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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dred Jul 24. 2019

연애하지 않는 여자

"니가 만약 그 남자랑 결혼을 했고, 내가 만약 그 남자랑 결혼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분명 회사는 못 다니게 됐을 테니 11월이면 김치 100포기씩 담그고, 1년에 제사 11번 지내느라 온몸이 기름에 절어있겠지. 근데 걔랑 살면 좋긴 좋았을 거 같아."


쓸데없는 대답이었다.


이십 대 후반 아니, 삼십 대 초반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친구와 나, 둘 중 하나는 적어도 그 당시 연애하고 있었고, 언젠가는 결혼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슬슬 부모님과 지인들의 압박이 들어오긴 했지만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지금처럼 주말에 뭐했냐거나 휴가는 언제 누구랑 가냐는 질문이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을 때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점점 생활 패턴이 달라지면서 대화의 주제도 바뀌자 이상하게 문제가 됐다.


멀쩡한데 왜 연애를 안 하나 싶어서 그런다는 말로, 너무 일만 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으로,  연애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무능력'으로 취급됐다. 의도가 있든 없든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그러자 덩달아 이상한 조급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 그런가? 뭔가 큰일 난 건가?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게 없는데, 지금껏 살아온 대로 살면 되는데 말이다.


지난 술자리에서 우리 대화의 주제는 노처녀 히스테리였다. 나이를 먹으면서 이전에 비해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는 줄어들었지만, 아주 사소하고 자잘한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는 늘었다고 했다. 남들이 보기엔 그야말로 '별 것 아닌 것'에 짜증을 내고 화를 내게 된다는 것이었는데, 딱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속으로 끙끙 앓으며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싶지만 정작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이것이 다른 이들에게 '노처녀 히스테리'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사람이 그렇고, 상황이 그래서 우리가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서른다섯 싱글 여성들의 고민이었다.


"우리가 너무 일만 해서 그래. 너무 거기에 집중하니까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더 상처 받고 그러는 거야. 시선을 돌릴 뭔가가 필요해."


그래서 나온 이야기가 '연애를 해야 한다'는 거였다. 굉장히 모순적인 결론이지만, 진심이었다. 연애가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인생의 절정도 아니고 결말도 아니지만 지금 우리에게 연애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있어서는 둘 다 동의했다.


10년쯤 지난 드라마 중에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었다고 했다. 말 나온 김에 궁금해서 홈페이지를 뒤졌더니 인물 소개가 재밌다. 오래 사귄 연인과 결혼까지 약속했다가 파혼을 한 뒤로 일에 미쳐 산 주인공. 일에 있어서는 꽤나 성공했지만 너무 몰두한 나머지 구안와사가 왔다고 했다. 이 대목이 어찌나 웃프던지.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드라마가 그렇듯, 주인공인 그녀 앞에 남자가 나타났는데 무려 10살 연하. 게다가 잘생긴, 인디밴드계의 천재 뮤지션이다. 지금 마지막 2화를 남겨두고 있는 '검블유'도 그렇다. 능력 좋은 여자들 앞에 나타난 근사한 연하남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우리가 '무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그 드라마처럼 10살 연하를 만나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래, 이게 리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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