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탐독하여 현재를 살아가기
이 글은 10년 전에 작성한 일기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1월 1일, 기어코 이 날이 다가왔다. 새해에 사람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려고 하는데 그것들은 뭔가 커다란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것을 본인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시간의 흐름에 저절로 묻혀 생겨나는 망각이 바로 그것이다. 그게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고 빈부자의 상태와 무관하게 생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상을 바라보고 쫓아가는 것이 어찌보면 인간의 본성이자 숙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근거를 하나로 들자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정말 그것이 때론 간절하고 너무나 이루고 싶은 것이어서 충동적으로 행동했을 때도 있을 것이고 방식이 다를지라도 여러모로 그것에 대해 목맨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늘 그렇듯이 밑을 내려다 보며 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잘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안 되고 싶어하는 마음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마음이 현재의 처지를 더 불행하게 만들 수 있기도 하지만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희망과 빛이 되어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게 또 있을까?
생각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스스로 자멸하고 자신을 가꿔나가지 않는다면 정말 그건 자신을 앞에서 칼로 찌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세상이 우리를 더 압박하고 가야할 곳과 되돌아갈 곳을 마련해 주지 않아 수도없이 생활고의 숫자를 줄여놓고 여러가지로 힘들게 한다고 해서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기 보다는 새로운 것을 고민하고 참신한 생각을 가지면서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행동이 현재로썬 더 필요한 시점이다.
평시를 전시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절박함도 여기에 포함되어야 하며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단련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목표에 다가설 수 있도록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미친 놈 소리를 들을만큼 자기가 원하는 것에 빠져있어야 하는 시점이다. 앞길을 똑바로 응시하고 주변의 변수를 상쇄시킬 만큼의 내공을 갖추는 것이 삶이란 배를 무사히 꿈의 항구에 다다를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15년의 첫 날, 그리고 2025년의 첫 날. 10년 전 글을 보면서 뭔가 유사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난 과연 10년 전에 작성했던 내용대로 무사히 꿈의 항구에 도착했는가? 아니면 계속 항구에 도착하기 위해 항해를 하는 중인가? 그래, 10년이 지나면 모든 게 다 잘 갖추어진 삶을 살 거라고 그 당시에는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10년 후 지금 나는 여전히 꿈의 항구에 도착하지 못했다. 10년 전의 나는 열정과 패기만 있었다. 감정적인 이상주의자는 미래보다는 현재에 집착하고 있었다. 내가 살고 싶은 삶, 그것이 정녕 무엇이었을까? 돈 많이 벌고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편안하게 늙어가는 그런 삶이었을까?
성공, 나는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성공에 목말라 있었다. 군 복무를 할 당시에 능력이 출중한 선후임들을 보면서 도대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렇게 능력이 부족하고 형편없는가 하는 생각에 잠을 설칠 때가 종종 있었다. 난 변화에 경직된 삶을 살아왔나? 그게 아니라면 아직 내 때가 오지 않은 것인가? 그러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면서 어느 순간 감정적인 이상주의자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나 자신을 혹독하게 대했다.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고 자신의 삶을 비관했던 그런 모습이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10년 후 지금, 나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제는 현실에 대한 시야가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넓어졌다. 타인의 능력을 인정하고 더 이상 내 스스로를 비관하려고 하지 않는다. 건전한 삶을 오랫동안 지속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군 복무 때 나는 철학을 처음 접했다. 만약 내가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글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돈과 성공 그리고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철학을 통해 나는 잊고 있었던 나의 독서 유전자를 깨울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등쌀에 못 이겨 수동적인 독서를 많이 했지만 그게 나이 들어서 엄청나게 도움이 많이 됐다. 어렸을 때 억지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 책을 읽었던 습관이 성인이 되어서도 어느 정도 유지가 되는 게 느껴졌다. 난 20대 때 취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책읽고, 사색하고, 필사하고 이게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10년 전 글을 보면 뭔가가 되겠다, 뭐를 하고 싶다는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거의 없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내용들로만 가득 채운 글들을 보니 청춘의 망각이 한편으로는 순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의 목표에 다가서는 것, 과연 어떤 목표였을까? 10년 전의 나에게 묻고 싶다. 목표에 다가설 수 있도록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10년 전에도 알고 있었는데 정작 10년 후 나는 그 부분에 있어서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미친 놈 소리를 들을 정도로 뭔가에 빠져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지금 다시 보니 어느 정도는 몰입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 어떻게 보면 몰입할 때가 제일 편하다. 잡다한생각이 사라지고 한 가지만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몰입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생각을 자기의 생각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닌 내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육체와 정신을 지키기 위해 날마다 자신을 가꿔나가는 삶. 그것이 진정 삶이란 배를 무사히 꿈의 항구에 다다를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아닐까?
10년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목표, 이제는 그 목표가... 목적지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삶은 의미부여의 연속이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삶은 수명이 가장 짧은 삶이 될 수밖에 없다.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삶, 꾸준히 일을 하기 위해 몸을 가꾸는 삶, 개인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삶 모두 의미가 있고 값진 삶이다.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갈 때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나름의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다. 10년 전 나는 몰랐다. 빡세게 사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여 고립을 택하고 자기만의 길을 걸어갔다. 불분명한 미래 그리고 점점 빠르게 다가오는 변화에 발맞추어 살아가려면 항해사의 마음으로 주변환경을 둘러볼 수 있어야 한다. 10년 전의 나 그리고 10년 후의 나. 두 명의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목표를 향해 전진해야 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마음의 성숙함과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만큼은 10년 후의 나에게 점수를 주고 싶다.
10년이 지난 지금, 예전의 골방보다 조금은 넓어진 이곳에서 글쟁이의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희망과 젊음의 빛이 영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