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나에게 영원한 형님으로 남아 주기를
나는 노래를 즐겨 듣고 부르는 사람이다. 협소한 취향이라고 스스로를 되뇌지만, 음악의 취향은 개인의 정치색 보다도 확고하다. 학창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플레이리스트는 그 시대의 유행과 함께 한 사람의 감수성을 형성한다. 내 귀를 채웠던 가수들이 많았고 노래도 많이 불렀지만, 당시의 나로 돌려보내는 가수는 흔치 않다.
임창정은 수많은 히트곡을 가진 슈퍼스타였다. 연기를 병행하고 예능도 나오지만 노래도 잘하는 만능엔터테이너는 없었다. 이 단어의 시작은 임창정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임창정 메들리로 노래방의 처음과 끝을 채운적이 있다. 노래방에서 나오는 그의 뮤비를 보면서 울고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소주 한잔과 슬픈 혼잣말의 뮤비는 볼 때마다 가슴을 아린다. 친구가 임창정의 노래를 부를 때면 우리 모두는 조용해진다. 노래를 잘해서나 못해서가 아니라 다들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는 것이다. 소주 한잔 뮤직비디오는 비공식으론 1억 뷰는 될 거다.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를 부를 때마다 봤으니까. 짜임새 있는 뮤직비디오도 좋았고 그가 직접 한 연기는 더 좋았다.
소주 한잔의 깡패 역할과 슬픈 혼잣말의 양아치 연기는 다른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다. 양스러움 속엔 강해 보이려는 허세스러운 임창정의 연기가 실제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우리는 생활연기라고 말하곤 했다. 메소드를 뛰어넘는 건 생활연기뿐이다. 양아치가 일상이고 생활인 사람. 그의 연기엔 그 특유의 슬픈 눈빛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과감 없이 보여주었기에 남자들이 좋아했겠지.
[오늘 창정이 행님으로 함 달리 보자.]
임재범도, 이승환도, 다른 어떠한 가수도 우리는 형의 호칭을 붙이진 않았다. 유일하게 임창정만이 행님의 호칭을 가질 수 있었다. 그가 보여준 연기와 노래하는 모습에서 내적친밀감을 가졌던 걸까? 동네 어딘가엔 있을 법한 양스러운 그런 형. 우리는 임창정이 좋았고 노래방에선 그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이 글을 쓰기 전부터 임창정의 노래를 듣고 있다. 그가 다시 우리 앞에서 숨 넘어갈 듯한 라이브를 보여주기를. 마이크를 배까지 내려가며 엄청난 성량으로 우리에게 놀라움을 주기를. 철없는 나에게 영원한 형님으로 남아 주기를.
소주 한 잔
술이 한 잔 생각나는 밤 같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좋았던 시절들 이젠 모두
한숨만 되네요
떠나는 그대 얼굴이 혹시
울지나 않을까
나 먼저 돌아섰죠 그때부터
그리워요
사람이 변하는 걸요 다시
전보다 그댈 원해요
이렇게 취할때면 꺼져버린
전화를 붙잡고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여보세요 왜 말 안하니
울고 있니 내가 오랜만이라서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그대 소중한 마음 밀쳐낸
이기적인 그때의 나에게
그대를 다시 불러오라고
미친듯이 외쳤어
떠나는 그대 얼굴이 마치
처음과 같아서
나 눈물이 났어요 그때부터
그리워요
사람이 변하는 걸요 다시
전보다 그댈 원해요
이렇게 취할때면 바뀌어버린
전화번홀 누르고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오랜만이야 내 사랑아
그대를 다시 불러오라고
미친듯이 울었어 우
여보세요 나야 정말 미안해
이기적인 그때의 나에게
그대를 다시 불러오라고
미친듯이 외쳤어
p.s - 그래. 시발 노래는 이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