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에서 발견한 것들] 05. 감기 몸살과 함께한 파론호수 트레킹
저녁도 먹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끙끙 앓았다. 아픈 와중에도 69호수를 보고 오지 못했다는 사실이 몹시 분했다. 이 기분으로 와라스를 떠날 수는 없었다. 여행지의 숙소 대부분이 그렇듯이 내가 묵는 숙소도 투어프로그램 예약 대행을 하고 있었다. 프런트에 가서 다짜고짜 ‘mañana laguna Parón’(내일 파론호수)를 외쳤다. 사장님은 용케 알아들으시고 여행사에 예약을 해주셨다.
파론호수 트레킹은 아침 8시에 시작한다. 물론 이 시간부터 걷는 것은 아니다. 69호수처럼 트레킹 시작점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꽤 걸린다. 어제보다 늦게 일어나도 되니 푹 쉴 수 있어 몸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니 얼굴에서 열이 났다. 거울 속 볼은 벌겋고 목이 따끔따끔 아팠다.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 아팠지만, 뭐라도 먹어야 기운이 날 것 같아서 조식을 꾸역꾸역 입에 욱여넣었다. 타이레놀과 아세타졸도 챙겨 먹고 픽업 온 가이드와 함께 길을 나섰다. 어라? 숨이 가쁘다. 길이 꼬불꼬불 춤을 춘다. 감기에 고산병 증세까지 더해진 거다. 몸이 녹아내린 초콜릿처럼 흐물거렸다. 아, 오늘도 이렇게 실패하는 것인가.
트레킹 장소로 향하는 승합차에 올랐다. 좀 나아질까 싶어 챙겨온 타이레놀을 한 알 더 삼켰다. 눈을 감고 의식적으로 잠을 청했다. 하지만 깊게 잘 수는 없었다. 중간에 관광지 몇 군데를 들렀기 때문이다. 잠이 들려 할 때마다 가이드의 내리라는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신기하게도 오늘은 우리 그룹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스페인어권 국가 출신이었다. 가이드는 초반에 영어와 스페인어 두 가지 버전으로 설명을 하는가 싶더니, 언젠가부터 스페인어로만 설명하기 시작했다. 유일한 동양인 관광객이자 1인 여행자인 나는 멀뚱멀뚱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언어를 조금이라도 알고 여행하는 것과 모르고 여행하는 것이 천지 차이라는 걸 제대로 실감했다. 세심하지 못한 가이드가 야속하기도 했다. 좀 더 깊게 이해할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승합차가 선 곳은 파론호수 바로 앞이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오늘은 꼭 성공하고 말겠다'고 다짐했는데, 에메랄드빛의 호수가 눈 앞에 펼쳐지니 '아픈데 안 올라가고 쉴까'라는 생각이 샘솟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어제의 기분을 떨쳐내려면 올라야 했다.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이곳도 해발 4000m가 넘는 곳이라 고산증세가 없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한 알 더 챙겨 먹은 타이레놀 덕분인지 현기증은 거의 없었다. 호흡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조금씩 쉬면서 걸으니 할 만했다.
중간 지점부터는 돌산을 올라야 했다. 자연스레 사족보행을 하게 됐다. 많은 이들이 돌무더기를 보고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기어올랐다. 뭔가 짚고 기댈 수 있어서 그냥 걷는 것보다 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전구 교체할 때 쓰겠다'고 챙겨온 아빠의 목장갑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다치고 긁힐 것을 우려해 어딜 짚어야 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성공했다. 하하하하하! 무려 선두그룹에 속했다. 왕복 6시간의 69호수 트레킹을 경험하고 나니, 왕복 1시간의 파론호수 트레킹은 정말 껌이었다. 심지어 내려올 땐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궂은 날씨 탓에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봉우리를 선명하게 볼 순 없었다. 하지만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그 모습에 감격하고 말았다. 호수의 빛깔도 아래에서 바라볼 때와 많은 차이가 났다. 성취감에 취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위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다웠다.
와라스 시내로 돌아와서 마추픽추에 함께 가기로 한 Y언니와 저녁 식사를 했다. 언니는 D씨와 함께 파스토루리 빙하 트레킹을 하고 왔다고 했다. 트레킹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5000m가 넘는 해발고도에 생사를 넘나들었단다. 의대생인 D씨가 농담으로 CPR(심폐소생술) 이야기까지 꺼낼 정도였다고. D씨는 의료봉사 차 페루에 왔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여행 중이었다. 귀국일까지 얼마 남지 않아 가고 싶던 쿠스코를 포기하고 와라스에 왔단다. 심야버스를 타고 리마로 가는 나를 위해 두 사람은 터미널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D씨는 20kg이 넘는 내 캐리어를 끌어주기도 했다. 비가 와서 쉽지 않았을 텐데, 여러모로 참 고마웠다.
남미 국가들의 면적은 대부분 넓다. 여행 시 이동에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항공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남미의 국내선 항공료는 다소 비싼 편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이 심야버스를 이용한다. 버스에서 푹 자면 된다기에 별 걱정 없이 심야버스를 탔다. 하지만 리마로 가는 8시간 내내 너무 괴로웠다. 160도 젖혀지는 좌석은 넓고 폭신했지만, 감기몸살 때문인지 전혀 편하지 않았다. 오한 탓에 잠도 깊게 잘 수 없었다. 두세 살만 어렸다면 어땠을까? 그때는 아파도 금방 낫곤 했는데 말이다. '어렸을 땐 체력이 되는데 돈이 없고, 나이 먹으니 돈은 있는데 체력이 안 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물론 지금 내가 부자라는 말은 아니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69호수에 오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100% 씻어낼 순 없었지만 뭔가 할 수 있다는, 이룰 수 있다는 의지가 퐁퐁 샘솟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의 감정이 그랬듯이 이 감정 역시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자만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