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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dovico Aug 23. 2024

힘없는 자들의 힘

② 광장 이해하기

"야 디지게 맞고 싶냐?" 나보다 15cm는 큰 180cm의 거구(?)가 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디지게가 아니라 뒤지게거든?" 긴장했지만 괜히 허세를 부르면서 말꼬리를 잡았다. "야 왜 그래. 하지마" 주변에서 친구들이 말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반에서 제일 힘쌔다고 알려진 놈이 웃으면서 "그냥 냅둬봐 어떻게하나 보게"라고 말하며 실실거렸다. 결국 교복 안에 입은 하얀 티셔츠가 축 늘어지고 목 단추가 하나 떨어지고서야 마무리가 됐다. 벌써 20년이나 되어가는 일인데, 화내는 놈과 쪼개는 놈의 얼굴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지금도 주번 제도가 있을까? 출석번호 순으로 돌아가며 교실의 잡다한 일을 맡던 그 봉사직 말이다. 주번인 내가 다음 수업을 위해 깨끗하게 청소해놓은 칠판에 낙서하는 일진을 막아서다가 맞을뻔한 것이다. 열받았지만 작고 통통해서 귀여움이 유일한 무기였던 나에게 힘으로 대항하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아직 아이들인데 누구는 더 힘을 지니고, 누구는 힘이 없어 억울한 일들이 생겨나는지... 가장 짜증나고 슬펐던게 두 개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나는 다시 칠판을 지우고 지우개를 터느라 남은 쉬는 시간을 소모했고, 그 놈들은 다시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를 투영해서 살아간다. 그렇기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바로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 쉽다. 2023년에 크게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로 '더 글로리'와 '대행사'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학창시절 당했던 폭력에 복수하는 '더 글로리'와 (광고계)직장 갑질에 저항하는 '대행사'가 인기를 얻었던 것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학교폭력에 대한 경험 혹은 간접경험이 있거나, 직장에서 당한 갑질에 대한 피해가 있구나 싶었다.

헌데 이게 학교나 직장에서만의 문제였을까? 아니다. 사람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는 광장에서의 경험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힘을 가진 소수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었다는 것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서울에는 여의도공원이 있다. 비록 15배 차이가 나지만.. 우리의 여의도공원은 센트럴파크를 모델로 만들어졌다. 여의도공원의 과거 이름은 '5.16 광장'이었다. 일제시대 활주로였던 곳을 1970년대 재개발 과정에서 서울대의 한 교수가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사례로 삼은 공원으로 조성하자 제안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거대 콘크리트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가 과거 활주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공간을 만들며 왜 광장이란 이름을 붙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사실상 비상 활주로의 기능이 있어 비상시에 탈출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는 설, 평양시의 김일성광장에 대응되는 성격으로 매년 군사퍼레이드를 는 북한정권이나 히틀러, 무솔리니, 마오쩌뚱 정치집회로 대중을 선동했던 것처럼 자신도 광장을 활용해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존재가 되고자 꿈꿨다는 설이 있지만, 이 모두 일수도 있다.

다행히 독재자가 물러간 1990년대, 초기 아이디어였던 공원으로 그리고 센트럴파크를 참고해 조성 됐다.

여하튼 '광장'이라는 모두를 위한 열린공간을 대표적인 독재자가 만들었다는게 참 신선하고 모순적이지 않은가?

전체 형태는 비슷하게 보인다. 단순 비교하기에 센트럴파크에 비해 여의도공원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성과 일상성이 아쉽다는 지적이 있기도 하다(자료 : 서울시아카이브 및 나무위키)

'광장'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이뤄지는 교류나 소통, 결정이나 추진 등의 여러가지 것들을 사적 이익이나 개인의 마음대로만 할 수 없다. 그런데도 힘(권력)을 사용하여 강압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집단은 사회에 '악한 영향'을 주는 존재이다.




아주 다행히 국가차원에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이뤄졌다. 그 뜻은 권력을 사적으로 쓰려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는다는 뜻이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 분리하여 정부를 구성하는데,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원리를 따른다. 또 우리에게는 선거제도가 있다. 권력을 가진 자리가 유한하도록 임기가 정해진 사람를 선출한다. 이 때도 다수결이라는 방식으로 특정인에 의해 선출되지 않도록 한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 유신헌법은 대통령이 국회의원 3분의 1을 사실상 임명하게 해놓기도 했었다. 그리고 국가에서 최고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불법을 자행했을 때 직접 끌어내릴 수 있다. 즉 탄핵을 할 수 있고 우리나라는 이 경험이 있다. 물론 이 조차도 국민공론-국회-헌법재판소의 단계를 거치며 결정의 힘을 분산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은 제도 민주주의에 관한 감수성(?)이 높다. 그래서 권력을 남용하는 경우 잘못됐다고 비판할 수 있는 역량이 있으며, 일반 국민의 의견이 다양한 채널(집회

, 시위, 온라인게시판, 댓글창, 유튜브 영상, SNS 등)로 표출되고, 이것이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언론을 통해 공론화하며 권한을 가진 사람이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한다.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여론을 통제하려고 한다면 큰 반발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나라의 2024년 총선과 북한의 2019년 선거장 모습(자료 : 뉴시스; 자유아시아방송)

비민주적인 국가에서는 권력자가 모든 여론을 통제하고 공론을 입맛대로 생산해낸다. 주로 공산권 출신 국가들이 정보 통제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와 같은 민족에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제도는 극단에 가까운 형태를 지니고 있는 국가인 북한은 조선중앙방송, 조선중앙텔레비죤, 만수대텔레비죤, 로동신문, 평양방송, 평양FM방송, 룡남산텔레비죤, 조선의 소리와 같은 미디어들이 모두 국영방송이며,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대외선전매체라서 언론의 보도 내용은 북한의 일반인이 볼 수 없게하여 언론을 통제한다. 게다가 북한에는 주민의 동향 정보를 수집하는 비밀 정보원이 생활 곳곳에 활동하며, 주민들을 감시한다. 이런 감시는 일상의 소소한 영역에서도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을 애초부터 관리한다.

언론 통제로 정보가 부족해지고, 서로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나누지 못하는 북한 국민들은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하고, 독재에 익숙한 사고의 흐름대로 살게된다. 북한에서 감시원으로 지냈던 경험이 있는 탈북민 A씨는 말한다. “북한 사람은 어릴 때부터 ‘김씨 가문에서 대를 이어야 한다’, ‘그 사람들은 위인들이다’라고 세뇌가 되어 있다. 김정은이 권력을 이어받은 것에 대한 불만 표시는 없었다.”

조지오웰 <1984>는 가상의 전체주의 독재국가가 사람들을 감시하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읽다보면 떠오르는 국가들이 있다...

 이 정보원은 10년 간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감시하는 비밀 감시원을 하다가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는데, 그 계기가 감시원 활동에 제공되던 자료집이었다. 그 정보를 주관을 가지고 해석하다가 “많은 생각과 의문이 생기면서 나라에 대한 내 생각도 변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20세기 후반까지 심각한 언론 통제와 감시사회를 경험해보았던 우리나라가 제도 민주주의를 달성해낸 것은 대단한 성과이다. 이제는 우리의 일상에서는 이정도의 통제와 감시가 이뤄지지는 않는다. 물론 과거 몇몇 정부에 의해서 시도 자체가 있기도 했으나 대찬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일상의 세부적인 영역으로 들어가 바라본다면, 여전히 여러 규모의 조직이나 공동체 등에는 결정권한이 집중된 소수가 다. 그리고 그들은 쉽게 권력을 남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견제받지 않는다.


조직이나 공동체에서 구성원들에게 관련 의제를 다루다보면, 늘 공동체의 자원과 연결된다. 그것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다수의 의견이 결정권자와 다를 수 있다. 권력자에게 손해가 될 수 있는 다수의 뜻이 있기 마련이다. 그걸 따르고 싶어하지 않은 것이 힘을 가진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권력자는 사람들을 미리부터 관리한다. 감시하거나 선심을 얻거나 소통 공간을 기획한다.


권력자는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는데, 연구를 통해 상당부분 증명됐다. 힘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또 권력의 맛에 빠진 사람의 행동은 뇌의 안와 전투엽이 손상된 환자와 비슷한데, 충동적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권력을 가진 것이 일종이 심리적인 상태이기도 하다.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그 높은 효능감은 유한한 존재인 자신의 비루함을 유능하게 확장시켜주는 달콤한 도취감과 연결되기도 한다.

권력유지하는데만 부지런한 권력자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광장을 관리한다. 헌데 그런 권력자에게 대항하는 힘을 모으는곳도 광장이다.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데 광장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우리는 함께하면서 잘못된 힘이 잘 사용될 때까지 떠들어야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내가 속한 집단에서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사람이라하더라도 집이나 연인관계 등에서는 권력자일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이런 성찰은 당장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나의 삶을 더 유익하게 한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대커 켈크너는 <선한권력의 탄생>에서 권력을 다루는 능력을 갖춘다면 '사적인 삶뿐만 아니라 공적인 삶에서도 올바른 지침을 얻을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도 알 수 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너그럽고 공손한 마음을 지니고, 창의적이며 지적인 엄밀성을 갖추고, 공동체와 사회연결망 속에서 함께 힘을 모으는 일도 여기에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권력의 유형이라고도 부르며,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의 종류 5가지가 있다.
어떤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혹은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달성하고자 할 때,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힘을 주로 사용하는가?

권력은 무조건 나쁜게 아니다. 다만 그 힘을 남용하는 것과 잘 사용하는 것의 차이는 상대방의 마음에 있을지 모른다. 그 사람들이 당신이 미치는 영향에 강제적이고 어쩔 수 없이 따르는가? 자발작이고 긍정적으로 따르는가? 반대의 경우도 있다.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의 어떤 힘에 의해 행동하는가?

1. 강압적인 처벌   2. 권한을 가진 자리에서 이뤄지는 명령   3. 돈과 같은 자원의 보상
4. 분야에 대한 높은 전문성   5. 인품과 같은 존경심

다시 내가 멱살을 잡혔던 때로 돌아가본다. 아까 말하지 않은 짜증나고 슬펐던 일 두가지 중 남은 하나는 '친구들의 침묵'이었다. 친구들이 내 편을 계속 들어주었다면 마음이 한결 나았을 것이다. 기왕이면 싸움을 더 적극적으로 말려주고, 내가 칠판을 지울 때 내 옆에 서서 한마디라도 해주었다면 정말 위로가 됐을 것 같다.

 

모두가 광장에서 깃발을 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외침이 진실이라면 공감해주고 작게라도 함께해주면 충분하다. 광장은 우리 사이에 고, 그 연결됨의 힘이 우리의 권력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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