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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Jul 23. 2022

나는 왜 너의 당당함이 불편할까?

1. 나만 떳떳하면 된다고?
당당함은 떳떳함에서 나오는 자신감의 일종이다. '정정당당, 위풍당당'은 누구나 꿈꾸는 태도다. 무엇 때문에 당당한지는 몰라도, 당당하면 일단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다. 잔뜩 주눅 들어 있는 사람보다 당당한 사람에게 끌리는 건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나의 당당함이 주위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한다면? 그것은 당당함이 아닌 무례함이다. 혼자만 속이 편하고 주위는 전부 속이 불편하다면, 그건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간혹 '나만 떳떳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분위기를 뻣뻣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갑자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주범인데, 그걸 꼭 당사자만 모른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면 분위기만 파괴한다. 사실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과 눈치를 보는 것은 결이 다르다. 분위기 파악은 상대의 형편을 헤아려야 가능한 일이고, 눈치 보는 건 상대의 비위를 맞춰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2.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만 좋으면 좋은 걸까?
믿음은 우리를 당당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없어도, 고개를 들게 하고 어깨를 쫙 펴준다. 가진 것이 없어도 주눅 들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중에는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얼핏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다. 사람만 기쁘게 하려는 태도가 문제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려는 태도도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정말 사람이 어떻게 보든, 하나님 보시기에만 좋으면 좋은 걸까? 주님의 일은 함께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의 생각을 조율하면서 마음을 모아야 한다. 이 과정이 제일 힘들고 어렵다. 이때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면 그만 아니냐!'라고 말하는 '믿음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다툼과 분란이 일어난다. 자기만 옳다고 그냥 밀어붙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3. 나는 왜 너의 당당함이 불편할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말은, 사람은 기분 나쁘게 해도 상관없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사람 중에는 의외로 무례한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장 먼저 외모부터 본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보고 중심을 판단한다. 그래서 아무리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백번 천번 말해도, 덕이 빠지면 믿음이 불량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믿음이 좋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덕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자기 몸을 불사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람이 주변까지 전부 불사르려고 드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믿음에 덕이 빠지면(벧후1:5)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당한 것만 믿음이 아니다. 공동체에 덕을 끼치기 위해 절제하는 것도 믿음이다. 자유가 절제와 함께할 때 자연스럽다면, 믿음은 덕과 함께할 때 멋스럽다. 당당함은 거기에서 비롯되는 아우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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