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바깥양반의 제주 반달살이 / 광주→남해
- 나는
- 고민하고 있다
- 순대국러로서 나냐
- 다이어터로서의 나냐
- 광주 원탑 순대국집이 숙소에서 차로 15분
- 간다면 지금인데...
- 얼른 갔다오지 않고 뭐해?
- 안 갈 이유가 있나?
- 이유가
- 있어
- 어제 밤 10시에
- 광주에 왔으니 먹어야 한다며 유명한 통닭을 시키더라고 이 양반이
- 뭔 말같지 않은 소리야
- 그건 어젯밤 10시고
- 지금은 오늘 아침 8시고
- 어제 먹은건 어제 먹은거고
- 약하다 약해
- 오늘은 새로운 마음 새 뜻으로 먹으면 되지
- 저도 휴먼입니다 휴먼
- 나약하다
- 천하의 공존이가 어찌 지난밤 치킨 탓을 하느뇨 ㅋㅋㅋㅋ
- 화장실 한 번 다녀와라
- 다 괜찮아진다
친구와 형의 간절한 설득에 나는 마지못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세수를 하며 거울을 슬쩍 보니, 그래 내 뱃살은 그대로구나. 어젯밤 10시에 우린 통닭을 먹었다. 지금은 아침 8시.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아 배고 고픈지 아니면 소화가 안되어서 더부룩한 상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나의 심란한 마음을 털어놓으며 마음을 굳혔다. 그래, 아침은 먹어야지. 그리고 바깥양반 말마따나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 한번 왔을때 확실히.
장인어른께 첫 인사를 드릴 때 장인어른께서는 "우리 딸애가 어떤 게 좋나"라고 물으셨는데, 나는 그때 "따님 덕분에 평생 안해볼 일들을 많이 해봤습니다."라고 멋도 모르고 답한 일이 있다. 그래. 결국엔 야식을 시켜버린 바깥양반, 그에 대한 양심의 가책으로 내 소울푸드인 순대국을 포기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나. 이런 건 배워야지 아내에게.
그리하여 순대국밥을 전혀 먹지 않는 바깥양반은 숙소에 남겨두고 혼자 차를 몰아 송정역으로 달렸다. 바깥양반은 내가 다녀오는 동안 씻고 궁전제과에서 사 온 빵으로 브렉퍼스트를 취하기로 하셨다. 간밤에 나주국밥을 먹고 흔들렸던 순대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차를 몰아 가는 내내 두근두근했지만, 일단 광주에서, 피순대를, 암뽕(막창)으로 만든 거라면 맛이 없을 수가 없지.
그리고 결과는 역시, 광주가 맛이 없을 수가 없지. 바깥양반과 그래도 아침을 같이 먹을 수 없을까 하여 이렇게 국밥을 검색해보고 저렇게 해장국집을 검색해봐도 가장 유명한 국밥집은 영명국밥이다. 어차피 자긴 아침에 빵을 먹을 거라며 혼자 나를 보내준 바깥양반 덕분에 나는 고민을 더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게 앞에 차를 대고, 오로지 암뽕순대만 그득하게 담긴 메뉴를 주문한다. 옆 테이블엔 해장술을 하시는 건설노동자 두분, 방에는 젊은 사람들이 서넛 모여서 아침을 먹고 있다. 지나치게 팔팔 끓이지 않은 적당한 국물온도가 안성맞춤인 콩나물 육수에 넉넉하게 실파까지 올라가 있다. 누군가가 식당 리뷰에서 조언해준대로 고춧가루양념을 반절 덜어내고, 잘 휘휘 저어서 한숟가락
- 정체성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사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역시
- 뭔 쓸데없는 고민을 하나 했지
- 옳게 된 순대국 빌런이다ㅋㅋㅋㅋㅋㅋ
전주의 피순대와는 상당히 다른 스타일이다. 전주가 선지와 고기에서 우러나온 묵직한 국물이라면 광주에서 먹은 이곳은 콩나물의 시원함이 그대로 살아있는 균형잡힌 가벼운 국물이다. 어제 먹은 나주곰탕과도 색이 비슷하다. 반찬은 하나하나 간이 세지만 반대급부로 국은 진하지 않게 균형을 잡으려는 걸까? 김치가 맛있기로 소문난 곳이기도 하고, 그 맛난 김치가 간이 센 것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국물들은 전반적으로 진하지 않은 색깔인 것이 이치에 맞는듯하다. 그리고, 부드럽게 잘 삶아진 쫄깃한 막창이나 채소가 넉넉히 들어간 피순대의 속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맛집이다.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국물에 소주 한잔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영명국밥이 위치한 송정역 골목 일대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소규모 청년매장들이 여럿 들어온 모양이다. 관광정보를 전혀 알아보지 않고 온 곳이라 이런 소소한 발견이 모두 이채로왔다. 하루뿐인 광주 일정이 아쉬울만큼. 상대적으로, 오늘 가게 될 남해가 풍광은 좋지만 즐길거리가 많지 않은 것과 비교해서 더욱 그랬다.
"오고 있어?"
"응 출발했어."
"나는 준비 다 하고 빵 먹고 있어."
"헐 벌써? 다 했다고?"
"응 얼른 와."
숙소로 출발하며 전화를 하니 바깥양반은 벌써 드라이와 화장까지 마쳤단다. 하긴 내가 출발할 때 자기도 씻겠다고 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바깥양반도 어제 야식을 자셨으니 아침에 뭐라도 빨리 해야겠다는 기분이 든 모양이다. 겨울이 해가 짧으니 더욱 그럴 테지. 숙소로 가 남은 짐을 챙겨 차에 싣고, 어제 가려다가 바람이 세게 불어서 포기한 상무지구의 5.18 기념공원으로 향했다.
지난밤과는 달리 아침부터 쾌청한 하늘이 걷기에 딱이다. 일요일 아침의 한가로움을 반영하듯, 공원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걷고 있었다. 광주에 위치하던 최대의 군사시설이 민주화운동 기념공원으로 바뀐 것도 이채롭고, 전두환 정권과는 관련이 없지만 상무대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도 조금은 유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18에 대해서 잘 모르는 바깥양반은 전시된 기념시설과 안내문을 읽어보려 애썼고, 나는 조용 조용 설명을 덧붙이며 한바퀴 돌았다. 공원 한가운데에 한옥으로 된 전통찻집이 있다. 대나무로 둘러싸여 한적하게 쉬다 가기 좋을듯한데 코로나도 그렇고, 짧은 일정이 여러가지로 아쉬웠다.
일정에 대한 아쉬움은 무등산 전망대에서 더욱 커졌다. 공원에 이어서 쾌청한 날씨를 즐기기 위해서 전망대를 찾았는데 해가 저물기 전에 충분히 남해를 돌아볼 수 있도록, 광주에서 점심만 먹고 후딱 넘어가기로 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경치만 보고 내려가기로 했는데, 그런데 막상 무등산전망대에 올라오니까, 너무 좋았다.
한 30년, 아니 50년은 되어보이는 허름한 2층 건물에 빨간 접이식 테이블에 차양은 군데 군데 구멍이 나 있고, 2000년대 초반에 카페에서 보이던 테이블과 의자로 가득한 내실이...그런데 너무 좋았다. 전주의 한옥마을처럼 구석구석 카페와 형광색 간판이 들어찬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여기서 한 50년은 발붙이고 장사하셨던듯한 두 부부께서 등산객들을 상대로 부침개도 팔고 냉차도 팔던 그런 분위기. 시간이 멎은듯한 공간에서 차가운, 그러나 투명한 바람을 맞으며 뜨거운 커피를 홀홀 들이키는 기분은 무엇에 비견할 수가 없었다. 무등산 전망대 코앞에 스타벅스가 있었는데 코로나고 뭐고, 100번을 와도 스타벅스보단 전망대에서 편안하게 수다를 떨고 갈 판이었다.
마침 날씨가 도와줘서 참 다행이었다. 내려가기 아쉬워 구석구석 사진을 찍고서 내려왔다. 마지막 코스는 광주의 숨은 명소인 양림동이다.
우리가 양림동을 잠시 찾은 1월 17일은 코로나로 인해 2.5단계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마지막날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점포가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머문시간도 극히 짧았지만, 재개발이 아닌 재생이 이루어진 구도심의 옛길이 참 아름다운 골목이었다. 해방 전후에 지어진 가옥들이 많이 남아있고, 한옥을 리모델링한 곳도 많았다. 주차가 여의치 않아 잠시 둘러만 보고 다음에 여행을 오는 날을 기약하기로 했는데, 바깥양반은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던 광주에서 이런 자기 취향에 딱 맞는 공간을 만나서 정말 즐거워했다.
"악! 내 가방!"
이라는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뭐야. 무슨 소리야."
"나 가방 놓고왔나봐 전망대에."
"뭐? 아 아오...찾아봐 설마 놓고 왔어 진짜?"
"으응 없어 빨리 가줘."
"아니 방금 차에서 내렸는데..."
"일단 전화해볼게. 잠깐만."
뭐...누구나...겪을 수 있는....일이니까...그런 거니까...나는...침착하게...다시...전망대로...향했다...딱 5분 정도 걸었고...그만 그것이 우리의 광주의 마지막...일정이...되어버린...것이다...사장님 감사합니다...
"참...사람 인생이란게."
"또 왜?"
"아니 다랭이 마을 말야 이거. 진~~~~~~~짜 힘들게 살았을 거거든 여기서 살던 사람들은."
"뭐 그렇겠지."
"아냐. 넌 상상을 못한다니까. 저기서 저기까지 모랑 벼를 다 날랐다고 생각을 하면...으 진짜."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남해에 일찍 도착했다. 남해에 재작년 한해에만 두번 다녀온 우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곧바로 다랭이마을로 향했다. 늦여름과 가을에 본 다랭이마을의 풍광에 비하면 겨울의 쓸쓸함은 아쉬움이 컸지만, 그래도 다랭이 마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 그리고 여기가 아니면 찾아보기 어려운 정원의 초목들이 있어서 충분히 즐겁게 거닐어볼 수 있었다. 개발제한구역인 덕분에, 그리고 실제로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는 오지이기 때문에 다랭이마을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두군데 카페에 들러 테이크아웃만 해서 잠깐씩만 앉아있다가 일어났다. 이번 여행이 지나면 남해는 당분간 오지 않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이 한적하고 심심한 겨울 풍경이 더 애착이 갔다.
그런데 또 다른 반전이 그날 저녁에 일어났으니.
"오빠 밥 하나 더 시켜서 나눠먹자."
"!?"
나는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깥양반을 바라봤다.
"왜 그렇게 봐?"
"아니....정신차려 수달이. 공깃밥을 추가하자고?"
"아 왜애 배고파."
"아니...점심도 많이 먹었잖아."
"아 갈치조림도 많이 남았고."
정말로 다랭이마을에서 저녁을 먹으러 가면 어지간한 식당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가야하는 위치라, 게다가 숙소도 바로 근처라 미련 없이 여기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숙소에서 한숨씩 자고 일어나 다랭이마을 밥집 중 하나를 찾아왔는데...근데...여기가...
너무 맛있다. 김치, 굴무침, 갈치포무침, 고추부각, 톳, 그리고 지금이 가장~ 맛있을 때라는 저, 섬초. 남해 시금치. 우선 반찬이 하나 하나 보기 드물게 맛이 좋다. 특히 시금치 중에서도 해풍을 맞고 자란 남해바다 토종 시금치를 섬초라고 하는데, 세상에나 시금치나물이 이렇게 맛이 좋을 일일까. 설탕의 단맛과는 전혀 다른 깊고 깊은 단맛.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부드러움과 촉촉함.
"아주머니 저희요."
"네에~ 말씀하세요."
"저희 공깃밥 하나랑요, 반찬 좀 더 주실래요?"
나는 주방쪽으로 목을 빼끔 내밀고 주문을 했다. 큰 양푼에 시금치를 다듬고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공깃밥을 들고 오시더니 묻는다.
"자아 여기 공깃밥에~ 가만있자~ 반찬은 뭘 더 드릴까~."
"톳이랑 고추랑 시금치요."
"보자. 굴도 좀 더 줄까?"
"네! 그럼 감사하죠."
"흘흘. 내가 마음을 읽었어."
내가 한순간 굴무침을 바라보며 멈칫했던 것을 눈치를 채신 모양이다. 아주머니께서 잠시 뒤, 반찬들을 원래 내주셨던 것보다 두배씩은, 심지어 굴무침도 반찬그릇에 그득하게 담아 내어주셨다. 공깃밥을 반씩 나눠서 먹긴 커녕, 반찬만으로도 밥 한공기는 너끈할 앙이다. 그런데다가, 메인디쉬인 갈치조림부터가 우선 훌륭했다. 적절히 살도 오른 실팍한 놈들에,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 것이 한눈에 봐도 생물이고, 조림이지만 국물은 떠먹어도 될만큼 심심하니 담백한 맛이다. 다른 반찬을 곁들이긴 했지만 둘이서 나눠먹고도 적지 않은 양이 남았다. 어차피 갈치조림을 위해서라도, 밥은 추가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갈치조림과 다른 반찬들이 아무리 훌륭해도 이 시금치, 이 섬초. 반찬 단 한가지가 글감이 될 정도로 훌륭했다. 좋은 재료를 훌륭하게 다듬어서 만들어진 맛.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도 도통 속이 후련하지가 않은 경험. 이때쯤 되어 나는 배가 충분히 부르면서도 리필된 모든 반찬을 끝까지 다 비웠다. 특히나 저 섬초는 한주먹 가득 올려진 놈을 마지막 한조각까지 해치웠다.
맛있다는 고기, 어디서든 먹을 수 있고 비싸다는 요리는 비싼 때문에 그 본맛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비싼 음식이 맛있다면 비싼 덕일 테지. 그러나 오늘 다랭이마을에서 먹은 섬초나물처럼, 우리가 매일 먹는 것이지만은 이처럼 맛있게 하는 것을 보기 힘들다. 마치 김치찌개가 어려운 것 처럼. 그런데 마침, 섬초는 지금이 가장 맛있을 때라니. 것 참 제대로 된 한끼식사였지 뭐야. 놀만큼 놀아보고, 다닐만큼 다녀보았기에 즐길 수 있었던 알뜰살뜰한 저녁밥상으로 바깥양반과 나의 여행 둘째날은 이렇게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