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ldred Sep 19. 2019

미혼과 비혼 사이

'지금 나는 불행한 것 같아'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이 쓴 글을 읽었다. 어쩌면 모든 내용이 거짓일 수도 있는 글 속에서 한 문장이 마음에 콕 박혔다.


50대 미혼녀라고 밝힌 글쓴이는 한 직장에서 30년 가까이 일해왔고 적지 않은 월급을 받고 있다고 했다. 퇴직을 한 이후에도 별다른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정도로, 중대형 아파트 2채와 3층짜리 상가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인생에 결혼과 육아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어쨌거나 누가 봐도 꽤 여유로운 상황이었다.


그런 그녀는 퇴근이 싫다고 했다. 일을 할 때만큼은 누군가와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는데, 집에 가면 아무도 없는 게 싫다고 했다. 배도 고프지 않고 잠도 오지 않는다고,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과는 멀게 느껴진다고 했다.


18년을 함께 했던 강아지를 무지개다리로 건네 보낸 후, 의사와 상담을 했더니 정서적 교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누군가와 싸우고 또 누군가가 말썽을 일으켜서 속상해하는 과정이 오히려 더 건강한 환경이라고.


그러면서 그녀는, 비혼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실 나는 내가 이 나이까지 싱글일 줄 몰랐다. 스물대여섯 살 때쯤 아빠에게 '빠르면 스물여덟, 늦어도 서른'에는 결혼을 하겠노라고 호언장담 했지만, 서른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나는 미혼이고 결혼을 독촉하는 부모님에게 '때 되면 가겠지'라며 남 이야기하듯이 능글맞게 퉁치는 상황이 됐다.


언제까지 싱글일 수 있을까.


얼마 전 읽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와 지금 읽고 있는 <혼자 살면 어때요? 좋으면 그만이지>를 통해서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혼자 사는 삶에 대해 이제 막 고민해보기 시작했지만,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혼자인 삶이 두렵기도 하다. 예전에 모 드라마에서 문구독을 하는 주인공이 나왔는데, 보지도 않을 그 신문을 매번 구독하는 이유가 혹시라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현관 앞에 쌓인 신문을 보면 누군가 도와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그 내용이 어쩐지 다시 떠올라 잊히지가 않는다.


친구 C가 우스갯소리로 "마흔까지 서로 싱글이면 같이 살자. 방 한 칸만 내주라."라고 했다. 알겠다고 대답하면서도 절대 그러지 말자고 농담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5년 뒤, 결국엔 C와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거나 어느 날 문득 결혼까지 결심하게 만드는 남자를 만나 다른 방식으로 또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거나.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다만, 마흔이 되었을 때 그녀처럼 '지금 나는 불행한 것 같아'라는 말만은 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그렇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