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lorsense Nov 14. 2019

소박하고 우월한 매력, 바르샤바

폴란드, 바르샤바 3일 여행

사실은 4일간의 여행

총 여행기간은 3일이지만 사실 4일을 바르샤바에 머물렀다. 바르샤바는 외항사 승무원 인터뷰를 보기 위해서 짧은 기간에 날아갔던 여행지였다. 거기에서 나의 가능성을 찾았나? 나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을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unsplash

아침부터 단장하고 가서 대기장에 착석했다. 인터뷰 대기 3시간, 워크인 인터뷰 30초, 결과를 기다리던 약 4시간... 그렇게 성과를 내지 못한 아쉬운 바르샤바의 하루가 지나갔다. 누군가에게 거부당하는 기분, 인생에서 많이 겪지 않아도 될 기분 나쁜 일 중의 하나. 게다가 스스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만든 기회가 물거품 되는 상황은 더 처참하다. 원래 내 시나리오는 각 단계를 통과해 거의 3일 내내 면접을 보는 거였는데 말이다.

충격을 애써 표현치 않고 칼바람을 뚫고 호스텔로 가는 길이 정말 고되었다. '그놈의 인터뷰 초대장 한 장 받으려고 여기까지...' 요즘 20대들의 취업난을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영역은 이미지(외모, 태도)와 경력 그리고 면접관 운과 싸우는 성사 확률이 낮은 게임과 같다. 수십 번을 면접을 봐도 떨어지는 사람이 있고 도전 한 번에 파이널 인터뷰까지 가는 사람이 있다. 괜히 면접관 운을 운운하는 게 아니다.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이직 또는 경력 변경은 나에게도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 온 김에 여행이나 하고 가자.'라는 생각으로 샤워를 하고 나서 이불속에 쏙 들어가 내일은 어디 갈까 궁리하다가 잠을 청하였다.


 



겨울에는 여행하는 게 아닌데
Warsaw, Poland, 2016

나는 겨울이 되면 손발이 꽁꽁 얼어붙고 코와 귀는 내 몸이 아닌냥 빨갛고 차갑게 식는다. 그래서 겨울 스포츠를 즐기러 스키장에 간다거나 겨울날 캠핑 따위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당연히 겨울 날씨에 최약체인 내가 겨울에 관광을 하는 건 무리였다. 게다가 바르샤바가 여행 지니 한결 더 하드코어적인 여행이 되었다. 


Warsaw old town, Poland, 2016

나뿐만 아니라 온 도시가 꽁꽁 얼어붙은 이곳은 걷지 않으면 여행이 어려울 정도로 버스나 택시가 그렇게 서울처럼 흔하지 않다. 결국에 계속 걷다 보면 30분 이상 견디기가 어려워 어딘가에는 들어가서 추위를 피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 도시가 쇼팽으로 그렇게 유명하다 해도 역시 여러 곳을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한여름에 인형탈 쓰는 알바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안쓰러웠는데, 이곳에서 마주한 판다를 보니 부러울 지경이니 말이다.

이래서 겨울은 부지런한 여행자도 소극적이게 만드는 겨울 레저를 즐기려는 목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여행의 최악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겨울이어서 놓치게 된 가고 싶었던 광장 주변의 마켓이라던가 몇몇 명소들을 떠올리니 가슴이 더 시려온다.






모델 뺨치는 우월한 유전자들
Warsaw, Poland, 2016

도착한 첫날, 짐을 풀고 4시가 좀 넘은 시간이라 잠시 주변을 둘러보러 나갔었다. 널찍널찍한 공간이 서울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여유 있고 운치가 있지만 삭막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 사람들 몇몇이 지나다녔는데 내 앞을 지나가던 한 커플. 남자는 키가 거의 190cm 정도, 여자는 170cm은 되어 보였다. 게다가 어쩜 그리 간소하지만 멋스럽게 꾸몄는지 모델인 줄 알았다. (안 꾸민 건데 멋있어 보이는 착시효과일 수도 있다.) 근데 저 정도가 일반 사람들 케이스다.

밥을 사 먹으려고 쇼핑몰에 갔을 때에도 쇼핑몰 안의 사람들을 보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훈남, 훈남, 훈녀, 훈녀였다. 여기는 반 이상이 다 외모적으로 우월했다. 마치 우크라이나에 가면 김태희가 밭매고 있다고 하는 그런 우스갯소리가 여기 이 나라에 적용되는 말 같았다. 예전에 싱가포르를 잠깐 다녀왔을 때는 내가 거인처럼 느껴졌는데 이 상황의 반사효과로 여기 바르샤바에 있으니 정말 아담한 사람이었다. 





친절한 가격, 그러나 따뜻한 한 그릇
Cafe Vincent in Warsaw, 2016

인터뷰에서 낙방한 다음날, 시차적 응이 안돼 이른 아침 7시에 눈여겨본 카페로 들어가 이곳 물가 대비 조금 더 가격이 있는 카페라테 큰 사이즈를 주문했다. 그래 봤자 스타벅스 라테 한잔 값(15 zł-4,233원)과 거의 같았지만, 아침시간에 오픈하느라 분주해서 조금 커피를 늦게 가져다줬다며 나에게 갓 구운 크로와상까지 서비스로 내어주니 훨씬 더 저렴하게 커피를 마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물론 둘 다 맛도 정말 훌륭했다. 라테는 탄 커피맛이 느껴지지 않는 부드러움이 있었고, 그 당시 관리하느라 밀가루 음식은 잘 안 먹으려 했지만 바사삭 낙엽소리가 나는 버터향 가득한 크로와상을 마다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의 친절함을 무시할 수는 없기에 그 핑계로 싹 해치웠다. 


Zapiecek in Warsaw, 2016

코르제니아미(Grzane Wino Z Korzeniami) :뱅쇼, 따뜻한 와인 10.99 zł(3,103원)

플리츠키(Placki wiemniaczane) : 폴란드식 굴라씨와 감자튀김, 30.99 zł(8,750원)

피에로기(Pierogi) 9개 : 폴란드식 만두, 24.59 zł(6,942원)

골론카(Golonka)500g : 폴란드식 족발,  45 zł(12,704원)


폴란드까지 날아와서 전통음식을 안 먹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면접 때 만난 친구들과 올드타운에 몇 군데 있는 자피에첵이라는 레스토랑에 갔다. 레스토랑 분위기도 좋았고 식기도 폴란드 느낌이 물씬 났다. 가격은 우리나라 식사 한 끼와 비슷한데 양이 정말 많아서 3명이서 먹는데 다 못 먹고 나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만든 듯 맛 또한 좋았다. 정말 추운 몸을 녹여주는 따뜻하고 알찼던 식사였다.



Warsaw, Poland, 2016

통곡물 햄 채소 샌드위치 4.5 zł(1,278원)

100% 오렌지 착즙주스 9 zł(2,555원)


마지막 날 먹었던 아침식사. 이 가격이 실화인가 싶었다. 퀄리티 높은 건강한 빵과 간단하지만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진 샌드위치와 정말 100% 착즙 한 오렌지주스. 참 단순하지만 이유겠지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계속 호감이었던 이 도시에서 마지막 날의 아침식사로 완벽하게 나는 폴란드에 빠졌던 것 같다. 음식을 보면 그 나라의 문화와 정서를 느낄 수 있는데 그게 내 코드와 맞았다.

물론 슈퍼마켓에 가서 샐러드도 사서 먹어보고 쇼핑몰에서도 저녁도 사 먹어보기도 했는데, 모든 음식이 다 고퀄리티였다고 하기 어렵지만 흔히 말하는 가성비라는 단어는 폴란드 음식에서는 쓰면 안 될 것 같다. 적어도 개인이 운영하는 그런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음식들을 맛보며 주인들의 정직함과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자취를 했었더라면
Warsaw, Poland, 2016

누군가의 블로그 후기에서 폴란드는 예쁜 식기로 유명하다고 언급한 것을 본 적이 있어서 그릇을 혹시 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쇼핑할만한 곳도 미리 찾아놨었다. 근데 막상 폴란드에 도착하니 그릇 집도 많지 않았고, 그릇 상점을 우연히 찾아보게 된 그릇을 보아도 '이걸 내가 지금 사서 뭘 하나?' 싶었다. 


Warsaw Chopin Airport, 2016

그때는 싱글이었고 부모님 보살핌 아래 살던 터라 언제 독립해서 내 주방을 갖을지 알 수가 없었기에 뭔갈 사서 쟁여두는 거에 대한 큰 의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공항에서 기념으로 한화 8,750원 커피잔 세트 하나를 샀다. 그리고 그걸 보관만 하고 있다가 산지 3년째인 올해 들어서야 몇 번 사용하였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작은 그릇 하나라도 사 올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안 산 거에 대해서 칭찬한다. 내가 이럴 줄은 몰랐지만 미니멀리스트는 못되어도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아름다웠다
Warsaw, Poland, 2016

폴란드의 역사적인 배경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바르샤바는 참 조용하고 겸손한 느낌의 도시 었다. 사람들은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막상 말을 걸면 굉장히 친절한 편이었으며,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건축물이 있지는 않지만 공간을 다 채우지 않는 도시 기획으로 더 큰 공간감과 웅장함을 주는 그런 소박한 우월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한겨울 영하 날씨에도 스타킹을 신고 걸어 다니는 그 사람의 강인한 체력과 깡이 마치 담대한 바르샤바의 도시 분위기와 사람들의 성향을 나타내 주는 것 같았다. 그런 진중한 느낌이 나에게는 이 도시에 짧게 머문 시간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고 여행 후에도 계속 특별한 이유나 없이도 좋아하게 만드는 매력이 되었다. 


바르샤바 여행 블로그 1 2 3 4 5 6

   


이전 06화 로마 출국장에서 드라마를 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