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by 돌돌이

이전에 방송했었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강형욱의 '보듬TV'를 즐겨 보고 있다. 강아지를 기른 적이 없지만 아파트 단지 내에 수많은 애견인들과 주인을 향하는 강아지들의 눈빛을 보니 강아지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진 것이다. 예전에 자취를 했을 때 고양이를 기른 적이 있었고, 본가로 다시 들어오면서 어머님께서 고양이 알레르기를 보이셔서 분양받았던 옛 주인에게 다시 보낸 적이 있다. 슬픔도 슬픔이지만, 고양이를 책임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컸다. 고양이를 보내면서 책임을 질 수 없으면 선택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1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있었는데 다시 보낼 때의 미안함과 슬픔은 지금도 종종 떠오른다. 길에서 종종 고양이들을 보는데, 털 상태가 좋고 그루밍이 잘되어 있는 고양이를 볼 때가 있다. 집에서 탈출을 했는지, 주인이 유기를 했는지 알 순 없지만 녀석들이 야생의 길고양이와 악의를 가진 사람들의 위협을 이겨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반려동물은 어린아이와 같다.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이라는 점이 사람과 다르다. 엄마가 없어진 아이가 우는 것처럼 반려동물도 어린아이처럼 분리불안을 느낀다. 출근을 하면 9시간 이상을 밖에 있다가 오게 된다. 그동안 혼자 있는 반려동물이 느낄 외로움과 불안감은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퇴근 후에 반기는 녀석들을 보면 얼마나 많이 기다렸을지 짐작할 수 있다. 수리라는 고양이를 기를 때, 퇴근 후에 문 앞에서 기다리던 녀석을 매번 봤었다. 고양이가 외로움을 덜 느끼고 혼자서 잘 지낼 수 있다곤 하지만, 녀석이 나를 기다리고 반기는 모습은 기특하기도 했지만 마음이 아팠다. 물론 내가 화장실을 치우고 나서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에서 응가를 할 때면 조금은 얄밉기도 했지만 하악질 한 번을 한 적이 없던 수리가 보고 싶을 때가 많다. 집에서 혼자 심심하게 기다렸을 수리의 외로웠을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다. 고양이가 이러한데 강아지는 더 심하다. 분리불안을 쉽게 느끼는 강아지를 혼자 두고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이 망설여진다.


우리 직장동료는 강아지 카메라를 설치해서 혼자 있는 강아지의 외로움을 걱정하며 지켜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이크를 켜서 부르면 주인의 목소리를 향해 10분 넘게 짖는다고 하니 녀석에게 좋은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강아지가 짖으면서 옆집에서 민원이 들어와서 마이크 사용은 자제하고 카메라로 녀석의 행동만 관찰하고 있다. 친구라도 만들어 주려고 다른 강아지들을 알아봤지만 질투심 많은 녀석이 쉽사리 그 자리를 허락할지도 의문이란다. 반려동물이 주는 큰 기쁨과 행복은 주인이 감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누릴 수 있다. 매일 산책을 해주고 털들이 휘날리는 환경을 받아들일 수 있고 매일 한 시간 이상은 따로 놀아줄 수 있어야 한다. 사료, 간식, 병원비 등 반려동물에게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산다고 해서, 입양한다고 해서 그 즐거움이 지속되고 마냥 행복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아플 수도 있고, 나보다 더 빨리 나이 들어 늙어가는 반려동물을 동일한 애정으로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마냥 귀여울 것 같던 녀석들이 내 생각과는 다른 행동을 보여 줄 수도 있다. 그런 모든 불편과 힘듦을 감수할 수 있다면 반려동물을 길러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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