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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 Jun 07. 2023

잠깐의 평화가 네게 위안을 주기를 바라.

아주 사적인 편지

다은의 글



잘 지내고 있어? 


벌써 휴가가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겠구나. 맞아, 때로는 편지 쓰는 일이 참 어렵게 느껴져. 막상 마음을 먹고 쓰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이 일과 저 일 사이 생각이 이곳저곳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막상 차분히 앉아 글을 쓸 시간을 내기가 참 어렵더라. 


인터넷 창을 하나 열어놓고 무언가를 검색하다가 이메일 보낼 곳이 떠올라 이메일 계정에 로그인을 하고, 메시지가 오면 거기에 답장을 하다가 또 다른 생각이 나서 거기에 주의를 뺏기곤 해. 왜 무언가 한 가지에 집중하기가 이토록 어려울까. 그래서 어느 날은 아예 휴대폰을 집에 놓고 밤에 산책을 하러 나가. 걷는 것에 집중하고, 가로수를 한 번 더 올려다보고, 바람을 느끼고, 그 시간에 집중하려고 노력해. 휴대폰이 없으니 그래도 그게 가능하더라. 아마 자는 시간 빼고 휴대폰을 한 번도 만지지 않은 한 시간이 있다면 그렇게 의도적으로 두고 밖을 나갔을 때인 것 같아. 


오늘은 오전에 일을 하러 간 곳에서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해봤어. 그러다가 아주 어릴 적에 할머니댁이 있던 곳을 버스를 타고 지나치게 되었어. 어릴 때는 주말마다 가서 놀던 곳이라서 아주 익숙한 동네였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참 생경하다는 느낌이 들더라. 오 년 만에 고향에 돌아간 너도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어딘가 낯선 곳에 와있는 느낌 말이야. 아마 두 곳의 환경이 너무 달라서 그 괴리도 더 커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이제 여행이 끝났으니 다시 집에 돌아가 마음의 평안을 조금이라도 찾았으면 좋겠다. 


최근에 탈 벤 샤하르 작가의 책에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마음, 몸, 배움, 관계, 감정의 안녕(well-being)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읽었어.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 기본을 꾸준히 실천하기가 어렵다고 느껴졌어. 회사를 퇴사하면서 정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지만 한동안은 밤낮이 바뀌어 꽤나 고생을 했어. 지금은 출근할 곳을 만들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루틴을 챙기고 있지만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기간이 필요했지. 


마음과 몸, 배움과 관계, 그리고 감정을 균형 있게 알아차리고 챙기는 것은 일면 당연해 보이지만 또 그만큼 힘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어느 날에는 일 안에서 충만하다는 느낌을 받다가도, 일에 너무 무리를 하다 보면 몸은 피곤하고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챙기지 못하기도 하니까. 또 너무 많은 약속이나 만남을 하며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되면 소진되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너무 많이 배우다 보면 그것도 불균형이 일어나는 것 같아.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 안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오늘은 눈앞에 고층빌딩이 끝없인 펼쳐진 풍경 속에서 일을 하고 있어. 처음에는 탁 트인 하늘과 빌딩숲의 모습이 새로워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꽤 답답하다고 느껴져.  빽빽한 건물들, 사람들, 인터넷 창을 열면 끝없이 들어오는 정보들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머리와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 


점심시간 밖에 나가 아주 오랜만에 잔디를 밟아본 감각을, 눈에 담았던 꽃의 색감을, 바람이 불어왔던 느낌을 꺼내서 떠올리고 있어. 매일 다니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걸으며 아주 잠시 관광객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 그럴 때면 그냥 지나쳤을 길이나 사물들이 아주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 


너에게는 위안이 되는 장소가 있니? 집에 돌아가면 여행에서 마주한 수많은 장면들을 그곳에서 잠시 내려놓고, 너의 감각을 깨워서 잠시 머물러 봐. 그 잠깐의 평화가 네게 위안을 주기를 바라. 



사진: Unsplash의 Colton D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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