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과거에서 길을 찾아보자-14] 방향

과거를 탐독하여 현재를 살아가기

by BeWrite
location-pin-with-winding-dashed-arrow_78370-4253.jpg

8년 전의 나 그리고 8년 후의 나

이 글은 8년 전에 작성한 일기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2017. 02. 23 ==

좀 더 이해하기 쉽고 바람직한 방향을 택할 수는 없을까? 누구의 삶을 대신해서 살아가는 우리가 아니다. 살아가는 과정은 저마다의 특징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개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는 물음표의 연속은 깨어있음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사실 뭐가 정해져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단지 궁금하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일부러 꾸역꾸역 생각하여 질문의 힘이 더 커지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삶이란 자고로 주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주인이 본인이 아닌 타인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 문제가 있어도 그것을 간과하고 지나쳐 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여유를 제대로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휴식을 단순히 쉬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살아가는 데 있어 자신의 삶에 대한 권한을 많이 가지지 못할 수 있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나 역시도 휴식을 단순히 쉬는 것으로만 생각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쉬기만 하면 되겠지 하고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일이나 공부를 해야 마음이 편하고 스스로의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나머지 어딘가에 소속되어 돈을 벌 수 있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느껴졌다. 쉬는 방법을 누군가에게 배운 적도, 들어본 적도 거의 없었으니 돈이 어느 정도 있고 특별한 문제가 없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그저 불안함으로 가득 차 있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싶었다. 지나친 형식과 사회적 시선 때문에 눈치를 보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삶의 패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삶에 대한 답은 하나가 아니다. 수많은 선택이 있고 그 가운데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신은 말 그대로 자신이지 타인이 아니다. 어떻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마냥 점수나 학벌만을 생각하며 바둥바둥 거릴 수 있단 말인가. 현실에서 요구하는 것과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런데도 학교가 1순위라고 생각하며 그 안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스스로의 머리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자유로움을 상실하며 도전과 모험이 위험하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당연한 이치라고 무의식적으로 새긴다.




안정을 최고의 가치라고 학습받은 결과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도전과 모험보다는 레퍼런스의 유무에 따라서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타인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의식한 나머지 과감하고 담대한 선택을 내릴 수 없게 된다. 다음 달에 다시 학교를 간다. 1년 휴학 후 다시 들어가는 학교인데 과연 어떤 마음으로 학교를 다녀야 할까? 졸업하면 내 삶은 어떻게 될까? 취업에 대한 나의 마음은 차갑기 그지 없는데 내 전공으로 취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 2025. 03. 30 ==

8년 전의 나는 어떠했는가? 20대의 나는 생각에 잠겨있기 보다 거의 생각에 잠수한 상태로 살아가지 않았나 싶다. 1년 전이었던 2016년, 나는 처음으로 알바라는 것을 했다. 편의점 알바였는데 일반 편의점이 아닌 병원 안에 있는 편의점이었다. 병원 안에 있다 보니 이용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특히 오전 시간과 점심 시간에 업무 강도가 상당했는데 그만큼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도움도 많이 됐다. 편의점 카운터 업무 이외에 편의점 물품 관리 및 보충 그리고 기타 재무와 관련된 업무도 했는데 첫 알바였던 만큼 성실하고 책임감있는 모습으로 임하고자 했다. 그 해 12월까지 7개월 정도 알바를 하고 다음 해인 2017년 3월 전까지는 휴식과 복학을 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사실 준비랄 것도 없었다. 그냥 쉬면서 책읽고 글을 쓰며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을 복기하는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지금도 나는 8년 전의 나와 같이 삶에 대한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다. 지금까지 받았던 교육과 어른들의 가르침을 곱씹어보면서 과연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을 가끔씩 하며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다. 잠시 잊어버리면서 세상에 대한 즐거움과 만족을 누리며 살아간 적도 있었지만 내 나이와 미래를 생각해봤을 때 과거와 같이 한 직장에서 오래 다니며 승진을 기대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끝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실업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취업에 대한 커트라인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직장을 다니고 있어도 당장의 월급만으로는 안정된 미래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8년 전, 나는 현실을 체감하고 싶은 마음에 과감하게 휴학을 내고 알바를 했다. 그 알바를 통해 돈 버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구나 하는 것을 몸소 느꼈다. 그 이후 나는 몇 가지 알바를 더 했는데 마찬가지로 돈벌이라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반복해서 느꼈다.




8년 전, 개강까지 얼마 안 남은 시점에 오늘의 일기를 작성했다. 휴식을 하고는 있었지만 마음은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졸업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될지 또 졸업을 하게 되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불투명함과 불확실함이 젊은 날의 걱정과 염려를 더하고 있었다. 사실 20대는 모든 게 불투명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불안한 게 비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불안함의 비중이 높다면 아무리 쉬고 있다 할지라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개강 후 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예전과는 많이 다른 대학생활을 했다. 과거에는 한 번도 지각을 한 적이 없었다. 내 역량이 부족하여 학점을 높게 받지 못한 과목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학점을 낮게 받은 적은 거의 없었고 최대한 성실하고 충실하게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의도적으로 지각하는 날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전공 수업만큼은 충실했지만 교양 수업 같은 경우 의도적인 지각이나 결석을 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난 그때 내 모습이 싫었다. 뭔가 시스템이나 틀에 갇혀서 계획적으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내 자신을 보며 과연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때 취업말고 뭔가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루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27살이었던 그 당시를 되돌아봤을 때 일반적으로 취업을 준비하고 자격증 공부에 몰입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였다. 난 그때 학교 도서관에서 있는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으며 필사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가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하거나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게 재미있었고 뭔가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구나 하는 마음을 느끼게 해주었으니까. 덕분에 그때 공부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신문기사나 매체를 보면 어떤 내용인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으니 어떻게 보면 일반상식과 배경지식에 대한 앎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좋은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랬다. 나는 취업말고 뭔가 다른 것을 원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다만 경력이 없고 사람을 많이 만나봤던 경험이 없으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이 취업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취업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앞서간 생각이었다. 결국 졸업 후 취업준비를 하다가 취업에 성공하여 지금은 3년 이상의 경력을 쌓았다. 그 동안 여러 경험을 하며 돈벌이를 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은 여전히 지울 수 없었지만 그래도 사회가 어떤 곳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삶의 진로, 그 진로는 과연 누가 정하는 것일까? 8년 전의 내가 왜 당시에 저런 글을 작성했을까? 우리나라는 유독 비교 의식이 강하다. 학벌, 좋은 직장 심지어는 어느 학원을 다니거나 어느 동네에 사는 지까지도 비교하여 계급과 순위, 신분을 정한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좋은 직장을 다녀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을 인정해주는 것은 당연하다. 근데 누구나 좋은 학교를 나오고 좋은 직장을 다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보는 관점에 따라 개인의 삶은 저마다 다양하고 그러한 삶의 모습들을 어느 정도 존중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대체로 정해진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돈을 많이 벌고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게 기성세대의 바람이었다. 자식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제공해주는 것이 우리 세대 부모님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사회 모습을 보면 어떠한가? 물론 부모님의 보살핌을 잘 받아서 성공한 자녀들도 있을 것이다. 좋은 직장을 다니며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으며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녀들의 숫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힘, 그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공부를 한 적이 있었던가? 단순히 점수와 학점을 잘 받기 위한 공부를 열심히 했을 뿐이다. 점수와 학점을 잘 받으면 취업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돈벌이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정작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는 하지만 회사에 취업하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회사에 적응하는 게 쉬운가? 예전 같으면 신입사원 교육을 했지만 요즘은 신입사원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회사가 그렇게 많지 않다. 내가 들어갔던 첫 회사도 사실상 신입사원 교육이 없었다. 각자도생의 개념이 강했기 때문에 초반에 엄청나게 고생하면서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 현장에서 여러 경험을 했지만 회사를 들어가니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것은 입사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 압박감과 스트레스,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하는 성실함과 책임감, 고객과의 미팅, 끊이지 않은 전화벨 등등 회사는 그야말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슈가 생기는 곳이다. 그런 회사에서 마음의 여유를 유지하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하다 못해 복지가 좋고 업무 환경이 편안한 회사에서 마저 자기계발이 어렵다고 하여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 회사가 얼마나 힘든 곳인가.




내 삶의 방향. 내가 뭔가를 주도하고, 설계하고, 기획할 수 있는 그러한 삶. 그런 삶에 익숙한 개인이 얼마나 존재할지 나도 잘 모른다. 입시에서 매일 듣는 키워드가 있었다. '자기주도학습'. 하지만 말이 자기주도학습이지 사실 의도된 자기주도학습이나 다름 없지 않나. 진정한 자기주도학습이란 삶의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역량과 마음을 가진 개인에게나 해당하는 얘기일 뿐이다. 뭔가에 쉽게 지치고, 무기력함에 빠지고, 알지 못하는 뭔가를 접했을 때 망설이거나 레퍼런스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삶은 언젠가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성실함과 책임감만 있으면 먹고 사는 데 있어 큰 문제는 없다. 그 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 문제는 내가 가진 성장배경, 경력 등 여러 요소를 고려했을 때 이러한 성실함과 책임감이 능동적으로 발현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가 관건이다. 삶에 대한 답은 하나가 아닌 수많은 선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택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이제까지 살면서 해왔던 선택의 속성이 능동인지 수동인지를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체로 자기 분야에서 오래도록 폼을 유지하거나 업무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은 다 자기만의 뭔가가 있는 사람들이다. 취업을 하여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독립성이 강해서 알아서 일처리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지만 일에 대한 능률과 지속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정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10년 후 또는 20년 후에 어떤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지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비록 세상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서 앞으로의 삶이 힘들어진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을까? 길은 분명히 있다. 없는 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지 않아 낯설고 많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존재하는 길로만 갈 수는 없다. 존재하는 길로만 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세상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삶의 방향, 이제는 남이 아닌 내가 선택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keyword
이전 13화[과거에서 길을 찾아보자-13] 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