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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네시 Jun 26. 2020

길냥아, 배 많이 고팠지?

 "배도 부른데, 이제 좀 걸을까?"

 요즘 저녁 먹은 후의 고정 스케쥴은 동네 한 바퀴를 걷는 일이다. 예전에는 내가 걷는 걸 귀찮아해서(정확히 말하면 내가 하고 싶은 자기계발할 시간을 뺏기는 것 같아서) 잘 안나섰는데, 이젠 다른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태라 걷는 선택지만 남았다. 즉, 걷는 것 말고는 운동할 게 마땅찮은 상태이다. 생존을 위한 운동을 하러 집을 나섰다.


 6월도 하순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은 무더위가 오지 않아 선선한 저녁 날씨를 느끼며 산책을 했다. 마침 인근에 새로 들어선 식당가가 있어 맛좋은 저녁을 먹고 또 새로 들어설 공원 옆 길을 걸으며 바람을 쐬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잠시 멈춰선 그 때, 저 멀리서 하얀 물체가 나타났다.


"어? 저게 뭐지?"

냐옹...

"엇, 고양이네! 근데 엄청 뚱뚱해보여."

"새끼를 밴 거 같은데?"


 와이프의 말을 듣고 자세히 보니 배가 양옆으로 불룩하고 걸음걸이가 뒤뚱거리는 폼새가 영락없이 새끼를 가득 밴 암코양이의 모습이었다. 근데 뭔가 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보통 길냥이(주인이 없이 길에서 생활하는 고양이. 생각해보니 원래 고양이는 야생동물인데.. 주인 없는 게 당연하긴 하네)들은 사람이 다가서면 도망가기 일쑤지만 요놈은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우리에게 야옹 거리면서 슬슬 다가왔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아닌가. 이윽고 고양이의 대표적 애정 표현인 옆구리 비비기(?)를 시전하며 바닥에 벌러덩 눕기까지 했다. 아니, 이 고양이는 대체 얼마나 사람들을 응대(?)해봤길래 이렇게 경계심이 없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외모가 꽤 예쁘게 생긴 걸 보니 어찌 보면 사람 손에 길러지다가 버려졌을 수도 있겠단 합리적 의심도 해봤다. 어찌 됐든,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이 고양이를 왠지 더 보고 싶었다.


 

 고양이가 벌러덩 누워 있을 때를 보니 배가 정말 빵빵했다. 나는 고양이를 길러본 적이 없지만, 처가에서 은거하는 숫고양이는 많이 상대해봐서 익숙했다. 허나 암코양이는 이렇게 제대로 본 것이 처음이라 매우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게 됐다. 곧 나올 새끼들에게 물려줄 젖들도 잘 보이는 걸 보니, 출산이 임박한 게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그때 스치는 생각이 이거였다.


'아, 요놈이 사람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자기와 자식새끼들을 위해 먹을 것을 찾아 달려온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냥 지나가는 별볼일 없는 인간에게 다가와 부비는 것이 꼭 필요한 본능이었으리라 이해가 간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저 멀리 편의점 불빛이 보였고, 우린 역할 분담을 했다. 나에게 와서 부비는 놈을 내가 맡아서 붙잡아두고, 와이프는 편의점에서 일용할 양식을 사오기로 말이다. 안그래도 뛰는 게 어려운 환자인 와이프였지만, 고양이가 도망갈지 몰라 우선 내가 남아서 요놈 곁을 맴돌았다.


 다행히 고양이는 도망가지 않았고, 다가오는 나에게 더 격렬한 구식활동을 펼쳤다. 온갖 부비부비를 시전하면서 주변을 맴도는데 아까보다 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 날씨도 꾸리꾸리했는데, 이런 몸으로 어찌 돌아다니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와이프가 맛있는 소세지를 사들고 왔다. 나는 고양이에게 "엄마가 맛있는 거 사왔다! 고맙습니다 해야지!"라는 식의 통하지도 않는 헛소리를 하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고양이는 와이프가 손으로 뜯어주는 소세지를 처음엔 살짝 경계하는 듯 싶더니, 이내 미친듯이 먹기 시작했다. 쯧쯧..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다시 한번 연민의 감정이 몰려왔고, 요놈의 새끼고양이를 키우고 싶단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바로 접었다. 고양이 본인, 아니 본묘에게는 안타깝지만 섣부른 입양은 오히려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곧 이사도 갈 예정인데 어수선해질 것도 뻔하니, 연민의 감정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고운 자태를 뽐내는 고양이.

 고양이는 다른 동물들보다 영약한 듯 하다. 뭔가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느낌이라 친근하면서도 무서운 느낌이다. 여건이 된다면 집에 데려가서 잘 맥이고 씻기고도 싶지만, 책임지지 못할 선의는 함부로 베푸는 게 아닌 듯 하다. 소세지를 배불리 먹고 슬그머니 우리를 떠난 예쁜 흰 고양이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


밥은 먹고 다니냥? 건강하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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