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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27. 2024

자습, 자기주도적학습, 학습주도성

학문의 목적, 그리고 교육의 과정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반 친구가 교지 동아리에 다니고 있어서, 그 친구를 통해 4컷 만화를 그린 일이 있습니다. 만화의 주제는 당연히 공부였는데, 각 컷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1컷 : 

"날아라~ 새들아~ 높은 하늘을~"  

학생이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고 있다


2컷 : 

"달려라~ 말들아~ 푸른 벌판을~"

학생이 퀭한 얼굴로 공부하고 있다. 


3컷 :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학생이 박카스를 마신다


4컷 :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코피를 쏟아낸다


 이런 만화를 그리게 된 이유는 5월 5일 어린이날을 넘기고 나서 중간고사가 있었거든요. 최근 고등학교의 학사일정은 일반적으로 4월 4주차 정도에 중간고사, 아니 요즘은 1차 지필평가라고 하죠. 시험기간을 그때 잡지. 어린이날을 끼고 중간고사 일정을 잡는 건 사실 해도 너무한 처사라고 그때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옛날 이야기죠. 수시가 도입되는 첫해라 아직 성적관리의 전산화, 생기부 전산화도 이루어지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학사일정을 운영하는데 여유가 있었고 기말고사를 7월 1,2주쯤에. 그에 따라 중간고사도 5월 1,2주쯤에 잡아놓아도 무방하던 시절의 풍경입니다. 요즘엔, 7월 2주차에 시험을 본다고 하면 학교가 아주 뒤집어질 일입니다. 


 어린이날에 그렸던 만화의 추억은 5월. 1학기의 이야기, 그것도 세기말인 1999년의 일이고 지금은 2021년, 2학기, 9월의 4주. 추석 연휴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집에서, 중간고사 공부를 하고 있을 시점입니다. 아이들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저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의 5월 5일, 어린이날의 그 서러움과 분노가 남의 일이 아니죠. 추석 노래는 아는 것이 없으나 민족의 대 명절이라는 한가위에 보름달, 맛난 음식을 뒤로 하고 아이들은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지. 아니면 요즘 세태에 따라 가족모임, 시골집이 다들 남의 이야기인지라, 공부 시키기에 좋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런지. 집집마다의 사정이 있겠지요.


 어쨌든, 요즘처럼 워라밸 시대에 명절에까지 근무를 할 학원이 아주 많진 않을 테고 적잖은 아이들은 남은 연휴 내내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해야 하니 말입니다. 걱정들이 또 많으시지요. 짧게는 5일 연휴, 길게는 9일 연휴를 맞이하여 중간고사는 코 앞이고,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하고 있을까? 방문을 자꾸 두드리지 않아도 될까?


 스스로 공부를 하는 아이는, 어느 부모님이든 바라마지 않는 것이지만 시험 기간이 되면 당연히도 더욱 현실의 문제, 실제의 문제가 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하는 공부,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자습이라 부르던, 지금은 자기주도적학습이라 부르는, 혼자 하는 공부 말입니다. 

"자습이다"로 유명한 영화 <완득이> 의 한 장면


자기주도학습의 세가지 영역


 학습자들이 "스스로" 공부를 하게 되는 층위는 다음의 세가지 정도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궁금한 것들, 내가 하고싶은 것들이 있죠.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호기심에서 연장되는 학습의 과정입니다. 공룡이라거나 캠핑 가서 벌레라거나, 수영이라거나, 피아노라거나, 태권도라거나, LOL 메타라거나 등등. 둘째, 학령기가 시작되고 주어지는 교육체계, 정규교육이라는 제도적 과정이 있습니다. 초-중-고 교육이죠. 셋째, 초-중-고에서의 학력경쟁을 위한 공부가 있습니다. 


 두번째 영역과 세번째 영역은 겹치긴 하지만 같지 않습니다. 목적도 다르죠. 정규교육의 목적은 자아실현과 인간화, 사회시민 양성이라면 학력경쟁은 고등지식에 접근하고 고등지식을 창조하기 위한 학습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둘째의 정규교육과정 셋째의 학력경쟁 층위를 통하여 고학력자, 지식전문가가 되나, 막상 고학력자, 전문가가 된 뒤에는 첫째 영역의 흥미와 호기심이 다시 중시된다는 점을 앞서 지적했습니다. 그 결론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명제였습니다. 


 앞서의 이야기를 조금 더 쉽게 설명하면 "학습의 목표와 대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게 되는 대상을 자신의 흥미, 주변환경에서 발생하는 호기심을 주로 택할 것인지, 교과지식에 담긴 학문체계인지,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 및 사회적 지위 향상일지를 생각해보고, 그러나 흥미와 호기심을 약화시키지 않는 교육과 양육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세 층위를 인식한 뒤에도 여전히, 시시때때로 어떤 학습이 필요할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 하게 됩니다. 학력경쟁에서 높은 위치를 점하지 못하면 정규교육과정을 밟는 동안의 학업성취도 자연히 낮아질 수 밖에 없죠. 정규교육과정, 학문체계가 학력경쟁과 따로 분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요. 다시 말하자면 중간고사를 앞둔 추석연휴는, 아이들의 호기심이나 흥미는 둘째 문제로 두고 학력경쟁이든, 정규교육체계든, 그저 열심히 공부를 파야할 시기. 그런데 이왕이면,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를 하면 참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는 것. 


 자 그러므로, 자습, 다시 말해 자기주도학습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1. "학습" 주도성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자습 및 자기주도학습은 바로 이 "학습" 주도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쉬운 이야기죠? 체계적인 공부계획을 세워서 장기간 실천하고, 노트 필기를 주도적으로 하고(이 노트 필기의 주도성은 매우 핵심적인 주제이므로 조만간 다루겠습니다.), 자기만의 학습법으로 맞춤형의 공부를 하고, "평가"를 예측하여 그에 맞추어 대비를 하는 등등. 


 학습의 주도성은 당연히 공부의 가장 기초가 되는 뿌리와 같은 요소이기 때문에 이것을 향상시키기 위한 학습자 자신의, 그리고 학부모의 아이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매우 다양하게 있어왔습니다. 흔히 말하는 공부법 책들이 거의 다 이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다만 학부모들께서는 성실성과 자율성을 혼동하기 쉬운 경향이 있습니다. "알아서 공부하는 아이"라는 말은 사실 "알아서 (더 더 더 많이) 공부하는 아이"라는 의미를 흔히 담죠. 정작 "알아서"라는 요소는 굉장히 간과됩니다. 


 한가지 고민을 해보실 지점이 있습니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아이들은 "평가체계"에 대해서 굉장히 명확한 이해를 갖고 있습니다. 학원에서 찍어주는 것 이상으로, 학교수업을 통해 스스로 어떤 것이 시험에 나올지, 어떤것은 나오지 않을지를 알아내고 공부의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을 스스로 구사합니다. 즉, 학습의 주도성에서 평가에 대한 학생들의 판단과 예측은 매우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고등학생의 경우 자신의 성적 추이를 보고 수능과목에 집중할지, 아니면 전체 과목에서 높은 성적을 낼지를 결정하는 것도 평가에 대한 학습자의 판단이 반영된 것이죠.


 즉, 학생들은 학습 계획을 설정할 때, 자기 나름대로 평가에 대한 판단을 충분히 하고 있는데, 과연 학부모들이 바라는 높은 성적이라는 문제에 아이들과 합의가 이루어져 있을까요? 


 당연히 아이와 학부모가 한마음으로 높은 성적을 위해 당장의 공부의 고통을 인내하자는 합의를 내리는 가정이 있을 수 있고, 학부모가 요구하는 높은 성적을 학생이 거부하는 경우도 있고, 과목별로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어와 영어는 매우 잘하는데 아이가 있는데 학부모는 아이가 미래 직업상황을 고려해 이공계로 진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수학과 과학에서 낮은 성적을 받는 것에 대하여 잔소리를 하죠. 그럼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교과목에서의 높은 성취에 대한 자존감을 훼손당하고, 그것은 전체적인 학습의 주도성을 하락하는 결과로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학습의 주도성에 대해서는 여타의 여러 공부법이나 교육법 상식을 따르시되, 학습의 주도성이 평가를 반드시 반영하는 문제라는 것을 감안하여 아이와 먼저 평가체계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아이의 시험에 대한 생각, 성적에 대한 성적을 충분히 들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2. "교육과정" 주도성

 교육과정 주도성이라고 하면 난데없이 완전 새로운 이야기가 되죠? 자습, 즉 학습주도성과 똑같은 맥락에서 발생하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부분도 대한민국의 편향된 학력관이 우리에게 내재화된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간단한 사례를 예시한다면 홈스쿨링. 학부모가 총괄하는 교육과정의 주도성입니다. 대안학교. 교육과정의 자율성과 주도성을 기대하고 채택하게 되는 학교입니다. 이야기가 쉬워지죠. 좀 더 쉬운 사례를 예로 들겠습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 학습자의 주도성을 신장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에서 "평가"를 뺀 정책입니다. 방금 이야기했죠? 학습의 주도성에는 반드시 평가에 대한 판단이 반영된다. 그러므로, 평가에서 발생하는 학력경쟁을 배제하면 아이들이 학습의 주도성을 스스로 재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란 철학이 반영된 요소죠. 고교학점제! 교육과정 주도성입니다. 우리 땐 문과 이과 밖에 선택을 하지 못했잖아요. 이제는 과목을 아이들이 최대한 골라서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혁신교육을 주도하는 경기도교육청이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실제 학교현장에서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표를 보면 학교교육에서 교육과정의 주도성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대강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를 보시면 "평가"가 당연히 들어가 있고, "학습방법" 주도성이 명시되어 있죠. 즉, "교육과정 주도성"은 "학습 주도성"을 포함하는 상위개념입니다. 

미래학교 체제 연구 : 학습자 주도성을 중심으로 - 경기도교육연구원 / 조윤정 외

  정리하자면, "교육과정" 주도성은 학습자가 어떻게 공부할지를 단지 개인의 학습법을 넘어서서 (주로 학교에서) 어떻게 공부할지에 대한 보다 다양한 플랜을 스스로 짜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학습목표를 스스로 설정을 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을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또 주도적으로 구성하는 학습의 형태죠. 교육과정의 주도성을 발휘한다면 평가는 고려할 요인을 넘어서서 학습자가 결정을 하는 요인이 됩니다. 위의 사례를 다시 들어볼까요? 국어와 영어를 잘하고 수학 과학을 못하는 아이가 있다. 그런데 이공계 진학에는 동의하고 있다면, 내신을 따라갈 필요 없이 수능 정시를 목표로 잡고(학습목표 설정) 관련한 다양한 독서를 통해 자연과학 소양을 키우는 것(교육과정 계획)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국어와 영어를 잘한다면 독서량은 어느정도 받쳐준다는 이야기이니 가능성이 제법 있는 계획입니다.


 교육과정의 주도성은 언제부터 함양되어야 할까요? 사회화교육이 마감되고 지식교육이 시작되는 시점을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사회화교육 단계까지는 학습의 주도성을, 평가에 대한 아이와 학부모의 합의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계속하며, 키우면 됩니다. 그러나 지식교육이 시작되는 초등 고학년쯤부터는 정규교육과정과 아이의 학업성취도의 차이가 커집니다. 예를 들어 저는 삼각함수를 처음 배우던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절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정규교육과정과 별도로 수능이라는 트랙이 있었기에 학습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죠. 정규교육과정은 다양한 재능을 가진 여러가지 학생들에게 모두 가혹합니다.


 중요한 것은 교육과정의 주도성 자체를 흔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학부모들께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교육과정의 주도성이 없는 시대에 학교교육을 이수하여, 그것이 강조되는 시대의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으니 문화적 충돌 수준의 불일치입니다. 학습의 주도성에서 평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면, 교육과정의 주도성에선 학습목표와 시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대학에 몇살에 가야하죠? 취업은 몇살에 해야 할까요? 정해진 트랙을 따르는 게 맞는 아이일까요, 아니면 자기만의 트랙을 설정해주는 것이 좋을까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할까요? 이 모든 문제를, 아이는 스스로 자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나요? 이런 것들을 스스로 성찰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교육과정의 주도성입니다.


3. "주제" 주도성

 마지막으로 교육과정보다 상위의, 주제 주도성이 있습니다. 역시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어벤져스>라는 영화를 보고 "나도 저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라는 꿈을 갖게 된 아이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대강의 학습 대상과 대강의 목표가 설정된 것이죠. 그럼 이제부터 뭘 해야할까요? 각본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고, 캐스팅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고, 영화제작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고, 영화산업 전반에 대한 공부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먼저 해야할까요? 아마도 아이가 영화를 보는 동안 가장 인상깊게 느낀 것이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주제 주도성은 즉 스스로 학습대상을 결정하는 자기주도적 학습의 가장 고차원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전공을 (학부모 강요 없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 하고픈 동아리 활동을 정하는 것, 직업을 정하고 그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 이런 것들이 주제의 주도성이라 할 수 있죠. 


 주제의 주도성은 왜 중요한가, 세계와의 상호작용의 민감성, 그리고 학습자의 흥미 및 학습동기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어벤져스>를 보고 나와서 영화 산업에 관심을 품는 아이는 과연 똑똑한 아이일까요 엉뚱한 아이일까요? 그 아이가 성적 상위권이라면, 혹은 거꾸로 하위권이라면, 각각 어떤 결론이 나올까요? 본질적인 질문, 미래사회에 평생직업이란 것이 대부분 사라질 것은 자명한데, 그런 시대에 아이들이 생존해나가기 위해선 어떻게 자신의 "다음 직업"을 택하게 될까요? 그러한 판단에는 "학습"의 주도성, "교육과정"의 주도성, "주제"의 주도성 중 어느 영역이 가장 영향을 미칠까요?


 몇번 인용되곤 하는 존 듀이의 교육론에 따르면 아이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Surrounding과 Environment로 구분됩니다. 전체 주변환경은 Surrounding,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Environment입니다. 괜찮은 구분이죠?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무의미한 주변환경과, 유의미한 환경을 구분, 그리고 유의미한 환경요소를 보다 많이 배치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Environment와 아이들의 상호작용은 다시 두가지로 나뉩니다. Interaction과 Transaction입니다. 앞은 상호작용, 뒤에 대해서는 최근의 학자들은 "교호작용"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일반적으로 transaction은 "거래"라는 개념으로,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이것이 교육의 관점에서 interaction보다 깊은 의미를 지닌 학습활동으로 고찰되니, 새로운 용어와 개념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interaction은 상호작용, 아이들이 주변 사물에 반응해 그것을 탐구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것이고, 교호작용, transaction은 대상과 아이들 스스로를 변화해가는 학습과정입니다. 배웠으면 무언가 변해야죠. 쉽게 이야기할까요? 요즘 들기름 막국수가 인기인데, 들기름 막국수를 먹었다 : interaction 들기름 막국수를 만들었다 : transaction. 이게 별거 아닌듯하지만, 결국 모든 학습자는, 아이는, 세상으로부터 배우고 결국 세상을 바꾸게 됩니다.


 당연히 "주제" 주도성이 충분히 발휘된 상태에서 교육과정의 주도성이 발휘될 수 있을 때, 또 그것이 학습의 주도성으로 이어질 때, 가장 아이는 즐겁고 행복한 배움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러나 여전히, 아이들은 보름달이 차오를 추석 명절을 앞둔 오늘 이 밤 각자 자습을 하고 있겠죠. 스스로 공부하는 삶이 참 어렵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무엇을 해야할까요? 주제의 주도성을 키울 수 있도록 environment와 transaction의 확장 노력, 아동기에 많이 했던 노력이 애들 성적표를 보는 순간부터 슬슬 현실에선 덫으로 느껴지게 되죠. 아이들에게 교육과정의 주도성을 부여해보려는 시도는, 막상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면 확 날아가버리죠? 그런 판이니. 아이들이 학습의 주도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는 기대는 조금 언감생심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결국엔, 스스로 무언가를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선택권 자체를 풍성히 부여해줘야 하는 일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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