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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로운 윤슬 Jun 24. 2024

예비 신랑의 갑상선 암 수술이 끝났다

당연한 것은 없었음을

수술날 아침,

그가 생각보다 일찍 수술에 들어간다는 카톡이 와서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벌써 수술실로 들어갔나보다.


그가 없어 허전한 집을 보는데

그와 좀 더 웃으며 지낼걸 후회가 밀려왔다.



일부러 수업을 비워둔 날인데 갑작스럽게 보강 수업이 잡혀서 병원에 가지 못 했다.

수업 시간까지 기다리면서 브런치스토리에 써둔 글을 읽었다.


그의 암을 발견한 날에 슬픔과 두려움, 불안, 걱정을 떨쳐내고 싶어 썼던 글이었다.

글로 감정을 풀어낸 덕에,

그리고 그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 덕분에 마음의 짐을 많이 덜 수 있었던 것 같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그에게 보낸 카톡에 1이 아직 사라지지 않아서 전화해보니 폰이 꺼져있었다.

예비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받지 않으셨다.


수술이 잘 되었나, 별 일 없어야할텐데..

30분정도 흘렀을까, 시어머니께 전화가 와서 수술 잘 끝났다고 하셨다.

거진 7시간의 수술이었다.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 선생님도 참 고생하셨구나.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멋지단 생각이 들었다.




수술 다음날 그를 보러갔다.

반가웠다.

그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 왼쪽에서부터 오른쪽까지 꿰맨 흔적이 보였다.

내가 맹장 수술했던 자국이 10년이 지나서도 희미하게 남아있는데

그의 수술 흔적도 평생을 가지고 가야되는구나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시아버지와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됐지.."

시아버지께서는 말 끝을 흐리셨다.


나는 그가 나 때문에 아픈 것 같았는데

시아버지도 스스로를 탓하고 계셨다.


당사자가 건강 관리, 스트레스 관리하지 못한 탓이 가장 클텐데 주변 사람들이 자책을 하고 있는 상황에 마음이 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울적해서 노래를 틀었다.

그와 함께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그와 자주 가던 마트가 보였다.


그와 함께했던 소소한 일상이 사무치게 그리워서

눈물이 왈칵 흘렀다.


그와 마트 가던 일이 그렇게 그립다니...

그게 행복인 줄도 몰랐는데,

평범한 일상이 내겐 선물이었구나.

선물인줄도 모르고 살았네.



업무적으로도 힘든 일이 생기고,

갑작스러운 예비 신랑의 암 수술로인해 결혼식도 취소하고,

그의 뒤를 보살피며 하루하루를 버티듯 지낸지 벌써 두달이 훌쩍 넘었다.

여태 살면서 가장 힘든 순간을 보내면서 느낀 것은


나는 이미 참 많은 것을 누리고 살고 있었는데,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바라며 신세한탄을 한 것에 대해 반성했다.



당연한 건 없었는데..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이 있고,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줄 가족과 몇몇의 친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삶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20, 30대의 특징을 보면

목표치가 상당히 높고 자기 검열을 참 많이 한다.

과도하게.


나 또한 성공하고싶어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이를 악물고 버텨왔다.


베이비 부머 세대의 자녀라 그런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은 누가 정한 것일까.

사람마다 가진 특색은 무시하고

우리는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내용을 배우며 살아오고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갔다.


기성 세대들은 자녀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아이들의 시행착오를 두고 볼 수 없어서 칭찬 하나해주지 않고 간섭을 과하게 했다.


아이들이 가지 않아야할 길만 막아주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기다리며 지켜봐주면 될 것을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가야 할 길을 부모가 만들고 뒤에서 등떠밀며 살아온 세대였다.

그 것 때문일까.

무력감에 우울, 공황, 불안으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이 참 많다.



문득 우울증으로 세상을 등진 친구가 떠올랐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졌다며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친구였는데..


나 이제 그 동네에 살고 있는데

조금만 더 있지 그랬어..

서로 힘든 거 얘기 나누며

훌훌 털어냈다면

힘든 세상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었을텐데…


결혼식 때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싶다던 친구는,

가장 예쁜 나이에 장례식장에서 사진으로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친구가 바래다주던 길을 지나가며

대답도 없을 친구에게 괜히 말을 걸어본다.



사는 게 왜 이리 고달픈거냐..

거긴 좀 살만 하냐,


별 것 없다고,

내 몫까지 열심히 살다오라고

친구가 말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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