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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Nov 10. 2020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공동체

협동조합을 통해서 본 감정과 이성을 가진 공동체

스물네번째 에피소드다.


사회적기업을 통해 사회에 대한 고찰을 했다면, 협동조합을 통해 내적성장을 이루었다 했다. 그건 앞으로 펼쳐나갈 에피소드를 차근차근 읽어보면 납득이 갈 것이다.


제목으로 표기한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공동체'라는 말은 내가 한 말은 아니다. '짱가'라고 불리는 서울시 마을공동체센터장인 유창복 작가님의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 도서에서 나온 표현이다. 나는 이 표현에 적극 동의하는 편이다. 가장 먼저 표기된 '술'은 막걸리다.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술만한 것이 없다. 술기운으로 말미암아 오해가 있던 일은 풀고 그리고 얼렁뚱땅 동의를 구하는 일도 얼른 처리할 수 있다. '술'을 통해서 공동체에서 소통과 친밀도는 극대화되며 그 관계진전에는 그것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다음으로 표기된 '술'은 예술이다. 흔히, 네트워킹이 아니라 네트웍드링킹을 갖추는 과오를 범한다. '술'이라는 매개체로 소통은 되는데 협업을 하기 위한 관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 것이다. 그것 또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예술로 나아갈 때 공동체 활동은 완성된다.


앞서 말한 에피소드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마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대학 내 주변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마을학교 강사를 하실 분을 섭외했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선생님. 저는 경북대학교를 다니는 XXX입니다. 한번 프로그램 제안서 보시며 고민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를 빤히 보던 오십대 아저씨는 "학생. 앉아봐." 그러고 냉장고로 가서 맥주 한캔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학생. 학생은 똑똑한지는 몰라도 같이 살아가는 자세가 안되어있구만.. 쯧쯧! 맥주 한캔 먹고 가." 영문을 몰라 맥주 한캔을 들이켰다. 안그래도 술이 약한 내가 얼굴이 새빨갛게 되었다. 아저씨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는게 아닌가? "다음에 한번 더 와 봐." 그리고 다음에 한 번 더 갔다. "저번에 말씀드린 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내 물음에, "나한테 자세히 설명해주겠나?" 아저씨에게 자세히 앉아서 프로그램을 설명할 충분한 시간을 얻었다. 왜하게 되었는지, 무엇을 할건지.. "자네, 부모님이 걱정이 많으시겠구만" 송곳같은 질문이었다. "아.. 네.. 뭐 그렇죠. 그래도 일단 해야죠."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지만 다시 중심을 잡고 강단있는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그래, 해보겠네. 무엇을 준비하면 되겠나?" 마을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도자기공예반의 탄생이다.


수개월이 지나 이제는 마을학교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정규학교같이 방학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자! 이제, 끝!" 이렇게 할 수는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다 대학 주변에 대현동공원을 발견하고 "유레카! 이것이다." 쾌재를 불렀다. 그 공원은 항상 대학생들이 술먹고 토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부정을 긍정으로 바꾼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마을축제'였다. 물론 그 축제의 컨텐츠는 빵빵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바로, 마을학교에서 수개월동안 배웠던 강사님, 수강생 여러분들이 있었다. 무려 백여명씩이나!

지역구 구의원님, 동장님, 그리고 주민자치위원회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냉담했다. 또 여기서 막거리인 '술'의 역할은 나왔다. 얼굴이 빨개진 나를 보며 불쌍했던지 다들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특히 구의원님의 니즈포인트는 대현동공원을 활용해서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 그리고 동장님의 니즈포인트는 대학생과 주민들이 협력하는 협치사례! 주민자치위원회 니즈포인트는 경북대학교 학생들이 연계되기에 자녀들과 교육적인 협력관계! 모두 니즈포인트를 조합해서 조정과 타협으로 공동체 속에 "이성"을 찾았다.! 그리고 "감성"적인 마을축제를 개최할 수 있었다. 장소가 있고 주민이 있고 컨텐츠가 있다.! 예술의 '술'을 완성해내었다. 앞서 말했듯이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난 공동체를 실현했다.


나중에 이 축제 이름을 무엇으로할까 정했다. 그래서 정해진 것이 "짝꿍축제"이다. 주민들과 대학생들이 어울려 다른 세대가 상호호혜적인 관계망으로 "짝꿍"을 이룬 점을 표현했다. 자연스럽게, 마을학교 이름도 "짝꿍학교"로 바뀌었다. 그래서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잘 운영되고 있다. 나는 이 과정을 아카이빙을 하기 위해 경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님의 도움을 얻어 "짝꿍지수"라는 지표를 개발해서 매년마다 그 지수를 측정해서 비교하고자 하였다. "짝꿍지수"는 매년마다 개선되어 내가 협동조합에서 이사장을 내려놓고 일반인이 될 즈음에는 5개 부문에서 평균적으로 8.8점(10점 만점)을 기록했다. 공동체는 그렇게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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