다. 그중에도 단연 ‘러브레터'가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오겡끼데스까(おけんきですか?)' 로 기억되고 있고 요즘의 20~30대 초반 세대에게는 이 이름 자체가 생소한 ‘러브레터'라는 영화가 내 청소년기 감수성과 이후에 좋아하게 된 콘텐츠들 그리고 그 시절 일본에 대한 인상 등 많은 것들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은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아파트가 아닌 목조 건물 특유의 따뜻함, 난로, 자전거, 학교의 독서실, 편지, 눈, 스웨터, 첫사랑, 커튼, 일본 영화 특유의 따뜻한 영상미 등으로 대표되는 이미지들이 내 머릿속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았고 그 후로 오랜 기간 내 감성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이다.


그래서 눈 덮인 일본을, 도시가 아닌 숲으로 둘러싸인 설경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전통의상을 입고 걸어가던 두 여성분이 ‘러브레터'라는 영화의 시대나 어떤 연상이 되는 요소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러브레터'로 기인한 눈 덮인 일본과 아련함이라는 이미지 선상에서 왠지 모르게 딱 들어맞는 장면으로 나에게 다가왔던 것 같다.


꼭 어릴 때의 기억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경험한 어떤 기억이 오랜 기간 추억으로 남는 경우들이 있다. 그리고 여행이라는 특수한 일상은 비교적 쉽게 농도 있는 추억으로 남게 된다. 어린 시절 평범한 일상 속 ‘러브레터'라는 영화의 추억이 이번 시라카와고 여행의 추억과 만나 더해지고 또 다른 내 삶의 기억과 추억이 되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개의 추억이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나 나만의 이야기가 된 것처럼 앞으로 또 어떤 일상과 추억들이 지금의 나에게 더해져서 또 다른 이야기와 더 큰 추억을 만들게 될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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