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탐독하여 현재를 살아가기
이 글은 8년 전에 작성한 일기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지치지 않는 문인의 삶을 살겠다. 인생의 모든 상황을 나만의 단어와 문장을 통해 묘사할 수 있는 문체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 나의 모든 집중과 관심을 여기에다 쏟겠다. 삶의 동기부여를 쏟아내는 사람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즐거움과 감탄으로 바꿔놓겠다.
인간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자신의 사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늘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삶의 희노애락을 경험하는 일상적인 통과의례를 거친다. 마음의 성숙함이 무르익을 때가 되면 죽음의 공기를 마신다.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안타까운 순간들이 계속됐던 지난 세월. 나는 무엇을 위해 그리도 고군분투했던가? 돈벌이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의 삶이 어느덧 철학이란 통로에 접어들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지식의 파편들을 가지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잔뜩 품고 밤을 지새울 준비를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잘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당장 내일 결혼식 일정이 있는데 뜬금없는 공부라니...
주체할 수 없는 뭔가가 나를 잠에서 깨운다. '자지 마라, 자면 너의 삶은 수많은 부담의 짐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고 제대로 서 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키케로는 800통의 편지를 남겼으며 볼테르는 프랑스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었다. 이처럼 자신의 일과 삶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자들이 결국 시대의 상징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지금 이 순간 역사의 발자취를 남길만한 행보를 하고 싶다. 누구보다 공부를 많이 하며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생각의 폭을 넓혀 나가고 싶다.
8년 전의 글을 보면 젊음의 혈기왕성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실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이상적인 문장들만 늘어놓으며 희망을 지속하고 싶었던 날들이 떠오른다. 학교에 다닐 당시에 내 글솜씨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다만 뭔가를 계속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강했고 뭐든지 해보려고 노력했다. 독서와 글쓰기에 심취하며 하루를 보냈던 나에게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바로 문인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문인이라... 요즘 시대에 문인으로 산다는 게 쉬운 일인가? 당시에 나는 문인으로서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인가? 특히나 나같은 사람이 글로 뭔가를 한다고 생각하기에는... 뭐랄까... 자신이 별로 없었다.
글쓰기가 삶의 전부가 된다면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인데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솔직히 그 당시에 내가 정말로 글을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은 힐링의 차원에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말로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막상 글쓰기로 먹고 사는 게 가능할지에 대한 생각을 하니 글쓰기가 다소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8년 전, 나는 문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문인으로 산다는 게 어떤 삶인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어떤 것인지를 몰랐으니 더더욱 망설여졌다. 그때는 현실에 대한 감각도, 시야도 부족했기 때문에 단순히 독서를 많이 하고 글을 많이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문인의 길을 가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문인이 아닌 직장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 취업을 했고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며 하루를 보냈다. 직장을 다니면서 독서를 하고 자기계발을 한다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하고 일을 마친 후에 퇴근을 하면 피로감으로 인해 절로 힘이 빠진다. 그래서 2년 전부터 꾸준히 운동을 하며 체력관리를 하고 있다. 그나마 체력관리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조금씩 자기계발과 글쓰기를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쉽지 않았다. 독서를 한다는 것, 글쓰기를 한다는 것. 학교를 다닐 때는 독서와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직장을 다닐 때는 그마저도 부족했다. 시간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정신적 여유가 없었기에 시간적 여유가 제로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8년 전 그토록 원했던 문인의 삶은 취업한 이후부터 살아갈 수 없었나? 아니다. 반전은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찾아왔다. 프로젝트로 인한 압박감에 시달리며 하루를 버티고 또 버티는 과정에서 마치 뭔가에 이끌리듯 펜을 쥐어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1시간, 2시간이 지나더니 어느새 3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가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다 보면 시간 개념이 사라진다. 필사는 책이나 자료를 보고 글을 베껴쓰는 것이지만 뭔가를 참고하지 않고 그저 노트에 생각나는 것들을 끄적이는 글은 필사와는 다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계속 쓰다 보면 어느샌가 자정을 넘기거나 새벽이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왜 그랬을까? 글로 인한 치유와 생각정리가 아닐까? 한때는 문인의 삶을 거창하게 생각했다. 아무나 문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나는 그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문인의 삶. 그것은 나의 꿈이었다. 하지만 8년 전의 나는 꿈을 정지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뭔가를 꼭 이루어야만 목표를 이룰 수 있고 사람들에게 반드시 인정을 받아야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게 엄청난 착각이라는 것을 말이다. 비교와 열등감으로 인해 짓눌려있던 자신감과 자존감을 다시 일으켰고 더 이상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은데 이렇게 살아가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프로젝트에 지쳐있던 나는 펜을 다시 들었다. 책을 다시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업무로 인해 미처 신경쓰지 못한 일상을 다시 되돌아봤다. 그리고 문인의 길을 다시 걷기로 결심했다. 과거에는 반드시 글로 돈을 벌어야만 문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 삶을 표현하고 묘사할 수 있는 활동만 계속할 수 있다면 충분히 문인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누구의 주목을 받지 않아도, 돈을 벌지 않아도 문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직장을 다닌다 하더라도 문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안타까운 순간들이 계속됐던 지난 날들. 무엇을 위해 그리도 고군분투했을까? 지친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를 찾고 있었지만 각박한 세상의 풍파에 떠밀려 일탈과 나태함, 늘어짐으로 휴식을 취했던 날들이 한편으로는 후회스럽기도 하다. 삶은 계속 흐르는 것이다. 과거의 시간들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진 않기에 지금의 삶을 문인답게 살아간다면 죽을 때까지 문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기다운 경험, 난 그 경험을 지속하고 있다. 나의 글은 계속 남을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도 남겠지만 나의 공책에도 남겨질 것이다. 글은 나의 행보를 보여주고 나의 생각을 남겨준다. 매순간 글로 걸어가고 글과 함께한다. 난 문인이다. 그냥 평범한 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