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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dovico Aug 22. 2024

분모는 공통점, 분자는 차이점

② 광장 이해하기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만화 오타쿠였다. 다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단순히 만화를 엄청 좋아하고 읽어대던 귀염둥이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의 나는 순정만화를 제외하고는 모르는 작품이 없을 정도였다.  

이제는 사라진 동네 책방이 있는데, 역시나 나는 손꼽히는 고객 중 하나였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시작한 탐독을 고등학교 1학년인가에 확인해보니 책 대여 횟수가 8천권쯤 됐었다. 감명깊은건 몇 번이고 다시 빌리고는 했으니 납득이 되는 숫자긴하다. 얼마 전, 누나들과 대화하며 "아, 그 때 내가 만화책 안보고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다 정말"이라고 하니 누나들은 말했다. "만화책 대신 다른걸 봤겠지."

약 25년간 운영됐던 동네 책방, 고마웠돠...(자료 : 네이버맵)

수없이 읽어간 만화 중에서도 늘 다섯손가락에 꼽혔던 작품이 '기생수'였다. 이와아키 히토시라는 일본 만화가가 그린 SF인데, 정말 수준이 다른 내용이었다.

처음 이 책을 추천해주었던 사람은 대여점에서 종종 마주치던 20대의 소심해보이는 형이었는데, 늘 비슷한 체크남방을 입고다니고 얼굴이 창백했다. 솔직히 못생긴데다가 괜히 똑똑한 척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역시나 소심한 나는 그 형의 조언을 그대로 따랐다. 근데 막상 읽어보니 대박나게 재밌었다.

바로 다음날 나머지 권들을 빌려 읽다가 문득 그 형이 생각보다 나랑 통하고 비슷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외모야 내가 훨씬 호감형이었지만 말이다.

비록 우리의 시작은 다소 부정적이었지만, 첫인상과 세대를 초월하여 그 형과의 대화를 긍정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만화에 빠져살았다는 공통점 덕분이었다. 이후에도 종종 책방에서 만났던 형에게 좋은 작품들을 소개받았다.

형.. 저도 형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우린 닮은게 많아요 : )

처음만난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는데 공통점만한 것이 없다. 직업이나 취미, 관심사나 이력, 고향이나 학교처럼. 내가 가진 일부를 상대가 가지고 있다면, 그건 나를 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상대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줄 수 있게된다.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몇 마디만 나눠도 이미 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거나 혹은 그만두고 싶다는 것을 느낌을 갖는다. 특히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론장에서는 계속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금방 가려진다.

대화를 계속 나누고싶은 사람들 가장 기본적으로 태도와 말투에서 예의 보인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공통점을 찾아내 상대방과 대화하며 친근감을 갖게다. 토론하고 싶은 주제로 연관성을 찾거나, 취미나 학교, 사는 동네나 일하는 업종 등 뭐든지 엮으며 대화를 풀어가고는 했다.  

여러 공론장에서 내가 관찰했던, 사람들과 잘 대화하는 사람들의 특징

1. 함께하는 사람들이 공통된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모였다는 것을 알기에 서로 낯설고 어색하더라도 먼저 대화의 시작하며 분위기를 만든다

2. 평상시 얼굴을 알던 사이가 대부분이더라도 상대의 생각을 잘 경청한다. 그리고 자기 생각과 상대방 생각의 상이점과 유사점을 동시에 느끼기 마련인데도 유사점에 더 집중하며 그 사람을 공감한다.

3. 서로의 차이로 갈등이 있더라도 그걸 빌미로 상대가 싫다고 밀어내는게 아니라, 갈등 지점은 그것대로 인정하되, 그럼에도 공통의 무엇에 집중하며 대화를 이어가고 기본적인 대화의 예의를 지킨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성에 기반한다.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할 때, 내가 옳고 너는 틀리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막을 수 있다. 또 생태계에서 식물, 동물, 미생물 등 수많은 생명체가 서로 다른 형태와 역할을 가지고 존재하며 모두에게 필요한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하듯, 사람들의 다양성도 더 생동감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한다.


그런데 개별성을 강조하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선행해야하는 것이 있다. 바로 '공통점'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차이점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식하는 것보다 더 많 공통점으로 묶여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같은 동물종이면서도 같은 나라, 지역사회, 동네, 회사, 가정 등에서의 소속을 가지고 있다. 미시적으로 보더라도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점들을 지니고 있다. 물론 서로의 공통점을 찾는게 노력은 필요하지만, 우리들은 생각보다 제법 같은게 있다.


세계적으로 계속 심화하는 세대, 성별, 종교, 학력, 이념, 지역 등과 같은 갈등은 공통점에 대한 분모 없이 분자의 차이점에 몰두하다가 촉발하고 키워지는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정말 못생겼었다고 한다. 대머리에 키가 작았고, 코도 납작하고 입술은 두툼하며 두 눈은 툭 튀어 나와 있었다. 눈썹은 다듬지 않아 제멋대로였고 거기에 턱수염을 기르고 걸음걸이도 이상해서 마치 굴러다니듯 했다. 지인들은 그의 외모를 '게, 색마, 괴물' 같은 걸로 비유했다. 이렇게 못생기면 잘생긴 혹은 평범한 사람들의 외모와 지나치게 비교가 되어 가까이 지내는게 쉽지 않다. 게다가 당시 아테네는 외모지상주의가 엄청 심했다고 한다.

최대한 귀여운 이미지로 가져온 소크라테스 (자료 : pngegg)


그런데 사람들이 갖는 외모에 대한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어떤 아테네 시민이든 다가가 그 사람과 대화를 시도하고는 했고 그가 원하는 철학적인 대화에 성공하곤 했다.
그 때 사용했던 '질문법'은 우리 시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훌륭한 철학적 대화 방식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의 진술에 대한 정확성은 과반수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는게 아닌, 오류가 증명될 없어야 진리가 된다고 말했는데, 이런 것을 보면 그는 자신의 못생긴 외모가 사람들과의 대화에 문제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정도 자신감이 있어야 현인으로 불리는가 싶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의 특별한 개성과 능력만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갔다고 보기는 힘들다.


당시의 아테네는 걸어서 이쪽(피레아스 항구)과 저쪽(아이게우스 문)이 약 한시간 즈음 걸리는 정도의 크기였다. 그러다보니 도시 전체에 사는 사람을 다 합쳐도 대략 24만명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아테네 시민들은 현대 사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서로가 누구인줄 대략 알았고 이미 관계가 있는 상태였다.

도시국가 시절의 아테네 상상도와 현재의 아테네(자료 : 네이버블로거 엄친수)

게다가 소크라테스가 유명해진 계기가, 그의 제자인 알키비아데스(미남 귀족이라 유명했다고..)가 아고라에서 자신의 스승을 찬양하는 연설을 한 것이었는데, '저런 넘사벽 엄마친구아들의 스승이라니..??' 이런 느낌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퍼진 것이다. 즉 소크라테스도 아테네 시민들로 하여금 '같은 아테네 시민'이라는 소속에 기반한 공통점과, 잘생긴 제자 덕으로 얻은 유명세로 사람들과 비교적 쉽게 대화를 촉진하는 매력을 얻은 것이다.

물론 플라톤과 같은 현인들이 그의 철학에 매료되었던 것이나 죽음을 선택한 과정을 보면 틀림없는 성인의 풍모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세계의 성인이라 불리던 소크라테스도 그의 대화를 풍성하게 만든 것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통점을 느끼게 했던 무엇이었다는 것이다.

광장에서는 갈등이나 서로에 대한 개성에 인정이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공통점을 찾고 그것을 사람들이 마음에 간직하게 하는것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사람들에게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더 중요하게 강조했던 사람 중 카톨릭 교회의 교황 프란치스코가 있다. 우리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온 덕분에 취임 초기부터 대중으로부터 엄청난 인기와 지지를 얻었고 일반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가톨릭 교회의 사람이다. 2014년에는 우리나라에 직접 방문하기도 했었는데, 당시 세월호 유가족의 한 아버지를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광화문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난 교황의 모습. 유가족은 '특별법 제정'에 대한 관심과 기도를 청했다. 광장에서 사회의 주요 이슈를 공론화하는 장면이기도하다.(자료:민중의소리)

2013년에 취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6월에 '찬미받으소서'라는 책을 발표한다. 매 교황마다 그 시대의 사회적 문제를 조망하고 신앙적으로 풀어갈 방법을 제시하고는 하는데, 찬미받으소서는 특히나 처음으로 기후변화와 환경문제, 양극화, 불평등, 미래 세대 문제 등을 다룬 덕분에 꼭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와닿는 내용이었다.  

찬미받으소서는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지금의 교황은 이 이탈리아 성인이 살았던 삶을 따르고자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정했다) 성인의 기도를 인용하며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은 우리의 공동의 집이 울부짖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흙의 먼지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우리의 몸은 지구의 성분으로 이루어져있고 우리는 그 공기를 마시며 지구의 물로 생명과 생기를 얻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한켠에 자리하지만 이제는 잊혀져버린 공통의 가치가 바로 이거였다. 모든 사람 지구별에서 태어났고, 지구 안에서 우리는 형제자매다. 교황은 우리의 같은점을 호소하고 기억하게하고 나서야 세상의 여러 문제와 갈등을 차근차근 이야기한다.




공통점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이 거창한건 아니다. 차를 산 뒤 열심히 타다보니 최근 운전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덕분에 타인의 운전에 대해 평가하고 판단하는 횟수가 상당히 많이 늘어났다. 한 번은 너무 엉망으로 운전하던 사람과 창문을 열고 싸우기도 했다.
그래서 운전 중에도 공통점을 찾는 사고방식을 적용하고는 한다. 대체로 엉망으로 운전을 하는 차량을 보며, 지인 중 비슷한 차를 모는 사람을 상상한다. '그래.. 저기에 00이가 타고 있다고 생각하자' 이런 느낌으로 말이다. 동시에 나도 그랬던 적을 떠올린다. '그래 나도 그런걸..'

그러다보면 마음을 지배하던 분노의 빨강 요정이 점차 파랑으로 바뀌며 차분해지는걸 느끼고는 한다. 여기에 마지막 한방으로 '그래 우리는 모두 같은 브라더&시스터인걸'이라고 되뇌이면 그리 스트레스 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지구라는 공동의 집에서 살고 있으며, 광장에서 만나는 이 사람은 누군가의 부모고 자녀며 형제고 자매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라와 조직과 이 곳의 생존을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물론 가정도 마찬가지다. 내가 입장이 있듯이 나와 부딪히는 누군가도 입장이 있다.  사소한 태도에서 쉽게 상처입는 나처럼 사람들은 교류와 소통에 있어 예의있는 태도를 바란다. 내가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성품과 친근한 말을 좋아하듯이, 사람들도 그런 사람 곁에 있고 싶어한다.


갈등을 일어났을 때, 이를 더 심화시키는 차이점에 집중하기보다, 서로의 지닌 공통점을 기억해보면 어떨까?

그러다보면 모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창의적인 대안이 문제해결의 묘수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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