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아들의 뒤늦은 고백
마흔을 넘기고 쉰을 지나며, 저는 제가 꽤 괜찮은 '교육관'을 가진 엄마라고 자부해왔습니다. 두 아이를 모두 의대에 보냈다는 결과론적인 성취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자율적인 삶을 살도록 도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물여덟, 이제는 번듯한 성인이 된 큰아이와 마주 앉아 나눈 대화는 저의 오만한 착각을 여지없이 깨뜨려 놓았습니다.
"언제가 가장 힘들었니? 네 28살 인생에서 말이야.."
가벼운 마음으로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내심 고3의 수많은 하루나 고된 의대 공부나 (특히 힘들어했던 해부학 수업..) 취업 준비 등을 꼽을 줄 알았지요. 하지만 아이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정말 예상 밖의 '답'이었습니다.
"음... 초등학교 1학년에서 3학년 때.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
심장이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이는 담담히 말을 이어갔습니다.
"내가 1학년 무렵 새로 시작한 영어, 수학 등 모두 잘하긴 한 것 같은데, 그때 엄마가 나를 너무 밀어붙였던 것 같아. 기억나? 나 초등학교 2학년 때 전국 수학경시대회에서 은상 받았던 날. 엄마는 내가 대상이나 금상이 아니라서 분했던 것 같아. 엄마가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나는 너무 슬펐고 공부가 힘들게 느껴졌어."
(사실 저는 아쉽게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 기억의 온도 차란 이토록 잔인한 것인가 봅니다)
<은상 뒤에 숨겨진 아이의 공포>
아들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날의 파편이 떠올랐습니다. 그날의 제 눈물은 아이를 향한 질책보다는,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라는 엄마 특유의 조바심과 욕심이 뒤섞인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덟 살 아이의 눈에 비친 엄마의 눈물은 '나의 성취가 엄마를 실망시켰다'는 거대한 공포였다는 사실을 저는 2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이의 어깨 위에 '엄마의 기대'라는 무거운 짐을 얹어두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은상을 받고도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엄마의 눈물 때문에 자신의 성취를 실패로 규정지어야 했던 그 어린 마음이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엄마의 힘이 빠질 때, 비로소 시작된 '진짜 공부'>
아이의 기억은 흥미롭게도 4학년 때부터 반전됩니다.
"오히려 4학년 때부터는 학원 개수가 늘었을지는 몰라도 마음은 편했어. 엄마가 하나하나 성적에 연연하지 않았거든. 그때부터 공부가 즐거워졌던 것 같아."
아이러니하게도 그랬습니다. 제가 '완벽한 엄마'가 되기를 포기하고, 아이의 점수판에서 눈을 뗐을 때, 비로소 아이는 스스로 걷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엄마의 불안이 거두어진 자리에 아이의 자율성이 싹텄고, 밀어붙이는 힘이 사라진 곳에서 아이는 자신의 속도를 찾아갔습니다.
<미안함이 아닌, 감사의 기록>
"아이는 부모가 믿어주는 만큼 자란다."
— 칼 로저스 (Carl Rogers)
인간중심 심리학의 대가, 칼 로저스의 이 명언을 저는 이제야 가슴 깊이 이해합니다. 저는 아이를 믿기보다, 제 욕심과 조바심을 먼저 믿었습니다.
스물여덟의 아들은 이제 웃으며 말합니다. 그때 힘들었지만 그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본인이 있다고. 하지만 저는 이 기록을 통해 진심으로 고백하고 싶습니다.
"미안해. 그리고 정말 고마워....."
그 시절, 엄마의 서툰 욕심을 묵묵히 견뎌내 준 아이에게. 그리고 이제는 그 아픔을 담담히 꺼내어 엄마의 성장을 도와준 저의 가장 큰 스승 중 한 명에게.
오늘도 대치동의 밤은 깊어갑니다. 혹시 지금 아이의 성적표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엄마가 있다면, 저의 이 뒤늦은 후회가 작은 울림이 되길 바랍니다. 엄마가 울음을 참을 때, 아이는 비로소 웃으며 책상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아이들은 어떤 기억을 품고 있나요?
<에필로그 >
제목: "독자 여러분이 만들어주신 기적"
내용: "오늘 글을 마무리하며 감사한 소식을 전합니다. 부족한 저의 첫 기록들이 독자분들의 큰 사랑을 받아, 제게는 기적처럼, '요즘 뜨는 브런치북 1위'에 올랐습니다.
아이와의 아픈 기억조차 글로 써낼 수 있었던 건 모두 여러분의 응원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리며, 숫자가 주는 기쁨보다, 제 글이 어떤 분의 밤을 다독였다는 사실에 더 깊이 감사드립니다. 정답이 없는 교육의 길 위에서, 완벽한 엄마는 포기했지만, 진심을 담는 글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