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으로 밀지 않아도 아이는 달린다 !

의대생 남매, 그 변화의 시작은 '대치동'이 아닌 '남대문시장'이었다

by Reich 라이히

@"남대문의 칼바람과 호텔의 오렌지 주스" 에 이은 글 입니다


"남대문 시장에 다녀오면 정말 아이가 달라지나요?"

​많은 분이 제게 묻습니다. 그 하루의 경험만으로 아이가 정말 180도 바뀌었냐고 말이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니요. 아쉽게도, 아이는 마법처럼 바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여전히 아이의 알람은 허공을 울렸고 아이는 쉽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어질러진 책상 위에는 전날 풀지 않은 문제집이 그대로 놓여 있었죠. 그 모습을 보며 제 마음도 또다시 흔들렸습니다.

​'며칠 전 그 일은… 그저 일회성 이벤트였을까?'

​하지만 단 하나, 본질적인 것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관리'라는 명목하에 아이의 분초를 다투는 잔소리를 쏟아냈을 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조급함을 삼키고, 기꺼이 침묵을 선택해 보았습니다. 아이가 스스로의 속도를 찾아낼 때까지, 오롯이 기다려 주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잘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아이 방의 불이 꺼지지 않는 것 이었습니다. 조용히 문을 열어보니, 방 안에는 해야할 과제를 무겁게 해대고 있는 싸늘한 정적 대신, 스스로 선택한 공부에 몰입하는 아이의 단단한 숨소리만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가 안풀려서요. 이것만 풀고 잘께요, 먼저 주무세요... "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이 아이는 이미 선택을 했구나.'

​그날 남대문 시장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그리고 이어진 호텔 라운지의 여유 속에서, 아이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비교'해 본 것입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 삶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이죠.

부모의 잔소리가 멈춘 깊은 밤, 아이의 진짜 항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부모로서의 '착각'을 내려놓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부모로서 가졌던 오랜 착각을 내려놓았습니다. 아이를 바꾸는 건 초등때부터 밀어부치는 치밀한 계획표도, 대치동으로 이사할 때 부모로서 가졌던 그 기묘한 다짐도, 유명한 학원의 일타 강사님도, 부모의 간절한 잔소리도 아니었습니다.

​그 한 번의 경험이면 충분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아이를 벼랑 (압박) 끝으로 밀어붙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가끔 이렇게만 물었습니다.


"요즘, 네가 선택한 삶이랑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니?"

​그 질문 하나면 흐트러졌던 아이의 눈빛은 다시 단단해집니다. 압박이 아닌 '욕망'이 그리고, '자발적 동력' 이 우리 아이를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죠.

​몇 년이 흐른 지금, 아이는 자신이 직접 선택한 그 길 위에 당당히 서 있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아이를 진짜 움직이게 하는 힘은 외부의 압박이 아니었음을요. 자기 인생을 객관적으로 한 번 '보고' 나서, 비로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스로 생겨나는 '동경'과 '욕망'입니다.



"배가 만들어지길 원한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거나 일을 지시하지 마라. 대신 그들에게 저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을 심어주어라."

— 생텍쥐페리


벼랑 끝으로 밀어 넣는 압박은 아이를 멈추게 하지만, 먼 바다를 향한 동경은 아이를 끝없이 달리게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아이에게 어떤 풍경을 보여주고 계신가요? 혹은, 여러분의 아이는 어떤 바다를 꿈꾸고 있나요?


아이를 움직이는 진짜 동력은 부모의 '치밀한 계획표'가 아니라, "아이 스스로 품게 된 '내일의 모습'에 있음을,

저 역시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음을 고백합니다.



남의 시선에 갇혀 살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28년의 기록,

그리고 아이와 함께 목숨 걸고 진심으로 절실히 그려낸 이 작은 지도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이정표가 되길 바랍니다.

​저와 함께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나갈 분들은 '구독'으로 이 여정에 동행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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