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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윤회

by 꽃피네

이곳에서의 별밤은 장관이었다.

칠흑 위에 별빛은 희고, 파랗고, 붉은 물감이 되어 흩뿌려졌다. 말괄량이 소녀의 주근깨처럼, 천구의 검은 비단천에 빛나는 보석들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그 검은 공단은 온통 빛으로 물이 들었다.

밤하늘은 마치 수많은 글리터와 스팽글, 크리스털을 주렁주렁 매단 반짝이 무대의상을 걸치고 불꽃놀이를 하는 마술사의 실크처럼 반짝였다.

전등남은 이 해발 2,207m 고지대에서 도시의 빛 공해가 전혀 없는 남반구 밤하늘을 조망할 때면 아버지를 생각했다.

신림동 하천 둑에서 그의 아버지인 고아 머슴이 헤었던 설운 별밤보다도, 그가 전방에서 초병으로 보초를 서면서 천애고아였던 아버지의 심경을 헤아리고자 수없이 헤었던 별밤과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장관이었다.

별들의 항연!

달빛도 숨어버린 밤하늘 별들의 바다 위에 빛잔치가 벌어졌다. 이곳은 높은 고도로 인해 문명과 멀리 떨어진 지리적 이점 덕분에 조망을 방해하는 불빛은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게다가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사막 기후의 영향으로 대기의 투명도 또한 극대화되어, 별빛은 선명하게 지상에 도달하였다.

천구 전체를 뒤덮은 별들의 바다! 흑공단을 깔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별들의 잔치! 마술사가 드리운 빛의 장막에서 눈이 시리도록 푸른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 빛잔치의 입체적 장관을 어떻게 인간의 언어로 형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은하수.

하늘 강물에 흰 쪽배가 한없이 정토의 나라로 떠간다고 하는 은하수.

아쉽게도 이 시기의 남반구는 여름철이었기에 태양은 우리은하 중심부와 같은 방향에 위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수천억 개의 별들을 중력으로 지탱하는 우리은하 한가운데인 초거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 에이스타(A*) 부근의 압도적인 별 밀도의 장엄한 우리은하 중심부는 관찰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희미한 구름처럼 보이는 우리 나선은하의 팔부분이 이곳에서는 마치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빛의 강'처럼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전등남은 망원경이 없이도 맨눈으로도 은하수 내, 중력 붕괴로 별이 태어나는 차가운 암흑대를 포함한 용골자리 대성운의 붉은빛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저것이 바로 남천의 보물! 용골자리 대성운이란 말인가!

남천의 또 하나의 보물!

그의 머리 위에서는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은하의 위성 은하인 대마젤란은하와 소마젤란은하가 두 조각의 구름처럼 선명하게 빛나며 떠 있었다.

우리은하와 이웃하는 두 은하들을 이렇게 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밤하늘 88개의 별자리 중 가장 작은 남쪽 방향을 가리키는 남십자자리의 남십자성과 이를 북, 동, 서쪽에서 감싸 안은 듯한 커다란 별자리인 센타우르스자리의 알파 센타우리와 베타성도 눈에 들어왔다.

별빛이 너무 약해 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우리 태양으로부터 가장 가깝다는, 4.2광년 거리의 적색왜성 프록시마센타우리가 속해 있는 삼중성계인 알파 센타우리 A가 바로 저기라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이어 그의 눈은 어둠에 완벽히 적응한 천랑처럼, 하늘에서 뛰어다니는 오리온의 사냥개들을 쫒고 있었다.

착시였을까 하늘 전체가 짙은 보라색 또는 깊은 남색으로 물들어진 가운데, 무수한 보석이 박힌 큰개, 작은개들이 바로 머리 위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별빛의 밀도는 지구상에서 최고였으며, 별자리의 형태가 수많은 작은 별들로 인해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러한 극도의 고요함과 순수한 어둠 속에서, 오직 별빛만이 지상으로 쏟아져 흘러내리는 세로 톨롤로의 밤하늘은 만물의 근원인 우주와 나약한 미물인 인간의 존재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경외감으로 뒤덮여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누워 별을 헤어본 적이 있는가!"라고 청중을 둘러보면서 라비가 물었다.

마치 떠나온 저 세상에 실현될 수 없는 유토피아를 두고 온 사람처럼 그의 표정은 고독해 보였다.

이 고독에 찬 힌두교의 득도승 라비 샤르마는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고독이 현자가 되기 위하여 명상 속에 자신을 침전시킨 스스로 선택한 고독인지, 따돌림을 당해 남들로부터 배척되어 생긴 쓸쓸한 외로움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생전, 뭄바이 시장에서 옥수수며, 감자, 야채꼬치를 팔아 라비를 가르쳤던 그리운 어머니가 생각나서인지, 유령이 되어 플루토의 지하세계와 인간 세상을 유랑하는 자신의 외로움에서인지 그는 오늘따라 유난히 굳어 보였다.

"라비, 무슨 일 있어? 저 천재 녀석과 그 가족들 이야기하다가 왜 갑자기 표정이 굳어진 거야? 딸기네 못다 한 이야기도 아직 한참 남았다며? 이제 이야기하기 싫어진 거야?"라고 제니가 라비 샤르마의 어깨를 툭치며 말했다.

그 순간 라비의 머리에 두른 시크교도들의 큰 터번인 다스타르가 브라만들이 애호하는 희고 정갈한 파그리로 변했다.

제니가 너무 세게 쳐서 다스타르가 하마터면 그녀의 손에 닿아 찌그러질까 봐, 그가 순식간에 작은 파그리로 터번을 바꾼 것이었다.

"어라? 일취월장이 따로 없네. 라비, 이제는 생각만으로도 터번을 바꿀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거야?"

제니에 이어 아이샤도 어디서 주워들은 유식한 말로 제깐에는 라비를 칭찬한다고 재잘거렸으나, 그녀는 그것이 오히려 그를 욕되게 하는 말인 줄은 몰랐다.

"어머! 이런 걸 두고 괄목상대라고 했던가"

하고 아이샤까지 맞장구를 치자,

"동양인들은 왜 이따위로 말들을 질질 늘여서 씨부리는 줄 몰라" 하고 말뜻을 모르는 마르코가 투덜댔다.

라비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그럼 내가, 전에는 별 볼 일 없는 쭉정이였단 말인가! 이 유령들이 오냐오냐 해줬더니 기어오르네"

"아이! 미안해 라비. 우린 사실 저런 구닥다리 말뜻도 모르고 지껄인 거야. 유식한 네가 이해 좀 해줘" 하고 제니가 사과하자, 분위기는 금방 화기애애 해졌다.

"그런데 라비, 왜 갑자기 고독해 보이는 건데?"

"있잖아. 유령들아, 실은 우리들 이야기 주제 1. 정토에서 온 그녀! 주인공 말이야 그녀가 오늘 밤을 못 넘길 것 같아"

"그래? 그럼 이야기 무대를 옮겨 조선대학병원으로 한 번 가보자"

"한 사람이 떠나면 다른 사람이 세상에 오는 법 아니겠어? 일단 앞으로 태어날 새 생명들을 위한 기원이나 하고 병원으로 옮겨 가자"

"그래, 그래. 그러자"


"디오니소스여! 디오니소스여! 디오니소스의 위대한 팔레스여!

오늘 밤!

포도주보다 더 달콤한 속 강이 흐르는 저 땅에 임하소서!"

"저들이 잉태하도록 우리 모두 디오니소스의 찬가를 부르자!"

"그러자! 이 땅에 새 생명들이 넘쳐나도록 찬미하자"

"이제 겨울이 가고, 봄이 왔으니 땅이란 땅마다 행복한 파종을 북돋우세!"

"아냐, 건실한 땅에만 씨를 뿌리도록 하자!"

"그러자 그러자"

이어서 유령들은 결혼이 두렵다는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씩 하기 시작하였다.

"물 떠 넣고 혼인신고 하고 그냥 살아. 월세방부터 시작하면 머 어때! 아이들? 영리한 애들에게 무슨 학원이 필요해?

멍청하면? 기술 배우거나 하면서 헤쳐나가는 거지 머. 그래도 돈만 잘 벌어. 내 말 맞지 마르코?"

"그래 맞아, 제니야. 제 주제는 모르고, 20대 때, 즐길 것 다 즐기고, 쥐뿔도 없는 것들이 늙어가는 줄도 모르고, 자기 편하자고 얼굴, 재산 따지고 추리고 추리는 꼴값들이라니!"

"하나 잘 물어서 10년 지나면 재산 반땅 하겠다는 심보야 머야! 그렇지 파티마?"

"아이샤, 네 말이 맞아. 그러니까 진작에 연애와 결혼이 똑같이 갔어야지. 외국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은 연애하면 대부분 결혼하는 거야. 너네들이 무슨 스타냐? 몇 년 즐기려고 평생을 망치게?"

"시디크 자매들아, 저네들은 희귀종이야! 밑 금테라고! 입으로는 비혼주의네 머네 하지만 실상을 보면은 나이가 많아 못 가는 사람들이 태반이야.

이건 한국에선 이미 사회적 문제여서 방법이 없어! 이제 저네들 스스로 처절히 눈 낮춰 시집 장가 가던지, 이대로 홀로 자연 도태되어야만 끝나. 국결이 오히려 안전빵인 시대를 저들 스스로가 만든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우리대로 디오니소스의 찬가를 부르자!"라고 하며 다들 비뚤어진 페미니즘을 성토하였다.

이렇게 유령들의 디오니소스의 찬가가 끝나자,

라비 샤르마가 "이제 3월이 곧 지나니 마하 시바라트리 -시바의 위대한 밤-도 끝나간다"며, 통찰의 눈을 가진 시바신과 세상을 덮는 치마를 가진 파르바티 여신의 성스러운 결혼을 찬미하였다.

라비가 만트라를 외우자, 시바는 미간 사이의 제3의 통찰의 눈을 번쩍 뜨고, 여신 파르바티의 비옥한 땅에 발을 내디뎠다. 이어 시바는 우주 창조의 춤인 아난 탄타바를 추었다.

이를 따라, 타락한 인간 세상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선한 욕쟁이와 천사 딸기네, 공주와 착한 머슴오빠, 천재 전등남과 요정 이고녀, 우주와 태민이를 비롯한 쌍둥이 커플들의 합체도 완성되어 우주 창조의 춤사위를 따라 잉태의 바다로 흘러갔다.

라비는 내년 이때 즈음에는 그들 중 특히, 욕쟁이와 딸기, 공주와 머슴오빠 두 부부는 늦둥이를 득남할 것이고, 전등남과 이고녀에게는 예쁜 딸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다.

그리고는 시바를 경배한다는 의미의 "옴 나바 시바야"를 끊임없이 밤하늘에 바쳤다.

기독교를 믿는 제니와 마르코 또한 예레미아 1:5 구절을 바쳐 태어날 아이들의 앞날을 축복하였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를 외치며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선지자 예레미아처럼,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날 아이들이 미래에 이 나라의 특별한 동량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아이샤와 파티마 시디크도 몸통은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촉수만 하늘거리는 말미잘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들의 종교 이슬람의 기도 간구인 '두아'를 드려 태어날 생명들을 축복하였다.

그녀들은 뒤뚱뒤뚱 넘어질 듯 위태롭게, 이슬람 예배 살라트를 올릴 때처럼 이마를 땅에 대는 수주드를 하고선,

"야 알라! 야 알라!

오 알라! 알라이시여 당신의 합법적인 할랄로 저희를 충분하게 하시고, 불법의 하람을 멀리하게 하소서. 당신의 은혜로 다른 이 없이도 저들을 풍요롭게 하소서!”라고 간구하였다.

샴쌍둥이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항상 남의 도움으로 세상을 살 수밖에 없었던 아이샤와 파티마는 자신들의 최고 염원을 담아 태어날 아이들이 독립적인 아이들이 되기를 기원하는 두아를 바쳤다.

인간인 나 푸어박의 뇌리에도 아이들이 각자의 부모에게 아장 대며 재롱떠는 행복한 집들이 연상되었다. 분명 라비의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2025년 3월 27일 새벽, 조선대학병원 유스호스텔 뒷마당엔, 그때까지도 이지러진 조각달이 뜨지 않았다.

라비는 눈썹달이 뜨기를 기다리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제 중환자실 환자 중, 또 하나의 비밀이야기가 펼쳐졌다. 바로 1. 정토에서 온 그녀! 였다.

라비에 따르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복희라고 하며, 유난히도 무더웠던 1945년 8월 23일, 시흥군 동면 가리봉리-현재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의 어느 닭장에서 큰딸로 태어났다고 했다.

닭장이라고 해서 다 닭만이 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사람도 비좁은 닭장에서 살 수밖에 없는 법이다.

당시, 2평도 안 되는 월세방에서 3-4명이 살았고, 한 집에 20-30명씩 살았던 집을 닭장이라고 불렀다. 그 조그만 닭장에서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았던 것이다.

이름을 지어주고 밥술이나 얻어먹고 동네일이라면 다 끼어드는 약방의 감초가 닭장의 아비를 만났다.

이름쟁이가 해방된 해에 태어난 길한 계집아이라고 해서, 아이 아버지는 바로 그 자리에서 복희로 이름을 지었다.

1945년, 복희의 아버지는 경성부 영등포정에 있는 블록 찍는 공장에서 월급 70원을 받고 뼈 빠지게 일을 했고, 어머니는 가리봉리 닭장촌에서 세명의 도련님과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림을 하며 살았다.

이 부부는 당시 여느 집들처럼 저녁식후에는 딱히 시간 보낼 이렇다 할 소일거리가 없었기에, 일찍 불을 끄고 자리에 들곤 했다. 그 결과 이들 부부는 슬하에 6남 7녀나 두었다.

불행하게도 13명의 자식들 중, 전쟁통에 피난 가다가 죽거나, 자다가 연탄가스에 질식해 죽거나, 폐결핵으로 죽거나, 염병이라고 하는 장티푸스와 콜레라로 6명의 아이들이 죽거나 하여 고작 7명의 자식들만 살아남았다. 그중 한 명이 큰딸 복희였다.

복희가 태어나고 18년이 흘렀다.

닭장의 일상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특별히 없었다.

"복희야! 엄마랑 똥 좀 푸자, 똥 가지러 오는 똥퍼 아저씨가 편찮으셔서 당분간 못 오신대. 항아리 두 개에다 나눠서 안양천 채전밭에 뿌리고 오자"

"예 엄마, 집집마다 사람들이 몇십 명씩 사니 똥 푸는 것도 큰일이에요"

"코딱지만 방 하나에 4명씩이나 사니, 먹는 물이야 땅속에서 퍼서 쓰면 되지만, 똥을 집에서 못 싸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보내자니 한 사람당 50원씩, 방세가 한 달이면 800원이나 들어오는데 내보낼 수도 없잖아"

"엄마 힘드시죠, 그렇죠? 저도 빨리 일자리 찾아볼게요?"

"그런데 넌 왜 들어간 데마다 한 달도 못 돼서 자꾸 잘리냐? 일이 힘들어?"

"아뇨, 하나도 안 힘들어요. 미싱사 보조일이 머가 힘들겠어요.

그런데 엄마! 남자들이 저를 만지면 고자가 된대요. 그래서 자꾸 잘려요"

"염병할 놈들이 저네들 딸이나 만지지 왜 우리 복희를 만져!"

"미싱사 언니들, 일본에서 손님 오면 사장님이나 공장장님이 밤에 숙소에 와서 데리고 간데요.

한 번은 제가 불려 갔는데 그 일본인 손님이 제 손을 잡아끌어 요 위에 강제로 절 눕혔어요.

겁에 질려 잔뜩 웅크리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보니, 저를 덮치던 일본 손님이 뿔 달린 도깨비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알 수 없는 분노에 "네놈 따위에게 순결을 빼앗기느니 차라리 같이 죽자"라고 소리쳤는데 그 도깨비가 눈이 획 돌아가더니 갑자기 지랄병에 걸린 것처럼 발작하다가 겨우 살아났어요.

전 싸대기 맞고 잘리고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전 재수에 옴 붙은 년이래요. 저를 만지면 다 고자가 된다고 하면서. 엄마! 이러다가 저 시집 못 가면 어떡해요?"

"천벌 받을 놈들, 지랄 염병할 놈들이다. 남의 귀한 딸 팔아서 저네들 풀칠하려고 저 지랄 발광을 하다니.

넌 걱정 마라. 시집가서 서방님이 만지면 괜찮을게다"

"앗! 엄마! 조심해요!"

"어어! 아이고야. 미끄러져서 똥항아리 다 깨졌네, 이를 어째! 똥퍼 아저씨 기다릴 걸 50원 아끼려다 이게 머람!"

"아이! 엄마도. 아끼실 걸 아끼셔야죠! 참말로! 아휴 똥냄새!"

"빨리 씻어야지 똥독 오르겠다. 어서 집에 가자"

모녀가 똥항아리를 이고 안양천까지 가긴 갔는데, 하천 둑 아래로 내려가다가 앞선 복희의 엄마가 뒤로 벌렁 넘어져 둘은 똥물을 뒤집어썼다.

복희 엄마의 다 닳은 고무신이 풀에 주르륵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만 똥항아리가 뒤로 넘어간 것이었다.

서둘러 집에 돌아온 모녀는 누가 볼세라 서로 교대로 망을 봐가면서 무궁화표 세탁비누로 똥 범벅된 무명옷을 빨고, 몸을 닦고 또 닦았다. 그러나 똥냄새는 여간해서 가시지 않았다.

그녀들은 똥벼락 맞은 옷가지들을 연탄불 아궁이 화덕에 삶고, 비누칠을 해 방망이로 수없이 두드린 후에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복희야, 할아버지 진지 드실 시간이다. 연탄불에 솥밥을 하는 법 알려 줄게. 쌀뜨물은 아까우니까 버리지 말고.

밥솥 제일 밑에는 아침에 삶아 놓은 보리쌀을 깔고 제일 위에는 쌀만 얹어. 보리밥은 우리가 먹고 쌀밥은 할아버지 드리게"

"엄마, 이렇게요?"

"응, 그래. 우리 복희 잘하네.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뜸 들이는 거야. 연탄불 공기구멍을 다 막고 약한 불로 10분에서 15분, 할아버지 좋아하시는 가지도 뜸 들일 때 밥 위에 얹어. 지금"

"아휴 뜨거워!"

"이리 나와라. 엄마가 할게, 잘 봐. 찬물에 손을 먼저 담가. 그다음 솥뚜껑을 열고, 이렇게 보리쌀 있는 쪽에다가 얹으면 되는 거야.

뜸을 다 들였으면 가지를 꺼내서 큰 건 세 토막, 작은 건 두 토막 낸 후 찢어. 뜨거우니까 물에 손 담가 가면서 찢어야 해.

거기다 양조간장 좀 넣고, 참기름 조금, 볶은 통깨 좀 뿌리고, 파 있으면 파 좀 어슷 썰어 넣고 없으면 말고"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간장! 간장! 간장! 간장!~"

그때 할아버지 방 라디오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CM송인 샘표간장 선전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모녀는 속으로 '요즘 라디오는 밥 시간도 기막히게 알아맞히는가 보다' 했다.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엄마! 엄마! 라디오에서 방금 간장 선전하는 여자 김상희라나 머래나 고려대학생인데 스물한 살 밖에 안 됐대요. 목소리 참 곱지요?"

샘표간장 CM송을 따라 부르던 복희가 재잘거렸다. 복희는 참 복스럽고 윤기 흐르는, 사랑이 넘치는 큰 아기였다.

"너보다 3살 많은데도 벌써 라디오에 나오다니 우린 가진 게 없어서 널 가르치질 못했구나"

"엄마 난 괜찮아요! 난 한글도 쓸 줄 알고, 상점 간판에 적혀 있는 한자들도 대부분 다 아는걸요"

"이렇게 총명한 것을, 부모가 못나서 이 고생을 다 시키다니 "

"아이 우리 엄마, 또 우시네요. 전 괜찮대도요"

무명 저고리 소매로 눈가를 훔치던 복희의 어머니가 번뜩 정신이 들었던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이참 내 정신 좀 봐. 복희야! 얼른 할아버지 진짓상 차리자. 먼저, 제일 위 쌀밥만 퍼서 고봉으로 정성스럽게 올려라. 가지나물도 올리고, 수저 젓가락 놓고.

나중에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쌀밥은 아랫목에 묻어두고, 이따 저녁 늦게 아버지 돌아오시면 드리게.

너랑 나랑 동생들은 보리밥 먹자"

"예, 엄마"


역에서 내려오면 순대나 국수, 짜장면, 삼겹살에 불고기를 파는 식당들과 포장마차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새벽에도 불을 켜놓고 열차에서 내린 손님들을 부르고 있었다.

1963년 영등포역, 저마다의 푸른 꿈을 안고 경부선, 호남선 완행열차에서 내려 서울땅에 첫발을 내딛는 그곳, 19살(만 18세) 복희는 영등포 삼일불고기집에서 아침 8시부터 새벽 호남선 열차가 도착할 때까지 일했다.

그녀는 주로 주방 찬모 보조와 홀 서빙일을 하였다. 복희의 월급은 아침부터 새벽까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고작 1,200원이었다.

당시 영등포 봉제 공장 경공업 노동자들은 기본 밤 12시까지, 때로는 새벽까지 철야근무까지 죽어라 일해서 월 1,500~2,000원을 받았고, 중공업이나 숙련공들은 3,000~4,000원을 받았다.

복희가 식당일로 취직하기 며칠 전, 복희 엄마가 아이들이 깰까 봐 소곤거렸다.

"여보 참 큰일이에요 또 쌀이 떨어졌어요. 내일 외상으로 8킬로 한 말에 3백 원, 16킬로 600원에 쌀 두말 팔아 와야겠어요. 연탄 1장에 7원이지, 두부도 20원으로 올랐지, 아버님 좋아하시는 갈치도 10원, 당신 술안주용 돼지고기도 한 근에 30원이지 물가가 장난이 아니에요. 아버님 궐련값도 드려야지 휴"

"그러게 말이오. 우리 식구 한 달에 몇 말이나 들어가오? 반 가마니 40킬로?"

"그 정도 들어가요. 1,500원 정도 들어가는 것 같아요. 별다른 찬이 없어서 밥만 먹으니 더 들어가는 것 같아요"

"우리 복희 태어난 해에는 월급이 70원이었는데 지금은 4천 원으로 올랐어도 쓸게 없구려. 요 앞 정류소에서도 한 갑에 3원짜리 승리담배를 3개비에 1원, 어떤 곳은 2개비에 1원을 받고 까치담배로 팔더라니까"

"방값만 안 오르나 봐요. 작은 방은 100원, 큰 방은 300원이니 방세도 800원 밖에 안 들어와요. 세 들어 사는 사람은 16명이나 되지, 방세 갹출하면 한 사람에 50원 밖에 안 든대요"

"먹는 입을 하나라도 줄입시다. 역 앞에 삼일불고기집이라고 있는데 옛날부터 안면이 있으니 복희 일자리 좀 알아볼 참이오"

"쟤는 들어갔다 하면 얼마 안 가서 잘리니, 그 식당에서도 쫓겨날까 봐 걱정이네요"

이렇게 해서 짜장면 한 그릇에 20원 하던 시절, 1963년 가을에 복희는 영등포 고깃집에 찬모 일도 돕고, 바쁠 때는 서빙도 하기로 하고 월 1200원에 취직을 하였다.

"어머! 한국 그땐 찢어지게 못 살았나 비" 하고 제니가 못 믿겠다는 듯이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당시 한국은 말레이시아, 필리핀보다도 못살았어. 그야말로 세계에서 최빈국 대열에 들었지.

환율은 1달러에 130원. 당시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들은 일반병사인 상병의 경우 122-215달러 정도, 4년 이상 젊은 병사 경력자는 375-465달러 월급에 파병수당까지 있었으니,

혈기왕성한 젊은 미군 병사들이 한 번 섹스하는데 1달러, 기지촌 양공주들을 죄다 먹여 살렸던 거지.

달러가 절실했던 그 시절에 양공주들이 몸 팔아서 목구멍에 풀칠도 하고 애국도 한 거였어.

미군 클럽에서만 1964년 한 해 수출액의 10프로인 97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거기에 화대, 숙박비 등 부대수입을 더하면 이들이 벌어들인 실제 달러는 그보다도 훨씬 더 컸지"라고 라비가 당시의 환율과 미군들의 월급을 말해 주었다.

"이야 우리나라 되게 잘 살았네 한국보다 도대체 몇 배나 더 잘 살았던 거야!" 라비의 말에 제니가 기뻐 펄쩍 뛰었다.

"말레이시아는?"하고 아이샤와 파티마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말레이시아는 일반 노동자들은 75-90링깃, 25달러 정도 받았어. 한국보다 약간 더 잘 살았던 게지"

"한국인들은 일에 미친 족속들이네. 그렇다고 새벽까지 일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거냐고?

우리 브라질 사람들은 절대로 뼈 빠지게는 일 안 하지. 삼바도 추고 룸바도 추고, 서로 맘 맞으면 배꼽도 한 번씩 맞추고" 마르코다운 정의에 한국인들은 졸지에 일에 미친 족속이 되었다.


시멘트 양성이 불량했던 식당 주방 바닥은 울퉁불퉁하였고, 기름때로 새까맣고 지저분하였다. 그래서 주방사람들은 누구나 목이 긴 장화를 신어야 했다.

싱크대 옆에는 물받이용 큰 고무대야가 있었고, 그 옆에는 점심이나 저녁 피크 타임이 끝나면 닦아야 할 놋쇠 불판들이 발 디딜 틈 없이 포개져 있었다.

구리와 아연의 합금으로 만든 황동불판- 놋쇠불판은 불고기 전문점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가운데가 볼록하게 솟아 있고 육수나 양념이 고일 수 있는 홈이 있는 벙거지 모양의 전립투 불판이었다.

큰 물대야 옆 한쪽 귀퉁이에는 돼지 키우는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큰 음식쓰레기 잔반 통이 자리하였다.

잔반통에 잔반을 비운 접시들은 3개의 큰 싱크대를 모두 채운 것도 모자라, 식기 닦이하는 충청도 총각 발밑에도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설거지 총각이 아무리 눈코 뜰 새 없이 설거지를 해도 해도, 닦아야 할 접시와 놋쇠불판들은 점점 더 쌓여만 갔다.

밥이나 배불리 먹자고 불고기집에 들어온 충청북도 금산 총각은 3년이 지나도록, 불판과 식기를 닦아 월 800원씩 받다가 올해 처음 1,500원의 월급을 받았다.

어느 날 오후 4시, 손님방에서 주방장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구, 저 잡놈 성질머리 더러워서 이거 안 닦아놓으면 또 때릴 거다. 내가 좀 도와줄게"라고 하며 전라도 출신의 찬모가 팔을 걷어붙였다. 복희도 거들었다.

그러나 홀에서 서빙하는 여자들은 주방이 어떻게 돌아가던 손톱만큼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어서 옵시오!" 사장님이 종업원들에게 손님 왔다고 알릴 목적으로 큰 목소리로 한 무리의 손님을 받았다.

"불고기 5인분에 두꺼비 2병, 밥공기 3개 추가요"라고 주문이 들어오자, 주방장이 어그적거리며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단잠을 깼던 것이 못 마땅했던지, 걸어놓은 기다란 손잡이가 달린 국자를 집어 들어 식기닦이 총각의 머리를 툭 하고 내리쳤다.

"이 멍청한 자식아, 이것도 닦은 거냐. 내가 얼굴이 비칠 정도로 닦으랬지"

식기닦이 총각의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와 대야에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이때 반찬 접시를 큰 쟁반에 놓고 있던 찬모가 재빨리 식기닦이 총각의 얼굴에 흘러내린 피를 닦고, 머리에 수건을 대어 지혈을 시킨 후, 모두를 진정시켰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싶었다.

어린 복희의 가슴속에서 저 배불뚝이 돼지 같은 놈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렸지만 정의가 훼손되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최소한 모든 사람은 안전하고 존중받는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주방장의 폭력은 이러한 기본적인 인권을 짓밟는 행위였다.

그녀가 느끼는 분노는 부당한 인권 박탈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저 무지막지한 폭력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응징적 정의를 부르짖는 내면의 요구였다.

복희는 어리지만 온화하고 어머니와 똥을 퍼 나를 때도 미소를 잃지 않은 선의 결정체였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느끼게 하였는가.

그 원인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폭력이었으며, 밥벌이 때문에 참아야 하는 많은 현대인들이 겪는 부당한 폭력에 대한 복종과 묵인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도 날이면 날마다, 식기닦이 총각은 새벽 4시까지 불판을 닦았다. 복희도 산더미 같이 쌓인 접시를 닦는 일을 거들어 주었다.

어느 날 새벽 동트기 전, 일에 지친 복희가 손님방에서 깜박 잠이 들었을 때, 비릿한 냄새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주방장의 더러운 손이 복희의 가리개에서 가슴을 꺼내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복희는 불쾌한 이질감에 잠에서 깨었다. 자신의 젖가슴이 짓뭉개지고 더러운 입술에 희롱당하는 것을 본 복희에게는 두려움보다 분노가 앞섰다. 분노가 두려움을 이긴 것이다.

그 순간 하늘이 날카로운 굉음을 토해내었다. 이어 먹구름이 공포에 질린 주방장을 덮쳤다. 어둠 속에서 번개가 섬광처럼 주방장의 머리를 찢었다.

주방장은 미쳐버렸다. 그는 미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광인이 된 그는 이제부터 길거리의 더러운 쓰레기 음식을 주워 먹으며 새로운 업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며칠 후, 미쳐 나가 버린 주방장 대신 온화한 새로운 주방장이 오고 삼일불고기집은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았다. 새 주방장은 식기닦이에게 자신의 기술을 하나둘씩 전수하기 시작하였다.

"푸어박, 복희의 감정이 이해 돼?" 제니가 한국사람들이 폭력적 상황에 처할 때 그 대응 방식이 궁금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약간은. 저 어린것이 얼마나 분했으면 두려움을 물리치고 저항했을까? 우린 복희의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

제니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에, 라비가 복희의 내면을 대변하는 주장을 이어갔다.

"칼로 위협하는 주방장에게 목숨을 걸고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준 것은 바로 복희의 분노였어"라고 핵심을 찌르는 라비는 거침이 없었다.

복희의 분노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저항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윤리적 감정으로서, 수동적인 피해자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강간이라는 부당함에 맞서 복희의 분노를 선택한 행위가 어떻게 한 개인, 특히 젊은 여성이 의사결정의 자율성과 고유한 가치인 순결을 수호하는 궁극적인 방어 수단이 될 수 있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복희라는 여자가 강간을 당할 때 느끼는 두려움과 분노는 각기 수동성과 능동성의, 정반대 감정의 대립이다.

여자들이 폭력을 당할 때 느끼는 두려움은 대체로 회피와 순종, 또는 마비로 이어지는 생존 본능적 반응이다.

대개 여자들은 어릴수록 분노보다는 두려움을 먼저 느끼게 마련이며 폭력에 길들여지기 쉽다.

이러한 부당한 상황이나 폭력적 위협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생존 본능상,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가해자에게 굴복당하게 만든다.

특히 칼을 들고 올라타 유방을 꺼낸 강간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두려움은 피해자의 저항할 힘을 앗아가는 가장 큰 적인 것이다.

육체파 앵두의 엄마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녀의 두려움은 곧바로 체념으로 이어져 고향 친구의 동거남이 자신의 젖가슴을 희롱하고, 밑을 더듬고 들어와도 "아이, 재수 없어! 똥 밟았네!" 하며 받아들였다.

또한 그녀는 한 번의 부당한 선례를 인정하자, 새로 이사한 집의 이층 옥탑방 유부남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자신을 강간할 때에도,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강간범의 정액받이를 자처하는 내연녀가 되지 않았던가!

결국 앵두엄마는 결혼을 한 후에도, 남편이 한 지붕에서 자취 여대생을 들여 첩 살림을 차리고 배다른 아이를 낳아도 저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받아들여서 생존을 도모했던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딸기의 예를 살펴보자.

1991년 중2 때 차량 납치되어 구룡산 입구의 도로에서 흑인과 동양인 등 4인에게 집단 강간을 당했다.

중학생인 그녀는 너무나 어렸기에 분노하기는커녕 두려움을 넘어 극한의 공포를 느꼈었다.

이 공포는 딸기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그녀의 신체를 마비시켰다. 그래서 그녀는 육체가 굳어 마비된 상태로 남자들에게 강간당했다.

그렇지만 딸기는 두려움을 수용했던 앵두 엄마와는 달리, 극단적인 강제적 상황에서 자아가 훼손됨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저항하지 못했던 자신을 뼈 빠지게 저주하고 반성하는 치욕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하여 그녀는 옆집 사는 순수한 오빠를 만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아 천사로 거듭났던 것이다.

만약에, 공포에 지배당한 자신에 대하여 장시간에 걸친 철저한 자기반성이 없었다면, 딸기는 어느 남자에게나, 내키면 벌려주는 .'자아상실녀'와 같은 헤픈 여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반면, 분노는 부당한 해악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며, 그 부당함을 바로잡으려는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종종 분노를 정의감과 연결하며, 이는 개인의 존엄이 침해당했을 때 발생하는 능동적인 감정으로 간주한다.

이 분노는 단순한 파괴적인 감정이 아니라, "나는 이런 대우를 받을 사람이 아니다"라는 윤리적 판단의 강력한 표현인 것이다.

또한 부당한 상황에 직면하여 두려움 대신 분노를 느낀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 평가를 완료하고, 침해자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점했음을 의미한다.

강간 상황에서 분노는 생존 본능을 넘어서는 자기 보존 의지로 발현되며 이는 부정과 불의에 대한 격렬한 저항과 항거이며, 순결을 빼앗으려는 폭력적 위협에 대한 최선의 방어로 나타난다.

여기서 '순결'은 좁은 의미의 성적 정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영혼적 자율성 전체를 포괄하는 인간의 고유한 가치인 '자아'를 뜻한다.

복희의 맹렬한 분노는 강간범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이 강탈당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려는 그녀의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즉, 분노는 부당한 목적의 불청객이 허락 없이 비밀스러운 여성의 방으로 들어서는 것을 막는 그녀의 마지막 빗장이었던 것이다.


삼일불고기집 계단을 올라 2층에 들어서면, 제일 안쪽 모퉁이에 예비용 방석과 식탁, 식기나 불판 등 식당 용품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

주인은 늘 이 창고에 들어가 촛불을 켜고 이상한 주문을 외웠다.

그가 외우는 끊임없는 만트라는 언뜻 들으면 "남녀호랑개교"로도 들리고 "난미오 호렝 게기오"라고도 들렸다.

어느 날 주인은 종업원 모두를 불러서 일장연설을 했다.

"내가 역전에서 구두를 닦다가 식당주인이 된 것은, 순전히 내가 모시는 용한 우리 부처님 때문이지."

이어 그는 종업원들에게 "남묘호렌게쿄"라고만 그냥 외우기만 해도 복이 들어오는 신묘한 주문을 같이 암송해보지 않겠냐고 꼬드겼다.

무슨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 때로는 당근과 사탕이 필요한 법이다. 그는 아침저녁 기도시간에 참석하면 월급 외에 200원을 더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이에 한 푼이 아쉬운 종업원들은 모두들 참석하기로 결정하였다. 다만 2층 창고방에 들어서기만 해도 몸이 아프고, 메스꺼워 토하는 복희만은 건강상의 이유로 제외되었다.

복희는 이러한 일본어 발음의 만트라를 듣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려 구토를 했다. 무의식 속에서 복희의 자기 방어 시스템이 작동하였던 것이다.

식당은 용한 만트라 때문인지, 근처 공장 노동자들과, 오가는 행인들과, 집창촌의 껄렁껄렁한 양아치들과, 일요일이면 결혼식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얼마나 바빴던지 주방장, 부주방장, 찬모, 식기닦이 2, 홀서빙녀 4, 카운터에, 사장까지 11명이 달려들어도 손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영험하다는 만트라도, 각자의 신에 바쳐질 때, 관찰자가 사이비로 여긴다거나, 듣는 사람이 역겨우면 철퇴를 맞는 법이다.

1961년 5.16 혁명에 성공한 소장 박정희 군부세력은 장면 내각을 무력화시킨 뒤, 1963년 10월 15일 제5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을 이기고, 그해 12월 17일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이듬해 1964년 1월, 정부는 아무 곳에서나 촛불과 향만 피워놓고, 이 이상한 만트라만 외우는 신흥 일본 불교를 배척하고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그 여파로 삼일불고기집도 문을 닫게 되었는데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된 홀서빙녀가 다른 여종업원들에게 은밀히 운을 떼었다.

"언니 언니! 길 건너 창녀촌 언니들 돈 잘 번데요. 힘도 별로 안 들고."

"얼마나 버는데?"

솔깃해진 다른 여자종업원이 물었다.

"한 번 하는데 백 원, 하룻밤에 5-10명 정도 손님을 받을 수 있데요. 마지막 손님은 긴밤으로 5백 원이나 받는데요. 동두천이나 평택의 양공주들은 한 번에 1달러 130원 받고 미군들은 돈이 많아서 그런지 한 번에 5달러씩 주기도 하고 그런데요"

"어휴! 그렇게 많이 하다간 봄지 헐겠다. 그러다가 시집 못 가면 어떡해?"

"에이! 걱정은 무슨! 다들 넣자마자 금방 싼데요"

"그래? 그거 참 노다지네. 그냥 다리만 벌리고 있으면 되는 거야?"

"아휴, 순진들 하시긴. 아무렴 그렇게나 많이 벌겠어요? 저번에 양공주들 봤는데 버짐 핀 것처럼 얼굴이 뿌옇게 뜨고, 밑이 망가진데요. 전 다른 일자리 알아볼래요. 다른 식당들 다들 종업원 못 구해서 난린데"

이렇게 해서 식당 종업원들은 모두들 저마다의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헤어졌다. 복희도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복희는 깨끗한 정토에서 온 아이였어. 어릴 적 봉제공장에서 쫓겨난 이유는 남자들이 그녀를 만지면 이상하게도 고자가 되었기 때문이었지." 라비가 복희의 정체에 대하여 입을 떼었다.

"불교와 힌두교는 다르지만 닮은 점도 많아. 불교는 열반에 들고,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윤회를 하고, 자신을 버리는 무아를 강조하고 있지.

반면 힌두교는 카르마라고 하는 업을 중시하는데, 무엇으로 재탄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원인과 결과를 일컬어 업이라고 부르는데,

즉 생전에 만약 마르코가 소를 죽이면 다음 생에는 소로 태어나 도살되고, 제니가 죽어가는 사람을 구했다면 그 업보로 인해 다음 생은 브라만의 아내로 태어나기도 하지. 불교의 윤회와 같은 개념인 게야.

세상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슬퍼하는 죽음도,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해방된 완전한 자유의 평온한 상태로 보고, 힌두교에서는 이를 해탈이라고 하는데 불교에서는 이를 열반이라고 하지.

불교가 무아를 중시한 반면, 힌두교는 자신과 우주와의 합일을 중요시하고, 이 둘 불교와 힌두교는 사상적, 문화적, 그리고 인도라는 지역적인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

복희는 원래 깨달은 스님의 환생으로 남자들에 의해 더럽혀질 수 없는 정토의 기운을 타고 난 순결한 아이였지"

라비의 말에 유령들은 다 이해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복희가 집에 돌아온 후, 복희의 어머니는 죽은 6명의 자식들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하여 복희를 길동무 삼아 함께 노량진 미타사에 불공을 드리러 가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복희의 몸에서 나오는 신비한 기운이 절간의 쇠북을 울렸고, 하늘에서 찬란한 빛이 내려왔는데, 이를 바라보는 순간 복희는 혼절하였다.

그녀가 깨어나자 주지 스님이 복희와 복희 어머니에게 말을 꺼냈다.

"본 도량에 보살님이 현세 하셨군요. 이는 모두 다 부처님의 뜻이며 하늘의 홍복입니다"

"전 부처님도 보살님도 몰라요"

"보살님은 자비를 실천하면 됩니다. 이제부터 더 많은 중생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부처님을 알고 모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리하여 주지스님의 눈에 든 그녀는 사미니계, 식차마나계를 거쳐, 비구니의 길을 걷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복희의 집에서도 그녀를 복희란 이름 대신 연화스님이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해남 대흥사 계곡의 물소리며 바람소리로 백련암이라는 암자를 지었던, 중환자실 입구 쪽 병상의 노비구니는 오늘 새벽 유난히 평온해 보였다.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그녀의 귓전에 누군가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아난다여, 그만두어라. 슬퍼하지 말라. 비탄하지 말라.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반드시 헤어지기 마련이고, 이별하면 변하여 흩어지기 마련이라고"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면 저희는 이제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의지하여 수행 정진 해야 합니까?"

"아난다여, 여래가 입멸한 후에는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니라"

이어 대반열반경의 이 세상 존재의 무상함을 나타내는 열반 사구게 (涅槃四句偈)도 들려왔다.

"제행무상 諸行無常

시생멸법 是生滅法

생멸멸이 生滅滅已

적멸위락 寂滅爲樂

우주 만물은 무상하여 변하기에,

이는 생겨나면 사라지는 법이니라.

생과 멸 또한 이미 사라지면,

고요히 사라진 열반이 곧 즐거움이니라"

정토에서 온 그녀가 다시 정토로 돌아갈 때였다. 노비구니의 찰나에 불과한 사바세상과의 연이 지금 끝나가고 있었다.

번뇌가 가득하여 참고 견뎌야 하는 고통스러운 사바세계는 이제 남겨진 이들의 몫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의 추모와 애도에도, 그녀는 끝없는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다만 천상계의 극락정토로 영원히 떠났다.

"이제 정토에서 온 스님이 마지막 윤회를 끝내고 떠나는 거야"라고 라비가 무겁게 말했다. 이에 다른 유령들도 모두, 내 영혼도 따라 슬퍼하였다.


2025년 3월 27일 새벽 5시 40분,

고운 눈썹달이 떴다. 그러나 뒤쫓아오는 태양빛에 이내 져버렸다.

곧 중환자실의 코드블루가 병동마다 방송되었다. 정토에서 온 그녀 복희, 연화스님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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