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재취업한 마흔두 살 경단녀 리사씨 6편
리사씨가 재 취업을 목표로 두었을 때 제1 순위는 워라벨이었다. 그럴 것도 애초에 회사를 그만둔 이유가 육아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사씨는 하루에 4시간만 일하는 시간제 공무원과 시간제 공기업 근로에 지원한 적도 있다. ( 물론 떨어졌지만 )
만약 리사씨가 시간제 근로자가 되었다면 한달에 80~90만 원가량의 월급이 생기는 대신 오전이나 오후의 여유로운 삶이 펼쳐졌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풀타임 사무직 직군으로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가 리사씨가 일해야 하는 시간이다.
리사씨의 목표는 다시 말하자면 9시에서 6시만 일하는 것이다. 사실 한 달 동안은 이 8시간도 채우기 힘들었다.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던 리사씨에게 8시간을 채워서 앉아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라도 그 시간조차 버거웠다.
그러나. 리사씨도 일에 적응 하기 시작했다. 적응을 하니 일이 늘어났고, 급기야 리사씨는 '야근'이라는 끔찍한 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리사씨는 화가났다. 인사팀에 달려가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 제 목표는 9-6였다구요! 라고. 그런데.. 리사씨는 동료에게 "야근근무"를 찍으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 야근 근무.
일한 만큼 돈을 받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야근 근무 수당은 당연한 이치였다. 사실 10년이나 쉬었다가 경력단절 여성의 신분으로 재 취업을 한 리사씨의 연봉은 그리 높은 수준이 아이었다. 그런데 그 연봉의 갭을 야근수당이라는 것으로 채워 넣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점이었다.
첫 야근을 한날 리사씨는 엄청나게 피곤했지만, 의외로 뿌듯했다. 두 번째 야근을 한날 리사씨는 덜 피곤했고, 아주 많이 뿌듯했다. 이것이 야근수당의 맛인가?
리사씨의 절친 S씨는 조금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반드시 첫 월급을 받기 전에 그만 두라고 충고했다. 월급이라는 게 한번 받으면 절대 헤어 나올 수 없고, 힘들어도 이겨내며 다시 다음날 출근하게 만드는 마약성 전달물질을 포함하고 있으니, 월급 전에만 유일하게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 못 박았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리사씨는 아이들 동화책에 나왔던, 저승의 음식을 먹으면 이승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스토리가 생각났다. 그렇구나! 월급은 저승의 음식 같은 것이었다. 회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저승의 음식말이다.
그러나 리사씨는 월급 뿐만 아니라 야근 수당까지 챙겨버렸다. 야근수당을 챙기며 리사씨는 엄청난 상상을 하고 말았다. 만약 풀로 야근 수당을 당긴다면, 내가 시간제 근로자일 때 받을 만큼의 돈을 플러스 알파로 챙길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갑자기 리사씨는 뉴스에서 보았던 기사가 떠올랐다. 중소기업에서는 주52시간 시행으로 오히려 임금감소로 인한 경제적 문제로 워라벨이 지키기 힘들게 됐다는 이야기 말이다. 리사씨는 저승의 음식과도 같은 야근 수당을 받아버렸고, 6시 엔 반드시 칼퇴를 하겠다는 초심을 잃고 말았다.
8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온 리사씨는 샤워 후 몸무게를 재며 지난 한 달간 무려 4킬로가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득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몸무게를 갈아 넣어서 야근을 하면 야근 수당이라도 받지만, 청소년들은 매일 학교에 다녀와서 직장인의 야근 같은 '학원'을 다녀와야 한다는 걸 말이다.
국가에서 직장인의 야근은 막아주지만, 청소년들의 야근은 막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돈이라도 주며 부려먹지만, 청소년은 오직 열정 페이만을 강요하는 인내와 끈기를 강요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 보장도 되지 않은 미래를 제시하며 말이다.) 어쩌면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공부와 학원을 강요하는 부모는 어쩌면 진짜 악덕 사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에게 워라벨이 중요하다면, 아이들에게도 스터디라벨은 중요할테니 말이다.
https://brunch.co.kr/@cmosys/173
https://brunch.co.kr/@cmosys/174
https://brunch.co.kr/@cmosys/176
https://brunch.co.kr/@cmosys/175
https://brunch.co.kr/@cmosys/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