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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추위 Sep 22. 2022

저는 알코올중독자의 딸입니다.

32 두 번째 입원 연장

2022.8.5(금)

퇴근 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카페에서 티타임을 가진 후

병원에 입원 연장 동의서를 가지러 갔다

방금 전 친구를 만나 여름휴가와 결혼생활 에피소드를 나누며 하하 호호 웃음 짓던 평범한 나의 모습은 이제 없다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안은채 평온한 웃음을 짓는 기분이란...)


저 멀리 보이는 낡은 건물과 병원 간판에 잠시 잊고 있던 삶의 무게가 다시 고스란히 가슴을 짓누른다 (네 삶의 무게가 여기 있었다며 내게 말하는 듯 하다)

외래진료가 다 끝난 평일 오후,

담당자는 문이 잠겨 있을 테니 데스크로 전화를 주던지 초인종을 눌러달라 했다


불 꺼진 병원 입구.

잠긴 유리 문에 다가가 똑똑 두드려보니

인기척에 직원이 바로 나와 웃으며 반겨주었다

(이곳은 왠지 그들의 친절에도 고맙게 웃음이 지어지지 않는다

뭔지 모를 씁쓸하고 아픈 웃음으로 화답했다)


첫 번째 입원 연장 동의를 할 때에는

죄지은 학생의 학부모처럼 상담실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나. 셋이서 어깨를 움츠리고 앉아 입원 연장이 필요한 상황에 대해 브리핑을 들었었다


두 번째 입원 연장 신청 기간이 도래했을 때에는

다행히도 서류에 보호자 2인의 사인만 받아와도 된다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서류를 받아들고

할머니, 할아버지 댁으로 향했다

(연로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사인하게 하는 것은 굉장한 심적 부담을 준다)


할머니는 역시나 회생 불가능한 아들에 대해 걱정하며 더 좋아질 게 없다면 뭐 하러 병원에 계속 아빠를 두냐고 하셨다. 본인들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지 모르니 그냥 나와서 살고 싶은 대로 살다 죽게 내버려 두자고....


하지만 그 말은 거짓이다


할머니는 그 간 나에게 수없이 전화해서

아빠의 감당 못할 언행들을 고하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고 괴로워하지 않으셨던가?

살고 싶은 대로 살다 죽게 내버려 뒀다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제 명에 살지 못하실 것이다


나는 장기입원을 권유한 의사의 소견에 따라

장기 요양 등급신청을 해볼 것이며 그에 필요한

서류 등 신청 과정이 있으니 등급 신청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입원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본인의 이름 석 자 정도 겨우 쓰시며

80여 년을 살아오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볼펜을 쥐어드리고 사인할 칸을 여러 번 확인시켜 드린 후에야 막 글을 배운 어린아이처럼

한 자 한 자 그림 그리듯

사인을 하셨다


입원 연장 신청 사유를 적는 란에는 내가 직접 적은 긴 문장을 보고 따라 써보시도록 했다



"치료가 필요합니다"

"치료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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