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탐독하여 현재를 살아가기
이 글은 8년 전에 작성한 일기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을 읽는다고 삶이 변하지 않는다? 책을 제대로 읽는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책이 주는 지혜와 정보가 우리 삶에 얼마나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 중국 고전을 보면 독서인들이 나라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지휘관 역할까지 수행했다. 책을 읽어야 나라를 일으킬 수 있으며 제대로 된 사회 질서와 시민 의식을 바로 알 수 있다. 우리말 우리글을 제대로 배울 수 있고 생각의 폭을 더 넓힐 수 있다. 책은 단순히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책의 내용을 곱씹어보고 어떤 내용이 마음에 들며 오탈자를 수정하고 얻어가야 할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과정 그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나는 요즘에도 책을 읽으면 늘 고민하는 것이 있다. '어떻게 읽어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책읽기에 앞서 떠오르는데 정말이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무턱대고 책을 읽다보면 무용지물이 되거나 흐름을 잃어버릴 수 있음을 잘 알기에 근본적이면서도 핵심을 담고 있는 내용이 있는 책을 찾게 된다.
책은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있었다. 책은 내 삶의 전부다. 자기 전에도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자기 전에 가끔 책을 읽는다. 책을 읽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가 됐으며 책은 내 친구이자 애인이 되었다. 결혼 안해도 좋고 연애 안해도 괜찮다. 책만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난 공부하는 게 좋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 말고 스스로 하는 공부 말이다. 공부를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평생 공부만 하다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한다.
8년 전, 난 책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면 무조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대여했다. 그렇게나 책을 많이 읽었던 순간이 내 삶에서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가 않는다. 당시 내가 살던 동네의 도서관을 가려면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경사가 심한 언덕길이다 보니 여름에 도서관을 가게 되면 도착하는 즉시 헉헉거리며 입구에 들어선다. 그런데도 도서관을 그렇게나 많이 갔으니 그야말로 책에 푹 빠져 살았던 것이다. 대여한 책들을 쇼핑백이나 가방에 넣고 집으로 돌아가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책을 펼치면 뭔가 마음이 편안했다. 책의 내용을 필사함과 동시에 내가 느낀 감정이나 나만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내 스스로 뭔가를 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혼자서 주도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희망과 기대감에 젖어있기도 했다.
책은 내 삶의 전부였다. 복학을 하다 보니 학교에 아는 친구들도 없었고 초중고 동창들과도 연락이 끊긴지 오래였기 때문에 하루의 패턴은 정해져 있었다. 학업, 독서, 필사가 전부였다. 군대에서 철학을 처음 접하고 그 이후부터 시작된 독서에 대한 열망이 제대 후에도 이어지더니 급기야 학교를 다니면서는 엄청나게 확장되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온갖 책들을 다 읽었다. 정치, 경제, 역사, 철학, 심리학, 사회, 문화, 교육, 종교, 과학 등 여러 가지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접하면서 세상이 참으로 넓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당시 학교에서 독서 관련 문화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해 상반기와 하반기에 최다 다독자로 선정되어 상까지 받았다. 어릴 적 호기심이 뒤늦게 발동이 걸린 것일까? 책에 대한 나의 열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상을 받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독서에 너무 빠지다 보니 정작 취업에 대한 준비에 소홀했고 급기야는 전공을 살리지 못한 채 다른 곳으로 취업을 했다. 이상과 현실, 그 사이에서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이상을 실현시키고 싶은 마음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마저 잊어버린 듯 했다. 독서가 오히려 독이 된 것일까? 그 당시에는 그랬다. 독서와 필사를 계속 할 수 있는 삶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취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만의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벗어난다는 것이야말로 나의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취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8년이 지난 지금 나는 경력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개발을 하면서 말이다. 엥? 이게 어찌 된 것인가? 시간이 삶에 대한 방향을 알려준 것이다. 취업을 하긴 했으나 적응을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적응도 제대로 못했는데 차가운 사회의 현실과 냉혹함을 여러 번 접하다 보니 업무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화 받는 것이 두려웠고 고객과의 대화마저도 부담이 되었다. 그때는 그랬다. 모든 게 익숙하지 않았고 실수를 연발하며 데미지를 줄이는 역량이 전적으로 부족했다. 결국 퇴사를 했고 그 이후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고난의 행군, 취준기간이 점점 길어진 것이다. 공백기가 길어지면 취업이 힘들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한 번 해보고 나니 이거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독서와 필사에 다시 빠졌다. 돈 한 푼도 못 버는 상황에서 또 다시 독서와 필사라니... 어느 작자가 본다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간에 빅데이터 교육도 받고 여러 시도를 했지만 중도에 하차했다. 강단있게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 상황이었으니 중도 하차는 예견된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 흘렀다.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나는 드디어 취업다운 취업을 했다. 그리고 취업을 하고 나서 깨달았다. 독서와 필사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독서와 필사를 많이 한 덕분에 언론사의 정보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해당 정보에 대한 배경과 출처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언론기사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분석하고 그 기사에 대해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동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독서와 필사를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고객과의 협의를 어렵지 않게 이어나갈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책을 접하다 보니 새로운 분야를 접해도 거부감이 없었다. 지금도 뭔가 새로운 개발언어나 지식, 정보를 접할 때 그에 대한 거부감이 먼저 생기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인지 궁금한 마음이 먼저 생긴다. 독서와 필사에 빠져 자격증 공부를 하지 않은 게 한편으로 아쉽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현상과 사물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스스로의 판단력을 키울 수 있는 공부를 했으니 이는 자격증 공부한 것 이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독서는 중요하다. 인터넷으로 전자책을 볼 수 있어서 종이책의 중요성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과거에 어떤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종이책은 종이가 낭비되니 전자책으로 읽으면 훨씬 더 좋아요.' 개인적으로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동의할 수 없다! 종이책이 낭비라고 하면 서점에 책이 더 나와서는 안 된다. 근데 왜 종이책이 계속 판매되는가? 당연히 종이책을 읽는 독자가 많기 때문이다. 분명히 얘기할 수 있다. 종이책은 전자책과 비교했을 때 촉감부터 다르다. 형태가 있고 종이를 만지면서 글을 음미할 수 있다. 전자책은 다르다. 마우스를 통해 스크롤을 움직이며 눈을 움직이는 것이 전부다. 하이라이트 기능을 활용하여 중요 단어나 문장을 표시할 수도 있지만 직접 펜을 활용하여 밑줄을 긋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종이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내 삶의 활력을 주고 삶에 대한 관점과 시야를 넓혀준 독서. 그 독서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