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가 길었다. 길고도 긴 연휴기간 동안 우리 가족은 많은 곳을 다녀왔다. 합천, 영천, 고령, 고성 등등. 부산의 방문장소까지 포함하면 더 많다. 일주일이 넘도록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아직은 엄마 아빠를 찾고 같이 노는 걸 좋아하는 5살 2살 아이들. 중간중간, 일을 하러 가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유치원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우리에게 휴식시간을 주는 곳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보단 아내가 더 힘들었다. 남자 셋에 고양이 토리까지, 아내는 수컷을 넷이나 키운다. 토리와 나는 분명 다 컸지만 여전히 손이 가는 존재다. 아내의 도움이 없다면 지금보다 더 초췌하게 살았을 터다. 다년간의 자취를 하는 동안, 나는 최소한으로 사는 미니멀 리스트였다. 생존을 위해 먹고 자고 할 뿐이었다. 지금처럼 가정을 꾸리고 집안을 채우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공간으로 자취방을 사용하다 보니 사람이 사는 흔적만 있는 공간일 뿐이었다. 혼자 살았을 때엔 절대 사지 않았을 물건들이 집안 곳곳에 자신의 쓰임새를 자랑하고 있다. 녀석들은 역할분담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더랬다. 인생 네 컷 사진 앨범 같은 것들은 살면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침대, 핸드폰, 일용할 양식 정도? 만 있다면 불편하지 않았다. 사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온 것이다. 1인 가정은 가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가족과 함께 살면서 혼자 살아왔던 지난날은 상상하기 어렵다. 겨울에 퇴근하면 영상 8도인 안방온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깥보다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한기를 더 느꼈다. 난방은 하지 않았다. 나 혼자만 겪고 넘기면 되기에, 전기장판이면 충분히 참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아이들과 아내가 있다. 둘째 지우는 누구보다 더위를 많이 타고 고양이 토리는 우리 보다 추위를 많이 탄다. 이래나 저래나 에어컨을 켜고 보일러를 켜야 한다. 덕분에, 퇴근을 해서 집에 들어갈 때엔 시원한 온도와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이 나를 반기며 문 앞으로 온다. 요리를 하고 있는 아내는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넨다. 혼자 잠만 자던 내 투룸 주택은 아파트로 변했다. 위치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가족이 생겼다는 점이 모든 것을 바꾼 것이다. 나를 인간답고 따뜻한 사람이게끔 만든 것이 가족이다.
p.s - 지금도 내가 필요로 한 공간은 크지 않다. 책을 읽을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고 몸을 뉘일 수 있으면 족하다. 가족이 복작복작 살아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경험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