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젠 독일

독일에서 김치 담그는 남자

독일 본에서 만난 어느 목사님 이야기

by 수평선

"내일 점심에 탕수육 할 건데 어머니랑 올 수 있어요?"

딸이 핸드폰에 온 문자를 보여준다. 담임 목사님의 문자란다.

딸이 독일 대학에 다니며 정착하게 된 작은 한인 교회. 그 교회 목사님은 이렇게 가끔 식사 초대 문자를 보내곤 한단다.

사모님은 박사학위 과정 중이고 큰 딸이 초등학교 6학년, 둘째 딸은 3학년, 셋째 딸 일곱 살, 막내는 15개월 된 아들이다.

이렇게 섯 식구가 한데 어우러져 살다 보면 자녀들과 함께 있는 시간도 정신없을 텐데 사님은 교인들 초대하기를 즐겨한다.


딸이 계속 다녀야 할 교회이고 초대에 감사 인사도 드릴 겸 사과 한 봉지 들고 출발을 했다.

버스를 타고 중앙 역까지 가는데 20분. 다음 차로 갈아타고 약 15분. 내려서 10분을 더 걸어가야 한다니 집에서 한 시간 전에는 나와야 했다.

비가 내린 다음날이라 리는 하고 먹구름까지 끼어 있어 초겨울 날씨였다

할 일이 많다던 딸은 목사님 댁에는 열일 제쳐 놓고라도 꼭 가야 한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이 많아 정신없지만 사람 사는 냄새를 느낄 수 있다나?

초인종을 누르고 안으로 들어가니 청년 둘과 집사님 한분이 먼저 와 있었다. 그분들은 아침 기도회를 마친 후 목사님 가정과 함께 장을 보고 지금까지 같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침 양식을 맘껏 골라 배부르게 먹은 후라 한 시간 뒤에 점심식사를 하는 건 어떻겠냐고 묻는다. 목사님 늘 음식을 많이 준비해서 배불리 먹게 되니 아침을 간단히 먹자는 딸의 의견대로 시리얼 조금 먹고 갔을 뿐이지만 한 시간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목사님 댁의 첫째와 둘째는 친구 초대로 외출을 했고 막내는 늦잠 중이라 셋째만 반갑게 인사를 한다. 주한 가운데도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은 포근했다.

목사님은 주방에 들어가더니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부탁을 한다. 덕분에 사모님과 오랜 시간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아이 셋을 데리고 독일에 오게 된 이야기. 박사과정 공부를 시작했는데 늦둥이가 생겨 난감했던 이야기. 한국에 다녀오는 날 9개나 되는 짐가방 때문에 셋째와 막내만 먼저 기차에 태웠다고 한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캐리어 3개씩, 첫째는 2개, 둘째는 1개의 캐리어를 끌고 가는 동안 기차가 출발을 했다는 것이다. 서서히 움직이는 기차를 마구 두드려 기차를 세워 겨우 짐을 싣고 탑승할 수 있었단다. 아이들과 생이별할 뻔 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어느새 식사가 준비되었다. 때맞춰 막내도 일어나 엄마품에 안겨 "츄스~" 하며 귀여운 인사를 한다. 머니 할아버지는 녀딸 셋 뒤에 얻은 손주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의미에서 이름을 '영광'이라고 지어주셨단다.


딸의 말대로 탕수육의 양은 대단했다. 바삭하게 튀겨진 고기가 소스를 얹어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고 인애플 사이사이로 꽃 모양으로 자른 오이와 당근이 식욕을 돋워 주었다.

탕수육의 파삭함과 소스의 상큼함이 어우러져 제대로 된 탕수육이다. 젓가락 오가는 소리와 파삭파삭 씹는 소리가 경쾌하다.

곧이어 짜파게티가 나올 것이라는 목사님의 예보를 들으며 어느새 배는 포만감을 느끼고 있었다.

맛만 보는 줄 알았는데 짜파게티 한 그릇이 각자 앞에 놓인다. 얌전히 채 썬 오이와 계란 반쪽, 그리고 굵은 새우 한 마리를 곁들이니 근사한 짜장면이 되었다.

김치의 아삭함과 깊은 맛이 짜장의 감칠맛과 어우러져 환상의 조합을 이룬다.

'김치는 한인마트에서 사 온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목사님은 딸에게 김치를 싸주신다며 통을 찾고 있었다.

이렇게 맛난 음식로 대접받은 것도 황송스러운데 귀한 김치까지 싸 주신다니 미안한 마음에 정중히 거절 했다.

교인들과 나눠 먹으려고 며칠 전에 직접 담근 거라고 하며 이미 한통 가득 담아 주었다.

김치 맛있어서 사 온 건 줄 알았다고 했더니 사님은 직접 일 년에 30포기씩 여덟 번 정도는 담근다 한다. 그 정도면 김치를 하는 수준이 아니라 김장을 하는 셈인데 거의 매달 목사님 혼자 그 많은 김치를 담그신단다. 그러니 이젠 김치 담그는 데는 베타랑이라고 자찬을 하며 수줍게 웃는다.


한차례 세분의 손님을 집까지 태워다 드리고 돌아와서는 귤 한 박스를 또 챙겨 주신다. 집까지 태워준다며 먼저 키를 들고 앞장서신다. 김치 한 보따리와 귤 한 상자를 받아 들고 송구한 마음으로 차를 탔는데 딸의 집까지 차로 가니 십분 거리다.

딸의 집에서 목사님 댁까지 직선 노선이 없어 중앙 역을 거쳐가야 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목사님 부부를 뵙고 돌아오는 길.

티셔츠도 앞 뒤를 바꿔 입으신 채 각종 음식을 대접하고자 분주하신 목사님. 뭔가 어설픈 듯하면서도 풋풋한 인간미를 풍기는 목사님의 모습이 편안하다. 지치고 상처 받은 교인들을 보듬어 안아야 하는 목자로서의 삶을 기쁨으로 여기는 사님의 모습이 따뜻했다.


아이 넷을 키우면서도 박사학위 준비를 하는 사모님의 모습을 보니 방송통신대 공부할 때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20개월 된 딸과 4개월 된 아들을 업고 걸리면서 그룹 스터디하러 갔던 시절이 이젠 추억이 되었구나.

힘들어도 웃음으로 넘기는 두 분. 오히려 하나님의 연단하심에 감사하는 두 분의 살아가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맛난 음식 이상의 것을 먹고 온지라 늦은 밤까지 저녁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다. 오히려 마음과 가슴이 든든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칼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