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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방끈수공업자 Dec 14. 2018

연구원, 그리고 한국 생활

어느덧 반년.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제 글을 구독해오신 분들은 아실 수 있겠지만 혹시 처음 우연찮게 들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제 지난 연재글들 포닥 자리찾기, 포닥 탈출기를 소개드립니다.


저는 미국에서 학위를 하고 포닥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자 미국 대학 인터뷰를 보고 오퍼도 받고 어디갈까 고민도 하고 계속해서 인터뷰도 하고 그러던 중 한국의 정부출연연구소(정출연 혹은 출연연)에서 선임연구원 오퍼를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들어올 계획이 없던 중에 잘 맞는 자리가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원해보았고 덜컥 오퍼를 받았는데 많은 고민 끝에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꽤 오랫동만 고민해서 힘들게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참 많은 경우의 수를 그려보았고 시뮬레이션도 해보았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지난 6개월간 단 한번도 귀국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항목별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연구 : 연구비나 학생, 연구원 수급은 따로 말씀드리겠고 연구자체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의 연구는 미국보다는 제약이 많습니다. 정출연에 있다보니 대형 과제 위주로 참여를 하게 되는데 아직 제가 과제를 기획하는 단계가 아니다보니 100% 제 입맛에 맞는 연구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과제를 기획한다해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습니다. 소위 "되는"과제는 연구보다는 "시제품 제작"이나 "통합 시스템 개발" 같은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순수하게 알고리즘 연구하고 논문쓰고 끝내는 과제는 소규모 연구재단 과제에서만 가능한가 봅니다. 학교에 계신 분들은 좀 다르게 느끼실 수도 있겠으나 대형과제라는게 결국에 학교들도 다 참여를 하는 것들이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저는 개인적 관심분야와 여기서 해야하는 일들을 어느 정도 일치시킬 수 있어서 크게 답답하지는 않습니다. 퇴근 후엔 예전 기관들에서 하던 연구를 이어서 할 때도 있어서 (주로 리뷰 들어갔던 논문들 리비전 정도로 그칩니다만...) 거기서 "덕질"하고 출근해서는 일하면 되는거죠.


잡일 : 아직 과제 책임자를 하고 있지 않다보니 행정적인 잡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가끔 그런 일들 (구매, 회의록 작성, 과제관련 발표자료 작성 등등) 몰아서 하는 날은 그것만 하다가 끝나는 날도 있긴합니다. 과제 책임자들의 연구를 제외한 업무량은 생각보다 많아 보입니다.


연구비 : 대형과제 위주로 연구를 수행하다보니 연구비가 넉넉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필요한 장비 사고 연구원 채용하고 논문발표하러 학회참석 하는데 크게 제약이 없습니다.


학생/연구원 수급 : 이건 좀 아쉽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서카포 등 상위권대나 해외대학으로 진학을 하기에 정출연에 학연과정이나 UST로 지원하는 숫자자체가 적습니다. 정부 정책상 계약직 연구원의 경우 채용에 제약이 많기 때문에 연구인력이 늘 부족해보입니다. 과제 규모는 큰 데 일할 사람이 없으니 나름 중요한 문제입니다. 


연봉/복지 : 세전 총소득영끌기준으로 같은 경력쌓고 대기업 간 분들에 비하면 최상기준(삼성전자 반도체)에 비해 좀 모자랍니다. 사실 좀 모자라는 정도가 아니고 꽤 모자랍니다. 적당한 대기업 보다는 조금 모자란 수준인 것 같습니다. 아직 연봉외 소득(강연, 자문, 심사 등)은 없어서 +알파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정출연은 연구와 조직생활의 자율성, 직업의 안정성 때문에 택하는 것이지 돈보고 가는 곳은 아니라 불만은 없습니다. 복지는 일반적인 대기업과 비교해서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조직생활 : 크게 불편함 없습니다. 은퇴 몇년 안남겨두신 나이 많으신 책임 연구원들은 작은 아버지 대하듯 대하면 되고 10살 내외 차이의 선책임 분들은 학교 선배 대하듯 대하면 크게 무리없습니다. 조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많지 않습니다.


연구 외적인 삶 : 연구만 하고 사는 것은 아니죠. 퇴근 후, 주말의 생활은 만족스럽습니다. 운동도 자주하고 적당히 친구들 만나고 가족들과 놀러가고 외식하고...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저의 삶이 많이 전투적이었어서 그랬는지 가끔 이렇게 무탈하고 평온하게 살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난 8년간 해외 생활을 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기만 하다보니 제 자신을 잘 보살피지 못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늘 연구만 붙잡고 밤을 새던 나날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적당할때 끊고 잠을 자고 주말이 오면 다 내려두고 좀 쉬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들인데 그때는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지, 좀 더 즐겁게 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다가도 그렇게 악으로 버티지 않았다면 이 자리는 제 것이 아니었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가끔 저의 생활을 또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관심있는 분이 없다면 그만 두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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