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림과 떨림 Jul 19. 2022

나는 피해자라는 태도

늘 피해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쉽게 피로하게 만든다.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위로받고 이해받는 것을 마땅한 권리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피해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게 더 친절하고 너그러워야 해. 이런 나를 이해해야 하는 건 당연해.'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부모님 때문에, 형제자매 때문에, 친구 때문에, 선생님 때문에, 교회 때문에, 회사 때문에... 남 탓을 하는 심리에는 '나는 본래 괜찮은 사람이며 충분히 성공할 사람인데,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아서 이렇게 사는 거야.'가 깔려있다. 탓하는 말을 듣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듣다 보면 몸과 마음이 뻐근해진다.
 
나는 피해자라는 태도는 성경을 읽을 때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사무엘상 1장에 보면 엘가나의 두 부인이 나온다. 한나와 엘가나. 우리는 대부분 자신을 피해자인 한나의 입장에서만 말씀을 읽는다. 누구 하나 자신을 가해자인 브닌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욥기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모두 자신을 피해자인 욥이라고 생각할 뿐, 가해자인 세 친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태껏 많은 분을 상담했다. 더불어 기도도 많이 부탁받았다. 그중에는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누구누구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는 내용이었다. 하나같이 피해자 신분으로 찾아왔다. 미스터리한 일은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가해자 신분으로 찾아온 적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제가 누구누구에게 상처를 준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100% 과실이 흔치 않은 걸 감안한다면 매우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때론 피해자이면서 때론 가해자이다. 상처를 받는 만큼 다른 누군가에게 그만큼의 상처를 주면서 살아간다.

일차적으로는 한나와 욥의 입장에서 읽어야 하는 건 맞다. 그것이 성경을 읽는 큰 흐름이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차적으로는 브닌나와 욥의 세 친구 입장에서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 판에 박힌 묵상에서 벗어나 말씀을 좀 더 풍성하게 맛보고 느낄 수 있다. 성경이 따분하게 읽는 건, 매번 하나의 관점으로만 읽기 때문이다. 지난번과 똑같은 관점으로 말씀을 읽으면 지루하다. 나와 상관없는 말씀처럼 들려서 식상하다.

삶이 지루하다면 아마 감동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아는 것 못지않게 성경을 느끼는 게 중요합니다. 남을 위한 착한 신앙인이 아니라 나를 위한 좋은 신앙인으로 살기 위해선 느껴야 합니다.

이정일 목사님께서 쓰신 <나는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에 나오는 문장이다. 우리는 알 때보다 느낄 때 변한다. 변화도 말씀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올 때 일어난다. 입장이 바뀌면 관점이 바뀌고, 관점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는 법이다. 변화의 감탄사인 '아하!'도 그때 터진다. 우리는 한나인 동시에 브닌나이며, 욥인 동시에 그의 세 친구다.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있지 않은가?

작가의 이전글 고대로 받아들이는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