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와 원룸
카페를 사랑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꼭 카페를 갔다. 보통의 모두가 그렇듯 그곳에서의 노트북으로 일을 하기도 했고 책을 읽기도 했으며 누군가를 만나기도 했다.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 다른 동네에 약속이 있는 날 이면 가보지 못한 카페를 찾아 방문하곤 했다. 카페는 내가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사치였다. 카페의 특유의 향기, 백색소음 그리고 쾌적함이 좋았다. 사진첩에는 새로 마신 커피나 디저트 사진이 늘 업데이트되었다.
" 언니 집 근처에 이런 카페가 있는데 엄청 좋아. 자리도 넓고 커피도 맛있어."
언니네 집에 오랜만에 놀러 나는 얼마 전 방문했던 카페가 얼마나 좋았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그곳의 높은 천장과 커다란 원목 테이블 커다란 창이 마음에 들었던 터라 조금 들뜬 목소리로 찍어온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언니는 별 반응이 없었다.
"좋아 보이네. 근데 나는 집에서 커피 마시는 게 더 좋아."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놀랐다. 카페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니. 그리고 내가 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더 좋다는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스무 살부터 서른 살 까지 십 년의 시간을 작은 공간에서 지냈다. 기숙사, 고시원, 쉐어하우스, 원룸 등 다양한 주거 공간을 거쳤지만 그 어디에도 오롯이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이불과 조립식 책상 하나로 가득 찼던 나의 방들을 난 좋아하기도 했고 끔찍이 싫어하기도 했다. 보증금 천만 원을 겨우 모아 처음 계약한 원룸에서 처음 잠을 자던날 나는 조금 울었다. 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용케 저금했다는 뿌듯함과 혼자 힘으로 홀로서기를 했다는 대견함이 날 울컥하게 만들었다. 해가 들지 않는 북향의 원룸 화장실에는 쉽게 곰팡이가 피며 눅눅했지만 혼자 쓸 수 있는 화장실이 생겼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비록 화장실 변기와 세면대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분홍색일지라도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자취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인터넷에 보이는 예쁜 원룸처럼 꾸미고 사는 일은 쉽지 않다. 집에서 가져온 극세사 이불과 돌잔치 기념, 칠순 기념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는 수건들과 함께 아름다운 방을 꾸미기란 어렵다. 그런 것들을 다 버리고 내 마음에 드는 감각적인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도 금전적으로 여력이 없다. 그래서 결국 자취 생활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발생하며 보통 지갑 사정을 고려하여 로망은 무너지고 늘 현실이 승리한다. 나 또한 그랬다. 수납공간의 부족으로 방은 늘 정신없었고 청소기가 없어서 빗자루로 바닥을 청소했는데 당연히 청소기만큼 깨끗하게 청소가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을 대충 쓸면서 적당선에서 타협하며 살았다.
십몇 년 만에 원룸에서 벗어난 지금 내가 왜 카페를 그렇게 좋아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분리된 공간을 원했던 것이었다. 넓은 공간이 주거 공간이 되자 카페를 가지 않기 시작했다. 카페가 나에게 제공해주었던 정돈되고 넓고 깨끗한 느낌의 공간이 내 집이 되자 집에서 커피를 내려서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언니가 나에게 했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집에서 커피를 내려마시면서 좋아하는 원두가 생겼다. 이제 커피를 내려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그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커피를 마시며 아주 치열하게 살았던 나의 이십 대를 떠올렸다. 그 시절 나에게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나에게 일상과 분리되어 재충전하는 시간이었다. 단 몇 시간 동안 일지라도 나의 작은 일상을 환기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였다. 그 시절의 나는 소중하지만 답답했던 원룸에서 채우지 못했던 것들을 카페에서 채웠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