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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나고 나서 민망하니 잘한다고 하는 거 다 알거든

detachable snare

by 돌돌이

시술을 하는 건 재밌다. 어시스트를 하면서 시술을 돕는데 스콥을 잡고 고정하기도 하고 나름의 의견을 내기도 한다. 시술방에서도 시술은 하지만 다른 방에서도 시술을 하는 건 마찬가지다. 같이 시술을 하면서 다른 선생님이 하는 방법도 보고 습관들도 보게 된다. 요즘은 6년 차 간호사이자 내시경실에 온 지 4년 차인 선생님과 함께 시술을 하고 있다.


여전히 시술을 할 때면 진지하고 예민하게 하지만, 상대의 실수를 크게 들춰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타임버튼을 눌러 시간을 체크하거나 ERBE 모드가 바뀌지 않았을 때에도 몰래 눈짓과 손짓으로 메인 간호사에게 알린다. 굳이 교수님의 귀에 들어가서 시술에 방해되는 것도 싫고 누군가의 실수를 크게 이야기해서 들추는 것 같아서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시술에 방해되지 않거나 피해가 가지 않으면 넘기는 게 미덕(?) 아닐까?


오늘도 시술을 하는데 detachable snare를 사용해야 하는 케이스가 있었다. 사용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많은 신규선생님이나 내시경실 선생님들이 불편해(?) 하는 액세서리이다. 나는 이럴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선생님. 이거 덕분에 얼마나 편하게 시술합니까? 피 철철 나는 IP type polyp을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게 만들어 주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커다란 폴립을 링안에 넣을 때 그 즐거움을 느껴봐야 하는데…]


내 말을 듣고는 있는지, 긴장을 하며 시술을 하는 간호사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다. 결론은 시술은 잘 되었고 출혈도 없었다. 시술이 끝나고 메인 간호사 선생님이 detachable snare를 잘했다고 스케줄 담당선생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그 선생님이 한 마디 한다.


[내가 아까 니 뒤에서 봤는데 폴립 안 들어갈까 봐 전전긍긍하던데? 잘 안되니까 네가 하려고 막 계속 손 슬금슬금 앞으로 가더만. 그렇게 걱정하고 신경 쓰다가 다 끝나고 나서 민망하니 잘한다고 하는 거 다 알거든.]


민망했다. 시술에 집중하느라 뒤에 선생님이 있는 줄도 몰랐다. 나름 긴장을 풀어주려고 안되면 나랑 손을 바꿔도 된다며 북돋아 주었지만, 남들이 보기엔 내 표정이 굳어 있는 게 보였나 보다. 난 그 선생님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내가 했던 detachable snare 실수담을 이야기해 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대범하게(?) 이야기한 줄 알았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렇지 않았다. 스네어가 잘못 걸리거나 절반만 물리게 되면 출혈도 많이 생기고 시술도 복잡해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지고 티가 났었나 보다.


p.s - 오늘 하루 큰 일 없이 하루를 보낸 것에 감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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