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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싸인 Dec 21. 2017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의식(3)

[9주차 심리학팀] 3. 무의식의 심리학_과밀효과와 차폐 

과밀효과(Crowding)

  심리학에서 무의식을 실험하는 또 다른 방법은 과밀효과 (Crowding)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과밀효과란 홀로 제시되면 자극이 잘 보이지만, 인접한 주변 방해 자극들과 함께 제시되면 보이지 않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과밀효과는 우리 시야의 주변부인 주변시 (periphery)에서 더욱 잘 일어나는데요, 그림 1에서처럼 가운데 응시점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왼쪽의 ‘F’는 알아볼 수 있지만, 같은 거리에 있는 오른쪽의 ‘H’는 주변에 있는 ‘G’, ‘A’, ‘K’, ‘E’ 등의 방해자극으로 인해 어떤 글자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어도 그것이 어떤 글자인지 정확히 알아볼 수 없는데 이것이 과밀효과의 예입니다.

[그림 1] 과밀효과의 예.


  과밀효과를 이용하면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자극을 의식적으로 경험하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정보처리 연구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한 연구에서는 과밀효과를 이용해 무의식적으로 조작적 조건형성으로 인한 학습이 일어날 수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Atas et al., 2014). 조작적 조건형성 (Operant-conditioning)이란 행동에 대한 처벌과 보상이 이후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행동주의 학습 모델 중 하나입니다.

[그림 2] 실험에서 사용된 배열의 예 (Atas et al., 2014).


  이 연구에서 참가자는 주어진 자극들(o, x, =)의 배열 (sequence)에 대한 학습을 했습니다 (그림 2). 참가자는 보상조건에 해당하는 배열이 제시되었을 때 버튼을 누르면 보상(+€1)을 받게 되고, 처벌 조건의 배열이 제시될 때 버튼을 누르면 처벌(-€1)을 받는 학습 과제를 하였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극들이 과밀효과로 인하여 자극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의식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때, 실제로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극의 배열에 대해서 학습이 제대로 일어난다면, 보상조건에서 더 버튼을 많이 누르는 식으로 반응 양상이 변한다고 예상할 수 있고, 이는 무의식적으로 자극들의 배열을 학습하였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림 3] 과밀효과를 이용한 무의식적 학습의 실험 결과 (Atas et al., 2014).


  실험 결과 참가자들의 반응 양상으로부터 무의식적인 학습 효과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 3의 좌측 그래프는 보상 조건에서 응답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과 처벌 조건에서 응답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비교한 것입니다. 처벌 조건에 비하여 보상 조건에서 버튼을 누르는 속도가 빨라졌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학습효과가 실제로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다만, 우측 그래프에서는 보상조건과 처벌 조건 간에 버튼을 누른 비율을 나타내는 것인데, 두 조건 간 응답 비율이 차이가 없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무의식적인 학습의 효과가 반응속도에는 반영되었지만, 그 이상으로 처리되어 응답 비율 자체를 바꿀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록 응답 비율은 차이가 없었지만, 의식적으로 파악하기 힘든 자극의 배열에 대하여 보상에 따라 반응 속도가 달라졌기에 무의식적으로 배열에 대한 학습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차폐(Masking)

  다음으로 알아볼 방법은 차폐 (Masking)입니다. 차폐는 특정 자극이 그것과 시공간적으로 인접한 다른 자극으로 인해 지각되지 않는 현상을 말합니다. 차폐는 오래전부터 심리학에서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자극을 보이지 않게 만들기 위해 사용해온 방법이며, 그 자체가 지각심리학의 연구 주제인 만큼 그 종류가 굉장히 많은데 여기서는 몇 가지 대표적인 차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차폐는 우선 시간적 측면에서 분류할 수 있는데요. 차폐를 일으키는 자극 (mask)이 차폐되는 자극보다 먼저 제시될 경우 순행차폐 (forward masking), 두 자극들이 동시에 제시될 경우 동시차폐 (simultaneous masking), 차폐되는 자극이 먼저 제시될 경우 역행차폐 (backward masking)라고 합니다. 

  공간적 측면에서는, 차폐를 일으키는 자극과 차폐되는 자극이 같은 위치에 제시되는 것을 패턴차폐 (pattern masking)라고 하고 차폐되는 자극 주변에 차폐 자극이 제시되는 것을 메타대비차폐 (meta-contrast masking)라고 합니다 (그림 4). 패턴차폐의 경우 차폐 자극이 복잡한 잡음 (noise)으로 구성되어 있거나 차폐되는 자극과 같은 종류의 세부 특징으로 이루어진 자극을 사용하는데, 어떤 종류의 자극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차폐 효과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림 4. 패턴차폐 (좌측)와 메타대비차폐 (우측)의 예 (Axelrod et al., 2015).

[그림 5] 대상 대체 차폐 (좌측)와 CFS (우측)의 예 (Axelrod et al., 2015).


  앞서 말한 차폐들과는 조금 다르게, 대상 대체 차폐 (OSM, Object Substitution Masking)는 차폐되는 자극과 차폐 자극이 동시에 나타나지만 차폐되는 자극이 먼저 사라지게 됩니다 (그림 5). OSM은 메타대비차폐처럼 두 자극이 공간적으로 겹치지 않는데, 차폐 자극이 차폐되는 자극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는 형상의 메타대비차폐와 달리 OSM은 차폐 자극이 대개 차폐되는 자극의 네 귀퉁이에 존재합니다.

  이전에 살펴보았던 단어의 무의식적 처리에 대한 연구에서 등장했던 CFS 기법 (Continuous Flash Suppression)을 기억하시나요? CFS 기법은 양안경합을 이용한 차폐 방법입니다 (그림 5). 양안경합이 발생할 때 어느 쪽 눈의 정보가 의식적으로 경험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가 자극의 물리적 강도인데, 한쪽 눈에 차폐시킬 목표 자극을 제시하고 반대쪽 눈에 강하고 복잡하게 변화하는 자극을 보여주면 목표 자극에 비하여 반대쪽 눈에 제시되는 자극이 더 강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 동안 양안경합으로 인하여 목표 자극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다른 차폐방법과는 다르게 꽤 오랫동안 차폐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CFS의 장점입니다.

   이렇게 차폐를 통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자극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차폐된 자극은 의식적으로 경험되지는 않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일정 수준까지 정보처리 과정을 거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각각의 차폐들은 의식적 경험을 막는다는 측면에서 유사하지만 우리 뇌의 정보처리단계 중 어떤 수준에서 의식 경험을 차폐하는지는 서로 다릅니다. 그림 6은 차폐를 연구해 온 유명한 심리학자인 Breitmeyer (2015)가 분류한 여러 차폐 방법들의 위계적 수준인데요. 위쪽에 위치할수록 더 정보처리의 후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차폐이고, 차폐가 발생하기 이전 단계까지의 정보는 무의식적으로 처리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양안 경합 (binocular rivalry)의 경우 정보처리의 초기 단계에서 의식 경험을 차단시키지만 OSM의 경우 정보처리의 상위 단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양안 경합에 의한 CFS와 같은 차폐와 비교했을 때 OSM으로 차폐된 자극에 대해서는 의미 처리와 같은 상위 단계의 정보처리까지 무의식적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그림 6] Breitmeyer가 분류한 차폐들의 무의식적 처리 수준 (2015)


 지금까지 심리학에서 무의식을 연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들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각 방법들은 모두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어떤 연구를 하느냐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차폐의 경우 자극의 노출시간이 중요한데, 차폐될 자극을 오랫동안 제시하는 것이 힘들며 어떤 종류의 차폐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무의식적인 처리가 어디까지 진행되는지 다를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반면 과밀효과를 이용할 경우 자극을 오랫동안 제시하더라도 의식적으로 처리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자극이 무엇인지 파악하지는 못해도 물리적인 자극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지금까지 알아보았던 무의식을 연구하는 방법들을 기반으로 무의식적인 정보처리와 관련한 연구 주제들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코싸인 심리학팀]


참고문헌

Atas, A., Faivre, N., Timmermans, B., Cleeremans, A., & Kouider, S. (2014). Nonconscious learning from crowded sequences. Psychological science25(1), 113-119.

Axelrod, V., Bar, M., & Rees, G. (2015). Exploring the unconscious using faces. Trends in cognitive sciences19(1), 35-45. 

Breitmeyer, B. G. (2015). Psychophysical “blinding” methods reveal a functional hierarchy of unconscious visual processing. Consciousness and cognition35, 234-250.


사진출처

그림1: 직접 제작

그림2-3: Atas, A., Faivre, N., Timmermans, B., Cleeremans, A., & Kouider, S. (2014). Nonconscious learning from crowded sequences. Psychological science25(1), 113-119.

그림4-5: Axelrod, V., Bar, M., & Rees, G. (2015). Exploring the unconscious using faces.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19(1), 35-45.

그림6: Breitmeyer, B. G. (2015). Psychophysical “blinding” methods reveal a functional hierarchy of unconscious visual processing. Consciousness and cognition35, 23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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