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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 Jun 15. 2024

기억하고 싶은 날

적응 좀 한 것 같아요

 일요일 아침. 해야 할 게 많아 아침에 눈을 뜨고 바로 준비해서 밖으로 나갔다. 로비 테이블에 앉아서 해부학 공부를 시작했다. 수업을 들을 때는 참 재밌는데, 막상 머리에 집어넣으려니 시간이 꽤 걸려서 마냥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하나씩 진도를 빼면서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같은 과 친구들도 하나둘 테이블에 앉아 공부하길래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쓸데없이 각자 공부 진도 어디까지 나갔냐고 궁금해하고 수다를 떨면서 공부를 잠깐씩 회피했다. 다시 집중하다 밥도 먹고 오고 하다 보니 금세 밤이 되었다. 별 것 없었지만 열심히 보낸 하루. 새벽까지 하고자 했지만, 쉬어야 할 것 같아 기숙사로 돌아왔다. 씻고 아예 일찍 자버렸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먼저 깨서 냅다 기숙사 책상에 앉아서 책을 폈다. 열심히 진도를 빼고 있는데, 룸메가 나가면서 시험을 오늘 보는 거냐고 물어봤다. 하하. 평소에 월요일 아침에 기숙사 책상에 앉아있던 적이 없어서 그런 거 잘 안 묻는 친구가 궁금했는지 물어본다. 시험은 다음 주지만, 할 게 너무 많아서 그래. 대답하고선, 룸메를 배웅해 줬다.


 수업이 끝나고 졸음이 몰려와서 쉬다가 뮤지컬 리허설에 참석했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정말 스피드하고 깔끔하게 끝나서 좋았다. 끝나고 카페에서 공부하려고 갔지만 많이 하진 못했다. 새벽에 공부를 많이 한 듯하다. 다음 날은 수업이 오전 9시라서 잠을 많이 못 자고 수업에 갔다. 발표 날이라 순서 기다려서 발표를 끝내고, 쉬다가 뮤지컬 본 공연에 갔다. 이전 학교에서도 뮤지컬을 해본 적 있지만 규모 면에서 훨씬 큰 게 느껴졌다. 그래도 주연은 아니니 덜 부담스러웠다.


 1시간 반 정도의 러닝 타임 중에 두 곡 정도 춤을 추거나 카메오로 출연하면서 남은 시간에는 틈틈이 관객이 되어 호응했다. 나랑 잘 지내고 친한 동기 S가 주연을 맡아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너무 멋있었고 예뻤다. 3개월 동안 다들 고생한 것들이 환영받는 순간이었달까. 그렇게 나름의 활기찬 분위기를 느끼고, 같이 사진으로 남기고 공연이 막을 내렸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기숙사로 돌아왔는데, 그제야 피곤함이 몰려와서 씻고 계속 누워있었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하면서 있다가, 그냥 일찍 잠에 들기로 했다. 수고했어.


 큼지막한 발표나 공연도 끝났겠다 이제는 시험 필기만 대비하면 돼서 안심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수업에 가긴 갔는데 골골대면서 S가 주는 진통제를 먹고 겨우 수업을 들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약 기운이 돌면서 좀 나아졌다. 시간이 없었으므로 바로 공강 시간에 공부 진도를 빼고, 소생술 실기 시험을 보고 와서 다시 공부 진도를 뺐다. 그대로 새벽까지 쭉 달리고, Y와 야식도 먹었다. 먹을 때 행복해진다.


 다행히 푹 자고 나서 인지 좋은 컨디션으로 시작한 목요일. 맑은 정신으로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동기 D랑 텐동을 먹으러 갔다. 즐거운 데이트. 계획에는 없었지만, 노래방도 가고 아트박스도 구경했다. 그런데 이날 너무너무 더웠기 때문에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자전거를 탔다. 대전에서는 처음 타봤다. 자전거가 없었으면 학교로 도착할 때쯤 기운이 다 빠졌을 것 같다. 돌아오자마자 테이블 자리를 잡고 공부하다 보니 금세 저녁이 되었다. 아까 텐동도 야무지게 먹었고, 지금 당장은 입맛이 없어서 에너지바로 저녁을 대신하고 공부를 이어갔다. 새벽 5시까지 동기들이랑 공부했는데 예상한 부분까지 다 빼지는 못했다.


언제나 맛있는 텐동 한 그릇

 그런데도 이상하게 목요일은 참 행복했다. 문득문득 즐거운 순간들이 있어서 그랬는지, 내 선택이기는 하더라도 그냥 이 순간들을 내가 갖게 된 게 감사해서 그런 건지. 3월 초에 내려왔을 때랑 지금이랑 많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내가 잘한 게 맞는 건지 확인하는 과정을 동시에 거치면서 혼란스럽기도 했는데, 그 과정이 지났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인턴까지 하고 그대로 취업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기도 했었고, 다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하긴 하면서도 그냥 때려치울까도 고민했었고, 친구들이나 동생들이 살아가는 걸 보면서 때때로 나는 너무 미련한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앞으로 할 것도 산더미이긴 해도, 지금은 오길 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대전에 사는 것도 좋고, 학교도 즐겁고, 공부는 어렵지만 재밌고, 일은 힘들지만 꼭 해내고 싶고. 글쓰기도 재밌다. 사실 처음부터 언어가 아닌 의료 쪽으로 갔다고 해도 적응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이긴 하고.


 금요일은 학기의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공강에도 수업이 끝나고도 어김없이 내리 앉아서 공부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하하. 밤늦게까지 하다가 한 숨자고 와서 글을 정리 중이다. 이번 주는 꼭 기록하고 싶은 그런 날들이 많았는데, 브런치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번 주말도 파이팅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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