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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Aug 25. 2024

슬픔과 일상의 공생

아들의 방 (2001) La stanza del figlio

좋아하는 영화 중에 <아들의 방>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탈리아 감독 난니 모레티에게 2001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99분짜리 장편 영화인데 보고 나면 브라이언 이노의 ‘by this river’가 한동안 귓가에 맴돌곤 한다.

읊조리는 듯 담담하고 침울한 노랫소리가 영화의 주제와 몹시도 잘 어울린다.


이탈리아 북부의 항구마을에서 정신과 상담의로 일하는 아버지 조반니, 아름답고 다정한 어머니 파올라,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하는 내성적인 아들 안드레와 학교 농구부 선수인 쾌활한 막내딸 이레네가 주인공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화목한 가정이다.


그러던 중 어느 일요일, 고객의 급한 호출 때문에 아들과의 약속을 미루고 상담을 하러 간 조반니.

그 사이 안드레는 친구들과 함께 동굴탐사를 떠났지 사고로 인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덮친 비극은 마치 폭풍처럼 온  데를 헤집고 다녔다.

자책감으로 하루하루를 후회하며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감정을 주체 못한 나머지 상담일을 그만둔 조반니.

아들의 방에서, 아들의 옷장에 걸린 스웨터를 붙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파올라.

오빠를 잃은 상실감만으로도 힘든 사춘기 소녀 이레네는 죽은 아들 때문에 산 자신을 보듬지 못하는 부모가 원망스럽다.


그러던 중 작은 해프닝이 발생한다.

안드레가 가족들 몰래 펜팔로 사귀고 있던 여자아이 아리안나가 그들의 집을 찾는다.

안드레의 부고를 받지 못한 아리안나는 새 남자친구와 여행 중이라고 한다.


아들과 오빠의 비밀을 알게 된 그들은 놀라워하고 이내 감사한다.

안드레가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저 둘처럼 밝고 싱그럽고 예뻤겠지- 상상해 본다.


가족들은 어린 연인을 프랑스 국경까지 배웅해 주기로 한다.

밤새 차를 달려 온 가족은 두 사람을 보내며 그제야 서로의 존재를 다시금 깨닫는다.


말없이 해변의 모래사장을 걷는 세 사람.

이리저리 다른 방향으로 걷는 듯 보이지만 결국 다 같이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는 아마도 작은 희망을 엿보고 위안을 얻는다.




자책은 슬픔을 쉬이 후회와 분노로 변질시킨다.


나 역시 금요일 밤이면 온갖 감정들이 뒤섞여 양치질을 하다가도 엉엉 소리 내어 울기도 하지만 이내 또 일상으로 돌아온다.


규칙적인 생활과 반복적인 일상의 루틴 덕분에 자책의 늪에 침몰되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충분한 추모의 시간 역시 갖지 못함이 아쉽다.


그래서일까 깨어있을 때 흘리지 못한 눈물 때문일까.

나는 여전히 이틀에 한번 꼴은 퉁퉁 부은 눈으로 무거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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