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은 죄가 없다
저는 여태껏 굴을 자의로 먹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에 의해 강제로 먹어야 했던 굴은 식감도 식감이지만, 제게는 너무 비렸거든요. 지금에 와서야 고백하는 것이지만, 그즈음에 억지로 먹이신 굴들은 몰래 뱉어버리거나, 씹지 않고 통으로 삼키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성인이 된 지금도 저는 굴을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생굴을 초장에 찍어먹으며 감탄사를 연발하시는 분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기는 합니다만, 한국에서는 정말 많은 분들이 굴을 드시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한 해에 생산되는 굴의 양만 해도 2만 톤 가까이 되니 가히 엄청난 양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즐기는 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하나 있습니다. 구토와 설사, 탈수, 발열 등의 증상을 2주간 겪게 되는 괴로운 질병, 바로 ‘노로 바이러스 감염증’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는 것이지만, 굴을 생으로 먹는다고 항상 노로 바이러스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노로 바이러스는 비단 굴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경로로 사람에게 감염될 수가 있거든요. 오염된 지하수를 통해서도 감염이 될 수 있고, 그런 지하수를 통해 재배한 채소나 과일 때문에 감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굴이 노로 바이러스와 관련되어 주목을 받는 것일까요? 사실 무척이나 단순한 이유입니다. 노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의 분변이 굴이 자라는 연안 해역으로 스며들고, 오염된 바닷물에서 자란 굴들이 재차 사람에게 먹혀서 그 사람을 감염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빚이 빚을 부르는 채무의 악순환과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결법이 없냐는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굴을 먹을 때마다 혹시나 노로 바이러스에 감염될 걱정을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니까요. 이런 문제점에 대한 해결법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굴을 익혀서 먹는 것입니다. 생굴이 가지는 식감과 맛을 선호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굴을 먹고 탈이 나기 전에는 그 굴이 노로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습니다. 조금 맛이나 식감이 떨어지더라도 생으로 섭취하지 않고 익혀서 먹으면, 감염의 위험성이 확연히 감소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노로 바이러스를 가지지 않은 굴이 새로이 노로 바이러스를 갖지 않도록 격리 조치를 하는 것입니다. 노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의 분변도 적절한 하수 처리와 바이러스 제거 방법을 이용하면 해수를 오염시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익혀 먹는 것이지만, 애초에 노로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면 날 것으로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만족시킬 수가 있는 것이죠.
세 번째 방법은 굴을 아예 멸종시키거나 굴을 먹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굴을 먹는 것은 노로 바이러스의 위험성이 있으니 아예 금지를 하고, 굴을 먹는 사람을 부도덕한 행동을 했다며 비난하면 노로 바이러스 감염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물론 굴이 아니라 다른 경로로도 노로 바이러스 감염이 일어날 수 있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줄어들긴 할 겁니다.
세 번째 방법은 너무 극단적인 것 아니냐 구요? 이게 정확히 지금 반동성애 단체들이 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에이즈 감염위험을 이유로 동성애가 죄악이며 이를 박멸해야 된다는 말들을 거리낌 없이 내뱉고 있으니까요.
당연히 에이즈와 노로 바이러스가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앞서 설명드린 굴을 생으로 섭취하는 행위와 에이즈 감염이 발생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구조입니다. 모든 동성 간 성 접촉이 HIV 감염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동성 간의 성 접촉으로만 HIV 감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굴이 오염된 해수에 의해 노로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높듯, 동성애와 에이즈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감염된 사람에 의해 계속 감염이 일어나는 것일 뿐인 거죠.
심지어 해결법마저도 동일합니다. 앞의 내용을 복기를 해봅시다. 굴을 생으로 먹지 않으면 노로 바이러스 감염이 확연히 줄어들듯이, 콘돔을 착용한 성관계는 HIV 보균자라고 하더라도 감염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감염되지 않은 굴을 보호하는 방법과 동일하게, 에이즈 역시도 예방약을 사용하면 새로운 감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최근 개발된 에이즈 예방약 트루바다(Truvada)는 WHO에 의해 에이즈 예방약으로 공인을 받았으며, 한국 식약처에서도 최근에 국내 시판을 허가한 바 있습니다. 신약이다 보니 가격이 만만찮은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요.
국가 보건정책에 있어서 감염병 관리는 무척이나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래서 한국 질병관리본부는 물론이고, 보건복지부에서도 에이즈 확산 방지를 위해 무척이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보건소에서 진행하는 무료 익명검진은 물론이고, 그 외의 다양한 정책들도 시행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런 노력들은 기본적으로 감염 위험성이 높은 집단이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신뢰를 갖고 그 지시를 따라주어야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겁니다. 특정 질병을 앓는 것이 ‘종교적 죄악’의 대가라는 발언이 거리낌 없이 분출되는 상황에서 예방 정책에 협조해달라는 말이 순수하게 받아들여지기는 힘들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굴을 멸종시키거나, 굴을 먹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 양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 답답할 노릇입니다. 이런 적대적인 태도는 당사자들의 감염관리 정책에 대한 순응도를 낮추는 것은 물론, 이들을 더더욱 사회에서 고립시켜 감염 위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내몰기까지 합니다. 정말로 한국에서 에이즈를 몰아내고 싶다면, 윤리적 차원의 비난이 아니라 정책적 차원에서의 지원을 도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