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퇴원
병문안을 가지 않은 휴일날,
두달만에 심리 상담을 받으러갔다.
‘이제 공황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데 안 가도 되지 않을까..?‘싶었지만 내 마음 저 밑에 깔려있는 상처를 다 꺼내 치료해야할 것 같았다.
오랜만에 상담 선생님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간 있었던 일을 도화지에 적고 있는데
상담 선생님께서
“윤슬씨 청첩장은 언제 줄거예요?”라고 물어보셨다.
“상담하면서 말씀드릴게요.. 할말이 많아요 하하”
긍정 감정과 부정 감정 카드를 골라냈다.
10회가 넘는 상담을 받았지만 이렇게 많이 고른 건 처음이었다.
내가 감정 카드를 나열하는 것을 보시더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두달간 이런 많은 감정을 갖고 살아간다고 많이 힘들었겠네.."
그러네.. 나를 달래기보다 그에게 집중했던 순간들.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고 일하느라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다.
두달간 있었던 이야기를 쏟아내면서
밤 늦게까지 게임하는 그를 보며 속에 천불이 났다고 했다.
선생님은 "회피죠. 아마도 남자친구분께서는 게임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랬던걸거예요. 가만히 있으면 안 좋은 생각이 자꾸 날테니까요." 라고 하셨다.
아... 그는 많이 불안했구나. 그런 그에게 왜 일찍 잠에 들지 않냐고 추궁을 했던걸까.
"아.. 저도 유튜브를 하염없이 보게 되던데.. 그런 제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저도 회피한걸까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맞다.
암 전이가 많이 되었을까봐 많이 불안했었다.
그 때 그의 손을 잡아주며
'잘 될거야'라는 용기와 힘을 줘야했구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같이 손을 붙잡고 힘을 내면 좋았을텐데 불안감을 달래려 서로 다른 방법을 쓰고 있던 것이었다.
그는 수술 범위가 예상보다 넓어서 입원 기간이 좀 더 길어질 것 같다고했는데
그는 젊어서인지 회복이 눈에 띄게 빨랐다.
첫날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스스로 눕는 것도 힘들어했는데 그 다음날부터 목소리가 조금 나오고 걸을 수도 있었다.
목요일에 입원했었는데 차주 토요일에 퇴원날짜가 잡혔다.
비가 많이 오던 날.
그는 퇴원 수속을 밟았고 그는 몸과 마음이 많이 가벼워보였다.
그와 시아버지 셋이서 삼계탕을 먹고나서
카페로 자리를 옮겨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번 아이스 바닐라라떼만 시키던 그는 바나나 주스를 주문했다.
이젠 사소한 일상들이 조금씩 바뀌어야했다.
카페인은 줄이고 유제품도 피해야했다.
그는 생활하기에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 당분간 고향에서 지내기로 했다.
일을 하고 있는 나는 그를 온전히 케어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회복할 때까지 잠시 떨어져있게 되었다.
그와 작별인사를 하고 버스를 탔다.
버스 뒷좌석에 앉으니 학창시절에 느꼈던 홀가분함이 오랜만에 들었다.
수많은 근심걱정이 들었던 시간들이 무색할만큼
그가 퇴원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아프고 힘든 시간도
이렇게 다 지나가는구나
수술받고, 치료하고, 관리 잘하면 되는 것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좌절할 필요가 없었는데
눈물로 보냈던 날들이 벌써 아득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그저 시간이 흘러 낫는다는 것이 아니라
힘든 시간을 견뎌냈기에 한 단계 성장했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힘든 시간 속에서 세상을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을 통해 아픔을 견딜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어떤 순간도 헛되지 않고,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