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최고의 상황도 생각한다
시술을 할 때나 내시경을 할 때면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다. 그래서 가장 짧은 동선에 중요한 액세서리를 가져다 놓는다. 간단한 시술을 하는데도 이러한 준비는 동일하다. 나의 N성향으로 그렇다고 이야기하면 직장 동료들은 다르게 이야기한다.
[N성향과 상관없어요. 그냥 일을 잘하는 거 아니에요?]
췌장에 꽂혀 있는 플라스틱 스텐트를 제거하는 간단한 시술이었다. 나는 출혈에 대비해서 balloon부터 Epi와 clip까지 준비해 놓으라고 말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이런 내 스타일을 알기 때문에 매번 미리 준비해 둔다.
[저번에도 papillectomy 하고 bleeding이 없던 환자도 퇴원 전날에 출혈이 있는 걸 알았잖아. 그때 epi 없었으면 큰일 났을 거야.]
물론 ercp room을 나가서 필요한 물품을 가져올 수 있지만, 내시경이 접근하는 순간을 놓치고 출혈을 일으키면 시야를 가리게 되어 의미가 없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빨리 액세서리를 준비해야 한다. 어물쩍 거리는 사이에 환자도 불안정해지고 협조가 되지 않는 상황에 이른다. 가능한 한 빨리 출혈을 잡는 것이 좋다.
시술을 하고 검사를 하면 별일 없이 평범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것은 내 성향에 기인하기 때문에 내가 맘 편히 일하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 하는 것이다. 내시경 간호사로 일하면서 이러한 성향 덕에 시술이나 출혈을 일찍 마무리한 적이 꽤 된다. 매 순간 최악을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검사 전에는 가능한 범위의 상황을 예상하며 일하는 것이 좋다. 물론 최고의 상황도 생각한다.
[오늘 시술 개수를 보니, 3시 20분에 끝내고 반반휴 가면 딱이겠네.]
[선생님, 근데 보내주는 건 컨펌된 건가요?]
[아니. 언제나 최고의 상황을 생각해야지.]
운 좋게도 반반휴를 받아서 이렇게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