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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n 06. 2021

<조국의 시간>

+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하다>

 윤석열의 검찰 쿠데타가 조국 전 장관을 대상으로 시작될 무렵 나는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하다> 를 읽고 주변에 많이 권했다. 그러나 내 주변 사람들 중에 책을 사서 즐거이 보았다는 사람도 단 하나 없을 뿐더러 책이 인구에 회자되는 일도 없었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민사회가 갖고 있는 역량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검찰 쿠데타가 시작되고 법무부장관 일가가 멸문지화의 위기에 처해있는데, 10년에 걸친 대통령의 검찰개혁 구상을 낱낱이 담은 책에 사람들이 이토록 무관심할까.


 그러나 2019년 이래로 벌어진 온갖 소동들을 생각해보면 무리한 일도 아니었다. 책에 눈을 돌릴 틈도 없이 숨 가쁘게 조국 전 장관의 후보 시절 기자간담회, 장관 임명, 개혁 시작과 퇴임까지 당사자인 조국 전 장관 개인의 시간이 대단히 촉박하게 흘러갔고 공수처법 및 검경수사권조정안 등 입법 노력도 뒤따랐다. 총선 국면이 되어 검찰개혁이 숨고르기에 들어간 뒤에 여당은 180석이라는 유례 없는 대승을 거두었고, 그 뒤에도 검찰에게 씌워질 수 있는 탄압 프레임을 피하며, 나름 검찰개혁은 바쁘게 돌아갔다. 우리가 바라는 칼춤 같은 대개혁은 가능하지 않다. 윤석열 전 총장의 징계를 법원이 없던 일로 해주었듯 입법과정에서 티끌만한 절차적 하자라도 발생한다면 바로 대법원이든 헌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이고, 선출되지 않은 법관들에 의해 국민들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의 검찰개혁 입법이 좌절될 수도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2년간은 참으로 길고 숨막히는 나날들이었다. 거기에 온 국민이 코로나 방역에 보낸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이제는 자유인이 된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족이 "잊혀지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었음직하다.

 

 장관 후보자 지명 67일, 장관 임명 36일만에 자연인으로 돌아가 온가족에게 불어닥친 참화를 고독하게 감내해야 하는 조국 전 장관에게 그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검찰로부터도 언론으로부터도 방어권과 변론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온갖 진실은 파묻히며, 그 위에 저주의 굿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법학자에게 말이다. 법조인으로서 갖고 있던 모든 상식이 뒤흔들리는 경험(이를 테면 진술거부권을 거부하는 검찰, 그것을 조롱하는 언론.) 속에서 10년 이상 문 대통령과 함께 논의하고 준비해 온 검찰개혁이 자신과 가족들의 비극을 뒤로 하고 한발 한발 앞으로 느리게 나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그 체험. 지금까지 준비해 온 검찰개혁과제들이 후임자인 추미애 전 장관과 여당에 의해서 착착 추진되며 맛보는 기쁨과, 상상도 못한 불법 탈법적인 수사와 취재를 경험하며 또 다른 과제로 떠오르는 경험들.


 그로 인하여 이 책 <조국의 시간>은 이 2년의 시간을 그 누구보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밀도 높이 살아온 법조인이자 공직자의 보고서, 그리고 형사소송의 피의자이고 억울한 피억압자의 수기라는 양면적 성격을 갖는다. 책의 절반은 공직자가 시민적 책무를 끝까지 수행하기 위하여 검찰개혁이라는 65년이나 된 숙원을 한 사람의 법학자로서 그의 지성을 총동원해 추진하고 경험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다른 절반은 권력카르텔과 결탁한 검찰의 폭압을 감당한 나약한 한 인간이, 가족의 피로 물든 영혼을 통하여 써내려간 생생한 생존의 기록이다. 그가 살아있음으로 인하여 이미 한번 구원을 받았던 시민들 앞에 그가 전하는 육성이기도 하고, 첨예한 법률적 논쟁을 담고 있는 학술서로서도 충분히 기능한다.


 책은 마지막 한 챕터를 제외하고는 장관 후보 지명 시기, 장관 재임 시기, 장관 퇴임 이후 시기로 나뉘어 그 시기에 따라 검찰의 폭압이 야기한 법률적 쟁점들과 언론이 자행한 폭력을 꼼꼼하게 기록하며 반박하고 해명하는 얼개로 되어 있다. 검찰과 언론, 그리고 야당이 어떻게 결탁하고 정치행위를 해 왔는지가 정리되어 있다. 검찰의 행태를 비판하며 반박하고 있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 시기의 검찰개혁이 어떠하였고 왜 실패하였는지 등, 전후의 맥락을 필요한 만큼은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검찰개혁에 관심을 갖지 못했던 사람도 이해하기 쉽다.


 다만 학술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워낙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고 그 기억을 반추하며 기록하는 것이 이 책의 다른 기능이므로, 조국 전 장관의 소회를 담은 자뭇 격정적인 글들이 상당히 마구잡이로 학술적 논의와 섞여 있다. 책의 가치를 떨어트린다기보다는 그러한 글의 전개를 그대로 따르며 몰입을 이끌어내는 구조다. 조국 전 장관의 분노와 회한에 대한 공감이 검찰개혁의 공감으로 옮아간다. 만일 이 2년간의 시간을 검찰개혁에 동의하며 서초동 집회 등 시민적 실천까지 함께 해 온 사람이라면 조국의 지성과 이성에, 자기 자신의 체험까지 결합하여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흐름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하다>를 읽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조국의 시간>은 조국 장관의 개인적 체험을 중심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그를 장관으로 임명하고 윤석열을 여러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후보로 지명하고 임명한 대통령의 의중을 명확히 알기는 어렵다. 조국 전 장관이 책에서 그에 대한 일말의 예단도 하고 있지 않으며, 그가 알고 있을 법한 내막까지도 비밀에 부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후미에 조 전 장관도 지적했던 것처럼 검찰은 조국 사냥을 통하여 법무부장관을 자신들의 힘으로 교체하는 위력을 시위하엿을 뿐만 아니라 청와대와 여당을 강력히 압박하는 성과를 얻으나, 그런 전투에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의 전쟁에선 결국 패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판데믹으로 좋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특히 법관들이 광화문 집회 길을 열어주는 비토행위를 저질렀음에도) 결국 효과적으로 국정을 관리하며, 검찰개혁이라는 65년 숙원을 끝내 이루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민적 연대투쟁을 이끌어내고, 제도적으로 검찰개혁의 초석을 놓아 추미애 전 장관이 윤석열과의 정면승부를 할 수 있게 한 조국 전 장관이 이 모든 과정의 가장 큰 공신임은 말할 것도 없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을 법무부장관 시기별로 정리한다면 박상기 장관은 검찰의 수사 관행을 타파하는 문화적 개혁, 조국 장관은 수사권 조정과 검찰의 문민화를 견인하는 제도적 개혁, 추미애 장관은 제도 위에서 실제로 검찰을 물갈이하는 인사부문의 개혁을 담당해 왔다. 이런 역할 분담 끝에 현 박범계 장관은 검찰 직무가 실제로 공정하고 정의롭게 수행되도록 검찰조직의 변화를 완비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상술하였듯, 일말의 논란도 사전 차단하고자 각 조치 별로 일일이 유예기간을 두는 등 긴 호흡으로 검찰개혁을 진행해 왔기 때문에 결과물이 쉽사리 그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에 성공했다. 아직 갈 길이 조금 더, 그리고 대통령 선거라는 관문이 또 남아있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만 보더라도 전대미문, 전무후무한 성과다. 역사는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등 역대 장관들을 검찰개혁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주체들로 기록할 것이다. 그 밖의 일은, 조국 당신도 모를 것이고 독후감을 쓰는 나도 예단하지 않으려 한다. 조국의 남은 삶이 어떻게 될까. 끝내 정치의 공간으로 소환될 그가 어떤 선택을 할까. 그것은 우리가 논할 바는 아니다.


 그보다, 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남은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조국 전 장관을 도울 수 있는 실천방안이 있으면 기꺼이 참여하고, 민주당의 검찰개혁을 촉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나누고,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대하여 지치지 않고 떠들어댈 것이다. 그것이 조국 전 장관과 그의 가족이 감내한 고통에 대한 최대한의 책무이고 우리의 숙제가 아닐까. 놀랍게도 조국 전 장관은 책에 나의 글을 인용해주었다. 지금까지 버티어주고 살아주어서 우리 모두에게, 시민의 한 사람인 나에게 그가 베푼 것이 이토록 큰데도 말이다. 무한한 영광과 감사의 마음을 글에 담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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