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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y 05. 2021

Overture : 어느 카페 중부내륙

영월 여행의 서막

"난...라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공감할 테지만 카페마다 느껴지는 감각이 있다. 딱 봐도 필터커피가 주종목인 카페가 있고, 다리를 꼬고 앉아 플랫화이트를 마셔야 할 것 같은 카페도 있고, 에스프레소를 탁 털어넣고서 내내 입안에 감도는 쓴맛을 즐기는 카페도 있다. 그런 다종다양한 커피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카페를 다니는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물론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매번 들어맞는 건 또 아니다. 기가 막히게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할 때도 있고 유명세에 비해 영 아쉬울 때도 있다. 그럴땐 커피는 기호품이고 취향일 뿐이라 내 입맛이 맞는지 다른 여러 사람이 맞는지 모르니, 그저 또 하나 배웠구나 하고 그 맛을 차분히 경험해볼 따름.


 중부내륙의 경우 첫인상이 한군데 치우치거나 모나지 않고 두루두루 맛이 좋을 것 같은 그런 인상이었다. 새마을 마크가 붙어있는 모자를 눌러쓴 중년의 사장님은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눈이 부리부리하다. 이런 공간을 홀로지키는 바리스타의 풍모나 스스로 블렌딩과 로스팅을 한다는 점이나. 이런 곳에서 그저 커피만 맛을 본다는 건 아쉽지. 그래서 나는 뜨거운 라떼를 주문하고 우리 빼고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는 작은 가게에 들어가 조용히 커피를 기다린다. 바깥양반은 로얄밀크티를 주문했다. 아이스는 이미 품절이라고, 뜨거운 것은 10분 정도 걸릴 거란다. 요즘 밀크티 분말을 쓰는 카페가 있긴 하겠냐만.


 카페에 들어오기까지 소소한 두가지 난관이 있었다. 첫째로 영월 서부시장 안에 콕 박힌 정말 작은 카페라서 우선 제대로 알아보고 오지 않으면 찾기가 어렵다. 간판도 우스꽝스럽게 새카만 판자에 종이컵으로 작게 "커피"라도 써놓은 걸 붙여뒀다. 유리문에 붙은 중부내륙 네 자가 아니었다면 정말이지 애를 먹을뻔했다.

 그런데 웬걸. 한바퀴 헛걸음을 하고 다시 카페를 찾아서 문을 밀었는데, 아니 당겼던가, 닫혀있다. 가게 안에 모든 전등이 멀쩡히 켜져있고 딱히 휴무일이란 딱지 같은 것도 없는데 사장님이 어딜 가신 걸까. 화장실? 우린 잠깐 서서 기다리다가 우선 밥을 먹고 오기로 했다. 조금 전 차를 세워놓은 서부시장 주차장 바로 옆에 상동막국수는 맛집이 있다. 30년 넘은 곳이라는데 건물을 하나 올린 것을 보니 허명이 아닐듯하다. 면은 보드라우면서도 찰기가 있어 입언에 살살 감기고 면에 편육 약간과 함께 올라가 있는 고춧가루양념은 슴슴하니 자극적이지 않다. 잘 먹고 다시 카페로 왔다. 어차피 커피를 마신 다음에 바로 앞에 있는 일미닭강정도 사가야 한다. 자 과연 열었을까-


 열었다. 다시 중부내륙으로 와보니 빼뚜룸 문이 열려있고 빨간 프링글스 통이 문 틈에 끼워 버텨져 있다. 화장실이라고 다녀오신 걸까. 1인 매장이니 그럴만 하다. 우리가 들어가려 하자 통을 빼주신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메뉴판을 본다. 평범, 무난한 메뉴셋이 말끔한 종이와 커피 필터에 적혀있다.


 자. 영월 시장에 콕 박힌 작은 카페가 품고 있는 도회적인 분위기에 웬지 드립커피는 마실 기분이 들지 않았다. 직접 블렌딩과 로스팅을 하는듯, 필터커피 맨 아래 중부내륙 블렌딩이 떡하니 쓰여있다. 그럼 에스프레소 라인인데. 여기서라면 라떼도 흡족할 것 같다. 최근 라떼는 거의 마시지 않지만 라떼를 잘 다룰 것 같은 카페를 드디어 만난 느낌적인 느낌이다.

“되도록 빨리 드세요.”


 내 라떼가 먼저, 바깥양반의 밀크티가 조금 있다가 나왔다. 한입 호로록 맛을 보니 으흠. 일단 제일 중요한 우유의 농도가 뚜렷하다. 괜찮네. 그리고 원두는 바디감과 고소함이 확 느껴진다. 훌륭하네. 몇모금 더 마시다가 원두의 블렌딩이 궁금해졌다. 그래 메뉴판을 다시 구경하겠다고 가서 둘러보다가 사장님께 말을 걸었다.


“커피가 되게 너티하네요. 깔끔해요.”

“아 커피요? 그게 10일까진 고소한 맛이랑 좀 무겁다가, 10일 지나면 좀 가벼워져요.”

“아 네에. 저도 좀 마셔보다보니까 요즘은 산미나 플로러한 것보단 이렇게 깔끔하게 맛을 내고 싶게 되더라구요.”

“커피 좋아하세요?”

“아 네 요즘은 또 에스프레소로 주로 먹어요.”


 잠시 뒤에 나는 또 여지없이 라면 냄비로 홈로스팅을 하고 있는 초짜라고 고백을 했고, 그러자 사장님은 자신의 로스팅머신- 직화통돌이를 바로 옆, 화구에서 척 집어 보여주셨다. 이럴수가. 한번에 500g이나 겨우 볶을까말까한 통돌이를 써서 로스팅을 하는 바리스타가, 있다는 건 이상할 일이 아니지만, 그게 심지어 이렇게 맛이 좋다고?!


 그 사이에 커피는 온도가 약간 떨어져 맛을 느끼기 딱 알맞게 된 상태다.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며 마시는 한 모금 한 모금이 정말 인상깊었다. 우유의 농도가 높은데 커피의 묵직함과 고소함이 우유의 고소함을 균형있게 이겨내고 있었다. 인생 최고의 라떼 중 하나다. 물론 블렌딩의 비율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버번 종과 콜롬비아 수프리모의 비중이 큰듯, 과연 수프리모가 커피의 왕이올시다.


 그런데 왜 중부내륙일까. 사장님께 여쭤봤다. 커피를 마시는 내내 사장님과 나는 꽤 시끄럽게 수다를 떨어댔다. 하긴 사장님도 나같은 손님은 반가우셨을듯 하지만, 내가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 하니 여러 전문점을 소개해주시고 로스팅에 대한 상세한 팁도 알려주셨다. 내 지식이 짧아, 사장님의 가르침을 글로 적어옮기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 어쨌거나 카페 이름에 대하여 사장님은,


“여러가지 안이 있었는데, 일단 어감이 딱 좋았어요. 중부내륙.” 이라는 다소 헛헛한 답변을. 하긴 간판에도 떡하니 컵 하나에 “커피”라고 써놓으셨는데, 카페 이름이 이정도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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