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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Oct 05. 2020

결국, 선택은 자녀의 몫

사회적기업을 하면서 본 사회문제

열다섯번째 에피소드다.


우선, 나는 엄마들에게 굉장히 약하다.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밤늦게 전화가 와 "자식 공부를 가르쳐달라. 제발 도와달라"고 하는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한참 어리며 아들 뻘인 나에게 용기를 내서 전화할 수 있는 건 부모라서 할 수 있는 것이다. 난 가난하지만 자식을 가난하게 만들 수 없기에 밤늦게 지친 일을 끝내고서도 용기를 내서 전화를 건다. 나에게 이 용기를 거절할 자신이 없다.


대구 서구 한 어머니가 주말에 나에게 전화가 왔다. 동일했다. 자신의 가정이 학원갈 형편이 안되는데.. 아이는 너무 공부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근데, 그럴 수가 없어 너무 슬프다고 했다. "알겠어요. 어머님. 일단 제가 갈테니 만나서 이야기해요." 내가 전화기를 더 잡고 있으면 어머님이 신세 한탄을 하며 눈물을 흘릴 것 같아 얼른 만나자고 했다.


주말이었지만 옷을 챙겨입고 택시를 타고 대구 서구로 향한다. 내가 과외아르바이트를 무진장 많이 할때도 서구는 큰 수요가 없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낙후된 동네다. 도착한 장소에 내렸을 때 살짝 놀랐던 건.. 정말 재건축, 재개발이 필요해보이는 멘션 형태의 거주지였다. 그 근처 카페에서 보기로 했는데, 사실상 카페라기보다는 가정용 집을 개조해서 만든 커피를 파는 곳이었다. 어머님을 만났고 커피값을 계산하시려 하기에 일단 내가 얼른 계산해버렸다. 그게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았다. 커피가 나왔는데, 참! 신기했던 건 캐릭터가 그려진 플라스틱 컵에 커피가 담겨서 나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담겨진 컵이 모두 다 달랐다. 그만큼, 전문성 갖춘 카페라기보다는 엉성한 찻집이었다.


어머님은 연신 나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자식의 공부를 좀 봐달라 했다.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알겠어요! 그러니 그러지 마세요."라며 어머님을 일으켜 세웠다. 조금 뒤, 그 중학생 아이가 왔다. 수줍은 듯이 천천히 나에게 왔다. "자! 잘해보자" 우리 프로그램에 들어와서 그 중학생 아이가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그 아이는 재밌고 유쾌한 아이였다. 수줍었다는 기억은 자연스레 잊혀졌다.


어느 날, 어머님께서 다급한 문자를 보내며 전화를 요청했다. "네, 무슨 일이셔요? 어머님" 내 물음에 어머님은 약간 흥분한 듯이 말했다. "선생님. 아이가 곧 잘 따라가는 것 같아요. 근데, 공무원이 되어야하는데 계속 다른 이야기를 하네요." 나는 그 이야기를 곰곰히 듣고만 있었다. 계속 어머님이 말했다. "선생님 말은 잘 들으니 꼭 말해주세요. 공무원을 해야한다고요. 다른 생각하지 말라고요." 전화를 끊고 주말이 되어 다시 그 아이를 만났다. 내가 따로 불러 말했다. "넌 공무원이 되고 싶니?" 그 아이는 주저하더니, "아니오. 잘은 모르겠지만.. 공무원보다는 건축가를 하고 싶어요." 내가 말했다. "그래? 그러면 그거 해야지. 일단 학부 수준의 건축 전공하는 대학생부터 만나보자."


그 다음주에 어머님께서 다급한 문자를 보내며 전화를 요청했다.

"선생님!! 아이가 더 이상해졌어요.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거예요?" 나에게 화를 내는 어머님께 진정하시라고 했다. "어머님.! 정말 죄송한 말씀인데 그건 어머님 생각이잖아요." 당황한듯 그냥 듣고만 계셨다. "어머님께선 지금 정답을 말하신다고 생각하시지만, 그건 어머님 정답이에요." "그 아이는 공무원보단 건축가를 하고 싶대요. 저도 그 아이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실제로 나중에 어머님 말씀이 맞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결국, 선택은 그 아이가 하는 거예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장점과 단점에 대한 정보를 주고 믿고 기다릴 뿐이에요." "다시, 그 아이가 건축가를 안하고 싶다고 할 수 있어요. 냉정한 현실을 알면요. 또 다른 걸 하고 싶다 하겠죠?" "그러면 어머님이나 저같은 사람들이 또 그 정보를 찾아주고 겪어보라고 하는 수 밖에 없어요." "어머님께서 지켜보시기에는 힘드신 줄은 알지만.. 결국, 선택은 자녀의 몫이에요."


그래서,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냐구요?

건축가 학부생을 만나고 유사전공인 건축공학 석,박사 과정에 있는 연구실을 가게 해주었다. 그리고 아는 사람에게 물어 현직 건축사무소에 일하는 사람까지 만나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저.. 제가 생각했던 건축가랑은 너무 다른 것 같아요. 못할 것 같아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헛된 수고를 했다고 좌절하지 않았다. 이제 한 개의 가지치기에 성공했을 뿐이다. 최소, 내가 어머님께 순응했더라면 느꼈을 죄책감에서 벗어난 듯 했다. 내가 그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알겠어. 그러면 이제는 뭐하고 싶은 것 같아?"


맞다! 인생에는 답이 분명히 있다. 다만, 수많은 답 중에 나에게 꼭 맞는 답을 아직은 못 찾아서 답이 없다고 표현한 것 뿐이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혼자보단 함께가 낫다. 그리고 답을 찾으면 우리에겐 행복이 가까이 다가온다.



커피 한잔의 여유

국회와 사회적기업, 스타트업CEO, 변호사(로스쿨준비생)


소개      

김인호입니다. 20대에는 사회적기업가로 살았습니다. 30대에는 국회비서관, 스타트업CEO, 변호사로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40대에는 제 생각을 펼치며 사회를 설득시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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