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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보헤미안 02화

2. 영국 선장과 영국인들

by 연후 할아버지

2. 영국 선장과 영국인들


돈을 쫓아다니며 승선 생활을 이어갔기 때문인지, 나는 국내 대리점을 통하지 않고 직접 선주와 접촉해 계약하는 개인 인력 송출을 선호했다. 그러다 보니 승선 중에 대개는 한국인은 혼자뿐인 외톨이 생활을 영위해 왔다.


같은 회사에서 몇 년간 버티다 보면, 회사에서 상여금처럼 한국 선원을 몇 명 올려 주거나 아내의 동승을 허락하기도 했는데, 그런 호사를 자주 누렸던 건 아니다.


유럽 선주들의 배를 타던 초창기에는 영국 선원들과 선장들과 동승하는 일이 잦았고 그리스 이태리 등의 지중해 쪽 선장들이나 독일 노르웨이 등의 북유럽 선장들과 함께 타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그러다가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이 주권을 되찾은 후에는, 유고 연방이었던 크레시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혹은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리고 요즘 전쟁을 하고 있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선원들로 차츰 교체하기도 했다.



내가 젊었을 때, 영국 선장들과 7~8명과 동승했던 적이 있는데, 승선 중에는 엄청 다정하게 굴어 평생지기가 될 줄 알았건만, 하선하고 나서 다시 연락이 닿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렇게 외교적이면서도 냉정한 게 대체적인 그들의 특성이다.


그중에 가장 기억이 남는 이는 단연 테일러 선장(Capt Tayler)이 다. 그는 무슨 인연인지 나와 세 번인가 동승하고 헤어졌는데, 내가 같은 배를 2년 넘게 계속 타고 있는 동안 그 혼자만 승하선을 반복했으니 함께 일을 했던 횟수는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 기간을 모두 합해 보더라도 일 년 남짓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데 그것도 짧은 세월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저 만나면 반갑고 헤어질 땐 섭섭했던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돈이 필요하기도 했고 아내가 동승하고 있어서 같은 배에 장기 승선하고 있었는데, 유럽 선원들은 집을 떠나 4개월이 경과하면 이혼 사유가 된다고 단기 승선 후 휴가를 갔다가 재승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존 레넌>과 같은 교실에서 공부했다는 게 평생의 자랑이었던 그는 내가 만났던 많은 영국 선장들 중에서는 그래도 모든 면에서 특급이었다. 키가 크고 수염을 멋있게 기른 미남이었다.


성실하고 친절했지만,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게 흠이었는데, 그래서 내가 ‘너 영국인이 맞기는 하냐?’하고 놀려대면 ‘나는 영국인이 아니라 리버풀 사람이다’하고 응수하곤 했다.


미국의 슈퍼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그의 아내와 많이 닮았고 음악적 취향도 비슷한 것 같아서 혹시 그들의 딸이 아닌가 싶어 조사해 봤지만, 아무래도 헛다리짚은 것 같다.


내 아내는 인터넷에서 본 그녀 아비의 사진 속 얼굴이 그와 닮았다고 주장했지만, 좀 더 찾아보니 그의 이름은 <테일러>가 아니었고 영국 국적을 가졌던 기록이 없으며 나이가 내 또래인 걸로 봐서는 내가 알던 그 사람보다는 훨씬 젊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설혹 맞다고 한들, 달라질 것도 없는데 괜히 수선만 피웠다.)




나와 동승하던 영국 선장들은 <테일러>처럼 풍채는 훌륭한 미남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어가 모국어라 말은 청산유수였지만, 문서로 쓴 글들을 살펴보면 문법에도 맞지 않고 논리적이지도 못했던 게 태반이었다.


회사와 통신을 할 때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전화로 끝내고 글자로 보내는 걸 싫어했는데, 영국 선장이 회사와 의사 전달에 문제가 많더라면 믿지 않겠지만, 대부분이 그랬다.


메일이 발달한 지금은 배에서 거의 사라진 직책이지만 전보가 주된 통신수단이었던 당시에는 <스파키>라고 부르던 통신장이 함께 근무하고 있었는데, 선장이 구술로 내용을 불러 주면 스파키가 알아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고. 대강 작성한 후 내용이 미심쩍을 때는 나에게 와서 감수를 받는 일도 잦았다.


겉으로는 최고의 신사 흉내를 냈지만 책임지는 일은 드물었고, 그들의 외교적 수사를 진짜로 믿었다가 뒤통수 맞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래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영국 선장들은 믿지 않는다.


예를 들면, 함께 상륙해서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다가, 수프에 파리가 빠진 것을 발견했을 때, 웨이터를 불러 바꿔 달라면 될 것을 그들은 꼭 편지를 써서 식당 주인에게 전달했다.


입항 중에 항만 관청이나 세관 관리들과 분쟁이 발생했을 때도 절차는 같았다. 즉각 편지로 써서 영국 외무성으로 보낸다. 문법이나 맞는 글이었는지는 확인해 볼 방법이 없었지만 개발세발 쓴 편지도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그때까지도 대영제국의 자존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 그들의 정부는 상대국에게 즉각 항의한다. 그래서 해고된 후진국 관리들이 많으니 영국 선장들이 승선하고 있는 배는 시비 거는 사람이 드물어 언제나 평온했다. (동승하고 있던 나도 그 혜택을 여러 번 누리긴 했지만, 좋거나 부러워 보이진 않았다.)


선장들만 그런 게 아니라 영국 항구에 입항해 시내로 나가보면, 지나가는 행인들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지하철을 Subway라 하면 못 알아듣는 척 'What? What did you say?'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Oh, did you mean under-ground?'하고 묻고 나서야 대답한다.(비슷한 단어인데 본토인들이 처음부터 알아듣지 못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야구 중계를 보고 있으면, 투수와 타자가 같은 편이냐고 묻기도 한다. 처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조금 후에는 다른 사람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같은 질문을 한다. 깐에는 축구만 좋아하는 유럽인이라고 표시 내고 싶은 아재 개그겠지만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 듣다 보면 속이 뒤틀린다. (엄밀히 말하면, 영국은 유럽에서 분리된 섬나라이고 스스로도 ‘왕국(UK/GK)'이라 부르며 특별 취급을 받기를 원하지만, 필요할 때만 가끔 유럽인 행세를 한다.),




역사를 보면, 영국인들이 처음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인디언들을 야생 동물처럼 사냥하다가 인권이 어떻고 하며 보호구역을 정해 몰아넣었는데, 중남미처럼 정벌이 끝난 후 현지인들과 피를 섞어 가며 사는 스페인 계통 사람들이 훨씬 더 인간적이었다는 내 생각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1970~80년대의 영국 항구들의 뒷골목은 대영제국이었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더럽고 창녀와 실업자가 득실거리더니, 어느 순간에 정리가 되고 깨끗해졌다.


정치가들은 치적을 자랑하고 싶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유럽 연합 덕분이었다. 공용어가 영어로 정해지고 다른 나라 국민들이 원어민 영어 선생이 대량으로 필요해지자 실업자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었고 세금으로 국고가 차자 길거리도 윤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최근에는 볼일 다 본 영국인들로서는 아쉬울 게 없어서 유럽 연합에서 탈퇴했다. 어차피 한 번 정해진 공용어가 바뀔 까닭은 없으니 다른 이익을 챙기면 된다. (내가 함께 일했던 영국 선장들의 성격과 비슷한 것 같아서 선입견을 갖고 오해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이상한 일이 있다. 과거에 영국인들에게 착취와 고통을 당했던 인도 계통의 나라들이나 서인도 제도의 여러 나라들은 아직까지도 그들을 중심으로 뭉치고 그 나라를 종주국으로 모시고 있다는 점이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은 탄압을 받았던 건 아니고 그들이 직접 건너가 건설한 나라들이어서인지, 형식적이긴 하지만 아직도 영국 왕을 국가원수로 모시고 있다.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식민통치를 당하다가 독립한 나라들이 지금도 그들을 상전 대우 한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동남아시아 쪽에도 비슷한 일이 더러 일어나고 있기는 하다. 말레이시아나 대만 등이 일본에 의지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와 베트남이 가까이 지내는 것도 짐작이 어긋난 부분이다. 싸우고 몸으로 부닥치면서 정이 들었던 것일까? 이런 걸 보면, 일본과는 무슨 일이든 각을 세우는 우리의 민족 감정이 오히려 특이한 경우라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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