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임에는 책임이 있다
요즘은 여자 만날 생각이 없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자 만나는 게 두렵습니다.
혈기 왕성한 20대 후반의 남자에게서 들을 얘기인가. 몇 년 전이라면 그 남자가 독특한 사연이 있나보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꽤 다른 루트, 다른 사람에게서 이런 얘기를 듣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더이상 이것은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사회 한 흐름이다.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허락된 유일한 마약, 사랑. 왜 그들은 그것이 공포가 되었을까.
한 커플이 찾아왔다. 100일이 채 안된 사랑스러운 커플이었다. 서로 궁합도 좋은 편이었다. 한쪽이 음이라면, 다른 쪽은 양이었다. 딱 한가지 걱정되는 점만 빼면 환상의 커플로 보였다. 그런데 얼마 전, 남자 고객이 따로 찾아와서 하는 말은 과히 충격이었다. 그 뒤 얼마 안가서 헤어졌고 남자는 그 뒤로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여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다 했다. 들어보니 내가 걱정했던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커플이 뽑은 컬러팔레트는 이렇다.
딱 보기에도 여자 A는 난색, 남자 B는 한색을 선호한다. 누가봐도 여자는 양, 남자는 음의 컬러를 선호함이 보인다. 여자. A와 남자 B는 이상형의 컬러를 고르면서 서로를 생각했다 말했다. 한마디로 서로가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믿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 하나. 여자 A의 선호색이 이상형이랑 컬러가 똑같다. 그것이 문제가 되냐고요? 네. 문제가 됩니다.
대부분 선호색은 나를 대변하는 색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호색과 나를 상징하는 색이 일치한다. 그래서 상담받는 사람의 정신건강을 가장 파악하기 쉬운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자기파괴적 생각을 갖는 사람들은 선호색과 자기 자신을 상징하는 색이 일치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다른 질문과도 비교해야겠지만 대체로는 그렇다. 여자 A는 좋아하는 색이 이상형의 색과 같은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상형과 선호색이 같다는 것은 내가 이상형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이다. 타인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건다면 반드시 실망할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상형은 신이 아니다. 성적취향을 같이한 친구일 뿐인데 거기에 내가 갖고 싶어하는 것을 투영하는 것은 안 좋은 결과를 낳는다.
남자 B는 여자의 집착적 성격에 놀라게 되었다고 한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보이는 병적인 집착, 과도한 기대 등으로 어느 순간부터 여자친구인 A가 무서워졌다고.
천사같은 외모에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을 줄 몰랐어요.
그렇다. 두 커플은 별로 서로를 알아볼 시간 없이 외모를 보고 사귀었다. 남자 B의 이상형 컬러를 보면 알겠지만 비슷한 컬러인 핑크가 반복된다. 여자 A의 외모를 보고 고른 컬러였다. 여성스러움이 가득하고 조신해보이는 인상은 애정결핍이 가득한 여자로 보여지기 어렵다. 남자 B는 사회적 스킬이 만랩인 약간은 차가운 타입이었다. 꼬실 때야 다정했겠으나, 사귀면서 점점 본성대로 흘러갔을 것이다. 게다가 사귄 기간이 짧으니 남자 B는 보듬어주기보단 도망가는 것으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여자 A 도 할말이 있다. 분명 사귀기 전에는 세상 다정한 남자였을 것이다. 내 이상형처럼 듬직하고 때로는 다정하고 믿을 수 있는 남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짧은 기간 안에 사람을 어찌 파악할 수 있을까.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도 있는데 말이다.
이 커플과 같은 사연은 의외로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짧은 연애를 반복하는 남녀에게 종종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여자의 외모만 보고 사귄 남자, 애정결핍이 있는 여자. 여자의 외모만 보다보니 성격을 모르고 사귀었다 집착, 애정결핍 등으로 놀라 싸우다 헤어지는 스토리. 애정결핍이 있다보니 아직 서로 잘 모르는 시기에 남자친구한테 무리한 요구와 기대로 싸우다 헤어지는 스토리. 다른 얘기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같은 사연, 같은 이야기다.
불편한 진실을 말하자면 외모와 연애는 상관관계가 적다. 외모가 예쁘다면 연애도 자연스럽게 프리패스 될 것이라는 망상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이 많다. 이건 남자들이 좋은 직장을 가지면 예쁜 여자와 연애하게 될 것이라는 망상과 같은 급이다. 여자들이 외모 가꾸기에는 신경쓰면서 자신의 정신건강을 가꾸는 데에는 소홀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 내 경험상 외모지수와 연애 행복지수는 비례하지 않았다. 우리 연애는 프로듀스 101처럼 더 많은 표를 얻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지 않나. 남자들에게는 딱히 해줄 말이 없다. 장미는 가시가 있고, 길들인 장미에는 책임을 가져야한다는 말밖에는.
네이버 연애결혼 연애학개론에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