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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Jan 11. 2022

[k의 기록] 9. 겨울철, 지하철

타인의 온기


겨울철 지하철은 두꺼운 옷 때문인지 옆자리 앉은 승객과 본의 아니게 맞닿을 때가 많이 있다. 그럴 때는 서로 눈치껏 승모근을 조이기도 하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보기도 하지만 맞닿은 면적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그렇게 한 번 의식하게 된 낯선 이의 온기 추운 겨울을 지내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도란도란 가면 좋겠지만 실상은 마냥 갑지만은 않다. '좁아 죽겠네.' 하며 인상을 찌푸리거나 혹은 '내 영역 침범하지 마.' 하며 장승처럼 굳건한 이들을 만날 때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사로 암묵적인 신호탄으로 끙, 끙하면서 헛기침을 해봐도 어쩌랴, 잠시 잠깐은 억지로라도 두터워진 옷만큼이나 돈독한 사이가 되어 서로 의지하며 갈 수밖에. 그렇게 우린 한 방향을 향해 가는 한 철 동지로써 로를 (체념하며)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때론 철천지 원수를 만난 듯이 옆자리 타인의 기를 강하게 밀쳐내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겪은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는 이렇다.


첫째, 게임을 하는 어떤 이의 옆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게임에 문외한이 나는 그분의 팔이 게임 캐릭터에 맞춰 연신 꿈틀대는 것을 오롯이 느끼고 있었다. '그래 지하철 가는 길 지루하니까.' 하며 사막여우 눈을 한 채로 애써 팔뚝에 느껴지는 거슬리는 건들거림에 대해 이해심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이런 알량한 마음이 가소롭다는 듯이 그분의 팔꿈치가 훅 들어왔다. 옆구리를 제대로 가격 당한 나는 나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내며 몸이 숙여졌다. 그분은 나를 흘끗 보며 '죄송합니다.'하고 가볍게 인사를 건네며 마침 도착한 역에서 내렸다. 내가 뭐라 반응하기에는 너무 찰나의 순간이었다. 결국 남겨진 고통과 불쾌감은 내 몫이었다.  뒤 나는 게임을 하는 어떤 이의 옆자리에 앉게 되면 팔을 무릎 위로 모으지 않고 옆구리에 붙인 채 적극적인 방어태세에 돌입한다.


두 번째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이의 웃음의 근육이었다. 그분은 연신 카톡을 보내며 즐거운 듯 코로 킁거리셨는데 웃음꽃이 피는 걸 보니 아마도 설레는 누군가와의 연락 중이었던 것 같다. 그 풋풋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론 그분의 단전에서 올라오는 킁킁이 내 심기를 조금씩 건드렸다. 킁! 할 때마다 내 팔뚝 점점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나에게 말을 걸기 위해 내 팔을 두드린 건 줄 알 쳐다봤지만 아니었다. 름다운 핑크빛 세상 속에 빠진 그분에게 나는 엑스트라 혹은 구조물일 뿐었다. 단지, 주인공의 옆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웃을 것을 강요받은 엑스트라의 미간은 점점 좁혀져 갔다.  그분에게 말을 안했냐 물어본다면 불규칙적인 리듬의 애매~한 깔짝댐이었노라 답하겠다. 그러나 그런 미묘한 불편함이 사람의 신경을 제일 거슬리게 한다. 치아 사이에 낀 시금치같이.



그런가 하면 반면에 내 공간으로 함부로 침범하 타인 움직임을 묵묵히 허용 때가 있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낯선 이의 고개나 몸이 넘어올 때 그렇다.


내 자리, 네 자리기보다 선뜻 '우리'의 공간로 내 마음을 넓혀버리고 견뎌낼 수 있는 이유는, 어떤 동질감 때문이다. 저마다의 무게를 지닌 채 선잠을 자는 모습을 보면 각자의 도착지는 다를지언정 삶이라는 한 열차를 같이 탔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쏟아지는 그 온기를 탁 쳐내고 차갑게 선을 그어버리면 너무 야박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지하철에서 만난 누군가의 짧은 선잠이 아침엔 좋은 시작이 되길, 나른한 오후엔 기분 좋은 단꿈이 되길, 저녁엔 수고한 하루였길 진심으로 바라며 낯선 이의 온기와 무게를 묵묵히 받아들인다.




삶을 견디다 보면 추운 겨울 두터운 옷만큼이나 두껍고 단단한 마음의 벽을 세울 때가 많다. 너는 너, 나는 나라고 내 공간에 넘어오지 마라고 주장하고 싶어 진다. 래도 때론 맞부딪히는 외투의 서걱거림이 아, 여기에 나 혼자가 아니구나를 느끼게 해 준다. 그 속에서 온기를 발견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길 오늘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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