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10년, 내가 목격한 '불안'의 대가

천재를 무너뜨린 교육의 '속도감'

by Reich 라이히

우선, 저의 첫 브런치북 ‘한글은 늦게, K-의대는 빠르게’ 에 보여주신 따뜻한 관심과 정성스러운 댓글들에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저는 평생 직장 생활과 아이 키우기에 쫓겨, 부끄럽게도 SNS는 해 본 적 없으며, 저를 위한 사소한 수다 조차 허락되지 않는, 24시간을 촘촘히 쪼갠 진공 상태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 저에게 브런치라는 공간은 낯설고도 특별한 도전이었습니다. 제 치열했던 시간의 기록들이 어느 곳의 어떤 분께는... 마음에 닿아 작은 울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요즘 저는 매일 새로운 위로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오늘은 큰아이가 열 살 무렵, 대치동이라는 거대한 전장에 첫발을 내디뎠던 그 치열한 풍경 속에서 제가 목격한 가장 안타까운 순간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그 아이는 천재였습니다.”

적어도 대치동의 모두가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 아이만큼 ‘완벽한 출발선’에 서 있던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타고난 총명함과 부유한 환경, 그리고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지방에서 대치동으로 입성한 그 아이는 모두의 선망 대상이었습니다. 초등 저학년 때 이미 대치동 최고의 커리큘럼을 섭렵했고, 당시에도 회당 100만 원에 육박하던 고가의 뇌교육까지 병행하며 빈틈없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1:1 로 이뤄진다는 뇌교육이었는지, 뇌휴식이었는지 ... 그 수업은 대체 뭘하는건지, 현재의 저도 너무 궁금하기만 합니다)


대치동은 종종 교육이 아니라 ‘불안’을 팝니다. ( 천재를 무너뜨린 교육의 ‘속도감’)

“지금 시작 안 하면 늦어요.”

“벌써 00 이는 여기까지 끝냈어요.”

대치동을 떠도는 이 말들은 누군가에게는 진정 유용한 정보가 되겠지만, 중심이 흔들리는 부모에게는 날카로운 ‘불안’이 됩니다. 학원은 그저 세상의 속도를 보여줄 뿐이지만, 그 속도에 내 아이를 맞출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결국 부모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의 부모님 역시 그 거센 속도감에 마음이 먼저 올라탄 듯 보였습니다. 이미 충분히 잘해내고 있는 아이에게 더 가파른 속도, 더 압도적인 학습량, 더 높은 단계를 끊임없이 주문했습니다. 학원이 권하는 커리큘럼을 아이의 상태보다 우선시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단 하나였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아이의 보폭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천재라는 재능은 쉽게 마모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속도감’은 그 재능마저 무너뜨립니다. 아이는 서서히 빛을 잃어갔습니다. 반짝이던 질문이 줄어들었다고 하고, 활기차던 표정과 그 예뻤던 눈웃음도 점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부모의 조급함이 투영된 속도에 아이의 영혼이 먼저 지쳐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아이는 공부라는 세계를 스스로 등지고 말았고, 대치동 소문에서 점차 사라져 버렸습니다. 대치동은 누구나 아는 대학을 가지 못하면 기억되지 못하는 곳입니다.

(저희 둘째의 기억에 대치동은 그저 회색으로 기억된다고 하더군요. 그곳이 슬프지도 않았고, 친구들과 깔깔 즐거운 시간들도 많았지만, 대치동의 저녁은 무거운 책가방을 진 지친 아이들이 모였던 회색의 도시로 기억 된다하여, 저의 마음이 저리기도 합니다)


사실, 저도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결코 남 일처럼 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대치동에서 누구보다 조급했던 엄마였으니까요. 서슬 퍼렇던 회사에서는 늘 신속한 판단이 요구 되었고, 아이 교육도 그렇게 속도감 있게 처리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지금 아니면 늦는다”는 말이, 그곳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천재 아이의 무너짐을 목격하며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아이의 ‘현재’가 아니라, 항상 ‘미래의 불안’만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불안이 아이의 고유한 속도를 무시하게 만든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방향을 바꿨습니다

남들처럼 빠르게 가는 대신, 아이가 무너지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세상의 속도와는 정반대인 ‘종이책의 느림’을 고집하기도 했고, ‘남대문 시장’이라는 거칠고 활기찬 현장에서 세상을 배우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의 속도를 묵묵히 기다려주었습니다.

그 과정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방식이었다는 것을요.

지금도 대치동에는 같은 말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지금 아니면 늦어요.”

하지만 저는 이제 이렇게 생각합니다. 늦는 게 아니라, 아이가 무너지는 게 더 무섭습니다.


“나무가 자라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나무가 스스로 자라날 수 있도록 좋은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뿐이다.”

—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작가 후기]

저 역시 완벽한 엄마는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실수하고, 여전히 불안에 흔들립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아이를 망치는 건 부모의 ‘부족함’이 아니라 ‘조급함’이었다는 사실을요.


이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가서 닿아, 잠시라도 멈춰 서서 아이를 바라보게 하는 글이었다면 좋겠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도 그 깨달음 이후의 선택들과, 아이들과 함께 뗏목을 저어 나갔던 구체적인 여정들을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학원을 줄이고

종이책의 ‘느림’을 늘리고

‘남대문 시장’이라는 낯선 생태계로 아이를 데려갔습니다.

​그 결과는—

대치동에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이 지독히도 느리고, 아름다웠던 항해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월, 화, 수, 목, 토, 일 연재
이전 07화벼랑 끝으로 밀지 않아도 아이는 달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