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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고 싶다면

소설 쓰기란

by NY

주말을 맞이하여 늦여름과 초가을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워넣고, 집안을 모두 치운 뒤 느긋한 마음으로 백수린의 산문집을 읽었다. 그 중 마음에 와 닿은 짧은 글의 일부를 담고 싶었다.


-백수린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 중에서.


'작가들의 작가'라는 별칭을 지닌 제임스 설터는 대중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문장을 쓰는 스타일리스트, 단편소설의 정수를 보여주는 소설가로 많은 작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케이크에 비유하자면 설터의 소설들은 내겐 예술품처럼 완벽한 형태를 지닌 티라미수다.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오직 정확히 계량된 최상급의 마스카포네 치즈와 품질 좋은 카카오, 커피만으로 맛을 완성한 티라미수. 달콤함 끝에 카카오의 쌉쌀함과 커피의 진한 향을 남기는 티라미수처럼, 인생의 본질을 언제나 직시하게 만드는 설터의 소설들은 매혹적인 이야기 끝에 일상 이면의 아릿한 슬픔과 후회, 화려한 순간이 지나고 난 이후의 황량한 풍경을 긴 여운처럼 남긴다. 제임스 설터가 말년에 대학에서 한 강연과 인터뷰를 묶었다는 '소설을 쓰고 싶다면' 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읽고 싶었던 이유는, 우리가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어떤 작가보다 더 정확한 언어로 그려내온 설터의 소설 쓰기 비법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이 책에는 누구나 설터처럼 훌륭한 소설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매뉴얼 같은 것은 없다. 그것은 설터에게 소설이 상상력의 산물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삶에서 비롯한 글이기 때문이다. 삶이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는 진실들로 이루어진 것임을 기억한다면, '소설을 쓰고 싶다면' 에서 작가 스스로 고백하듯이 설터 같은 대가에게도 자신의 글에 확신이 없던 시절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삶이 불가해한 것인 한 소설 쓰기 작업 역시 언제나 어려울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쓰고 싶다면 삶을 집요하게 관찰하라고 설터는 조언한다.


온 마음을 다해 쓴 소설을 투고하고 거절당하기를 수십 번 씩 하는 사람의 마음을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무리 강철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도, 반복되는 거절 앞에서는 도리 없이 작고 초라해지니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고 싶다면, 소설을 쓰고 싶은 열망이 부드럽지만 단단한 돌멩이처럼 가슴속에 박혀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일은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견디며 관찰한 것들을 묵묵히 계속 써나가는 것뿐일 테다. "나는 내가 쓴 글에 실망할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을 품은 이상 우리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시간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은 단지 기록하는 일뿐이라는 설터의 말을 이미 진실이라 믿고 있는 사람들일 테니까.


- 백수린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 중에서


그랬다. 온 마음을 다해 글을 쓰고, 매일같이 밥을 먹듯이 글을 쓰고 그 글을 고치면서 삶을 계속해서 기록하고 싶었다.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여러 강의도 들어보고 다른 사람들의 작품도 함께 읽으며 행복하고 충만한 마음이 드는 만큼 이면에 작고 초라한 마음으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자신있는 대답을 해주고 싶어서 매일 노력한 적도 있었고, 일상에 쫓기듯 살아가느라 글을 멀리한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늘 써야 하는 사람이고, 쓰고 싶은 사람이라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떤 글이든 상관없었다. 마음에 작은 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이게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가슴속에 박힌 문장들은 다양했다. 단편 소설의 한 장면, 매일 듣는 심야라디오 방송에서 소개하는 시 한 구절, 라디오 디제이가 직접 써온 오프닝 멘트. 베이킹 파우더를 품은 반죽이 스스로 부풀어 올라 빵이나 케이크를 만들어내듯, 내 마음 속의 작은 틈이 점점 벌어져 숨구멍이 되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호흡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항상 어느 곳에서 가져오든 상관없이 글이었다.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을 계속 가져갈 수 있다면, 그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면 고독하고 외롭기도 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길을 뚜벅뚜벅 그저 걸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백수린 산문집은 그저 가볍게 주말에 읽기 좋은 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완벽하고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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