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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May 01. 2024

전업주부가 대학원에 진학하면 알게 되는 것들.

대학원에 가기 전엔 몰랐던 것들

이번글은 방황하는 전업주부들을 위해 써볼 까 한다. 특히 대학원에 미련이 있거나 도전해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되며 남편과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남편은 봄학기, 나는 가을학기)

다른 점이 있다면 남편은 직장인 신분으로 대학원 학비를 지원받으며, 월급도 받는 신분이었고, 나는 전업주부에서 대학원생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대학원에 간 첫 번째 이유는 대학원에 간 남편이 부러워서였다. 오랜만에 공부라는 것을 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참 부러웠다. 고등학교 친구에서 시작해서 대학을 가고, 직장에 가는 것을 모두 지켜본 사람으로 그의 성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으며 또한 묘한 부러움을 느꼈다. 


두 번째는 대학원이 내 방황을 멈춰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었다. 


남편이야, 운 좋게 직장에서 학비와 생활비에 해당하는 월급을 전액 지원받았지만, 전업주부의 신분으로 대학원에 가려 했기에 나에게는 가장 큰 허들은 바로 학비였다. 물론 내가 대학원에 가겠다고 한다면야 빚을 내서라도 보내주는 게 남편의 성격이겠지만 가정주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한참 돈이 들어가는 두 아이들에 나까지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 


이십 대였다면 대학원을 볼 때 가장 중요 한건 아마도 대학의 네임벨류와 전공이었겠지. 아마도 메이저 대학에서 MBA를 하거나 로스쿨에 진학하려고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십 대의 나에게  취업이 잘된다거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국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아 학비도 무료이며, 심지어 작지만 연구 활동비가 지원되는 인문 대학원 내에서 생사학(삶과 죽음) 중에서도 철학을 전공하기로 했다. 


사실 본 대학원에 대해 알게 된 건 내가 다니던 성당의 신부님 덕분이었다. 석사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생사학을 전공하고 계셨는데, 삶과 죽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연구한다는 부분이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서울에 살며 경영학과를 전공하고 바로 대기업에 진학했으며, 강남으로 출근하던 지극히 자본주의적 인간인 나에게 철학은 내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전공이었다. 어떻게 사느냐 보다 내게 중요했던 건 어떻게 이기냐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떻게 사느냐로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만 키우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던 시기였으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학원을 고민하는 전업주부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순수한 목적의 공부를 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한국에서의 대부분의 공부는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내가 만약 이십 대에 대학원을 갔다면 그 역시도 커리어를 위해서였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순수한 학문에 대한 호기심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마흔이 넘어 생사학 그것도 철학을 공부한다고 취업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공부 자체에 빠져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며  천재들이 나보다 먼저 고민한 인생을 배우며 위안을 느꼈다. 나의 방황과 고민을 먼저 경험한 그들이 어떻게 글로 남겼는지 거인의 어깨 위에서 볼 수 있는 영광을 가졌다고나 할까.


2.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덜하게 된다. 


대학원에 가기 전의 나는 전형적인 셀프 자기 연민에 빠져있었다. 내 커리어를 모두 포기하고 아이들에게 매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칫하면 내가 이렇게 희생했는데 너흰 완벽해야 해!라고 외치는 스카이캐슬의 예서 엄마가 될 조짐이 다분했다. 하지만 대학원에 가서 내 공부를 하다 보니, 일단 잔소리할 시간이 없었고 공부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공부는 이렇게  스스로 해야 하지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애들에게 공부하라고 하지 말고 나나 열심히 하자! 이게 내 모토가 되었다고나 할까?


3. 세상엔 정답이 없음을 알게 된다. 


대학원 공부를 하며 가장 큰 수확은 인생엔 정답이 없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의 말이라도 그것은 의견이며 하나의 가설임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 내가 옮다고 느끼는 것을 믿고 죽자 사자 덤볐다면 이제는 내가 정답으로 여겼던 모든 것이 하나의 의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논문을 쓰며 하나의 큰 주제를 가지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근거들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할 뿐 그것은 절대적인 원칙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정답이 없다면 반드시 살아야 하는 방식 또한 없다. 그래서 오히려 아이들을 키움에 대해 조금 더 느슨해질 수 있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반드시 나의 아이들이 성장하진 않아도 된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전업주부가 대학원에 진학하는 건 여러모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처럼 자기 연민에 빠져있거나, 인생에 공허함을 느끼는 많은 이들에게 대학원을 추천하고 싶다. 일단 들어가 보면 그동안 내가 고민했던 것들은 결국 핑계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장학금이 있으며, 아이들은 엄마가 덜 신경 써줘도 잘 자란다. 


마흔에 대학원이라니 좀 늦었던 것 아니냐고? 아니. 나는 인생에서 가장 최적기에 대학원에 갔다. 이것저것 재지 않을 수 있는 딱 좋은 나이말이다.


하나더! 적어도 우리 애들은 나에게 이런 반항의 말은 못한다 

그렇게 좋으면 엄마가 공부 해보시던가요?! 

혹은 

엄마가 한번 공부 해보세요. 얼마나 어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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