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내고 외국으로 떠돌아 다녀서 많은 것을 본 것 같지만, 내 식견이 부족하고 그나마 항해하는 배위에서 바라본 풍경이거나 정박 중 잠시 외출해서 스치듯 구경한 게 전부라 풀포기 몇 개를 보고 숲을 평가하는 잘못을 범할 확률도 높다.
그리스나 유대인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 세상에는, 자기 민족과 다른 민족, 두 가지 종류의 인간들이 존재한다고 단언하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들었을 때는 양쪽 다 세계인구의 0.1% 정도 밖에 갖지 못한 소수민족들이 그렇게 말하는 게 과대망상증 환자들로 여겨졌지만, 그네들 입장에서는 적은 숫자의 동족이 나머지 99.9%보다 더 소중했던 거라고 이해는 된다.
나도 그들을 흉내 내어, 땅에 사는 사람들과 바다를 떠도는 선원들로 이등분해 본다면, 전자의 시각으로 재단한 글들은 서점마다 넘쳐 나지만, 후자가 본 세상 이야기는 흔하지 않았던 것 같으니,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끔 해양 문학을 한답시고 바다를 소재로 쓴 글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 백미로 칭송받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조차도, 땅에 사는 사람이 잠시 바다 구경을 한 것이었지, 어부나 선원의 시각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보다는 조금 앞 세대에 <백경>을 쓴 <멜빌>이란 미국 작가는, 젊었을 때 선원 생활도 해 보고 포경선도 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 약간 다른 경우지만, 짧은 기간 노예 비슷한 보통 선원 생활만 했기 때문인지, 바다 생활을 오래 해온 내 눈에는 앞뒤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은 상상과 추측이 난무하여 허풍선이 같은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생전에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해서 가난하게 살다가 사후 30여년이나 지나서야 재평가되었던 이력이 있다. 좋은 정보란, 전문가가 직접 확인한 걸 1등급으로 친다는데, 그 내용의 대부분은 직접 본 사실을 토대로 썼겠지만, 심부름이나 하던 그가 전문가는 아니었다. 내가 부담 없이 내뱉는 말들도 비슷한 일이 될까 봐 두렵다. 내 눈에 진실로 보였다고 모두 진리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완벽한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안전한 땅에 가서 정착해도 할 일이 많은데 왜 위험한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겠느냐는 역설도 가능하고, 실제로 뱃일을 해보면 글을 쓸 환경은커녕 차분히 앉아 있을 시간도 부족한데, 당연한 귀결을 신대륙이나 발견한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독서할 시간이 부족했으니 지적 수준이 떨어질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기록할 시간과 환경 탓을 하는 건 아니라 본다. 내 경험으로는, 어떤 일이 이뤄지는 건 한가한 시기보다는 정신없이 바빠서 짬도 내기 어려웠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같은 사물도 보는 각도와 평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수 있으므로,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으면 꾸중을 듣고 고치면 된다는 배짱으로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 나이에 해양 문학씩이나 해 보겠다고 선언하는 건 아니고, 두려움을 지우고 어떤 글이라도 써 보겠다는 다짐이다.)
누군가가 관심이라도 가져 준다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입장이라, 무식이 폭로되더라도 잃을 게 별로 없고, 정치인이 아니니 지지율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모자란 식견과 거친 발언 때문에 편견을 공유하거나 상처받는 사람이 나올까 봐 걱정은 된다.
불구경을 하던 거지가 자기는 태울 집이 없어 다행이라던 고백 같아 우울하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순응하는 게 현명한 자세다. 오류를 최소화시키려고 노력하겠지만, 바탕부터 경솔하고 격정적인 체질이라 전혀 발생시키지 않겠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혹시라도 미숙하거나 잘못 표현된 부분이 보이거든 바로 지적해 주시던가 아니면 그냥 눈감고 스쳐 지나가 주길 바란다. 보지 않는 데서는 임금도 욕을 얻어먹는다던데 뒷담화를 막을 방법은 없겠지만, 돌을 던져 맞추는 건 멀리 떨어져 있으니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