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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추위 Jul 20. 2022

저는 알코올중독자의 딸입니다.

31 선물과 쓰레기 사이에서

아빠가 입원한 지 4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주치의와 면담을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근무시간이 짧은 편이라 출근 전후로 짬을 내어 면담을 하고 싶었으나 병원은 11시 외에는 보호자 면담을 받지 않는다고 하니 아쉬운 놈이 연차를 내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갔다. 두 달도 남지 않은 동생의 결혼식 때문에 퇴원시기를 결정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기를 드려야 할지? 일단 궁금하신 걸 물어보시면 거기에 답해드리겠습니다"

멋스럽게 새버린 은빛 머리칼과 사투리 섞인 억양, 단호한 어조가 여전하셨다. 입원 당일 이후 두 번째 만남이었다. 나는 아빠의 알코올 중독, 알코올성 치매, 건강상태가 어떠한지 물었다

"알코올 중독의 상태는 지금의 인지저하로 봤을 때 최고 수준이며...., 알코올성 치매 정도는 노인성 치매와 달라서......, 뇌 MRI상 전두엽 쪽....., 심장 상태는....., 하루 중에도 기복이 있으신데 저녁 무렵에는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음 달에 동생의 결혼식이 있어서 퇴원시기가 고민이 되서요"

....... 그 후로 20~30분 정도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기억나는 말을 적어보자면,
이 분은 퇴원을 시키려면 가족들이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같이 사는 가족이 본인의 인생을 내려놓고 옆에서 엄청난 희생을 해가며 케어를 해도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멀리서 지켜보는 가족은 당사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 고통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지금 시설 외에도 장기요양시설로 옮겨 계속 입원 치료를 받는 것도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바로 앞에 갑 티슈가 놓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무슨 자존심인지 울고 싶지 않아서 눈에 가득히 눈물을 눌러 담고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가 아직 환갑도 안되셨는데... 병원에 계속 두기가...."

"제가 보기에 따님은 하실 만큼 하셨습니다. 이렇게 아버지를 입원시킨 것도 어떻게 보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선물을 못 받아보고 가시는 분들도 많으세요. 그런데 아버지는 지금 살려줬다고 고마워하고 있지 않습니다. 선물은 받는 사람이 고마워하고 소중히 간직해야 선물이지, 고마움을 모르고 아무 데나 처박아둔다면 쓰레기가 됩니다. 아버지는 병원에 계시든 퇴원을 하시든 본인의 인생을 살 겁니다. 가족 누군가가 퇴원을 시키자고 하면 그분들께 아빠를 맡기고 따님은 손을 떼세요. 따님은 이제라도 따님의 인생을 명랑하게 사십시오. 직원 대동 하에 지금 아빠를 만나보시고 결혼식장에 아빠를 데려가실지 여부를 결정하셔도 됩니다. 만나보고 가시겠습니까?"

"아니요. 만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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