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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Aug 19. 2021

누나와 바퀴벌레

바퀴벌레에 관한 어린시절 에피소드

여든네번째 에피소드이다.


오늘 에피소드는 벌레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피하셔도 좋다. 어린시절 살았던 집에는 참 벌레가 많았다. 아마 산 바로 밑에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위기철 작가의 소설 '아홉살 인생'에서 산에서 뛰노는 장면묘사가 나오는데 전혀 기시감이 들지 않았고 내 이야기를 흡사 복사붙여놓은 듯했다. 우리집 뒷편은 산이었고 소설 속에 나오는 산지기로 추정되는 덩치 큰 사람도 어슬렁거리곤 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벌레의 영토에 우리가족이 침범해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누나는 바퀴벌레만 보면 기겁했고 그때만큼은 내게 달려와 도움을 청했다.


나는 신기하게도 징그럽거나 무섭지 않았다. 그저 휴지를 뜯어 정확히 타켓을 포착하고 포획하여 "찍" 눌렀을 뿐이다. 그리곤 휴지통에 넣고 누나에게 가서 "끝났어~"하면서 최종보고를 했다. 누나가 잠잤던 방은 그 전 에피소드에서 언급했듯이 정상적인 공간 형태는 아니었다. 우리 집의 유일한 방이었던 큰방에서 엄마와 내가 잠을 잤고 큰방에서 나와 집 밖에 위치한 세면장으로 가는 길 통로가 방 형태로 착각할 만했고 우리는 그걸 '작은방'이라고 불러 사춘기 시절인 누나에게 양보했다. 그런 형태이다보니 '작은방'에는 유달리 바퀴벌레가 많이 나왔다. 내가 한번은 큰 바퀴벌레 소굴을 소탕한 적도 있다. 바퀴벌레가 크면 날개로 날아다니면서 저항한다. 그러면 휴지로 타켓을 설정해서 포획하는 과정이 만만치가 않다. 내게 달려드는 바퀴벌레라면 몸을 뒤로 빼면서 정확히 손아귀에 넣고 일련의 과정을 마무리해야 한다. 어느날 '작은방' 천장에 뚫린 작은 구멍을 발견했다. 자세히보니 바퀴벌레 출몰 통로같은 곳이었다. 저길 막아야겠다고 생각해 일단 손에 잡히는대로 노란색 박스테이프로 통로를 막아보았다. 실제로 그 후에 바퀴벌레 출몰이 상당부분 줄어들었다. 다만, 흰색 벽지였기에 흰색 박스테이프가 있었다면 좀 더 심미적으로 멋지게 막았을 거라고 노란색 테이핑을 보며 생각했다.


그 다음은 '새벽에 일어난 소동'이다. 큰 바퀴벌레 말고 작은 바퀴벌레가 더 무섭다. 왜냐하면 몸 속에 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벽에 '작은방'에서 누나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큰방'에 있던 엄마와 내가 놀라서 달려갔다. 누나가 귀를 잡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귀에서 무언가가 계속 움직이고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누나를 '큰방'으로 데리고 와 누이고 렌턴으로 귀를 비추니 누나가 거의 발작수준으로 난리였다. 또한 면봉으로 무언가를 빼낼려고 할때마다 누나는 초주검이 되었다. 새벽이었고 우리에겐 응급실을 갈 형편, 상황이 못 되었다. 발만 동동 굴리다가 기지를 발휘한 엄마는 꿀을 가져와 귓구멍 앞에 칠했다. 정말 다행히도! 그리고 신기하게도! 우리의 기다림이 통했는지 작은 바퀴벌레 한마리가 누나의 귀에서 나와 달달한 꿀 근처에서 어슬렁거렸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포착하고 포획하여 저 세상으로 "찍!" 보냈다.


'새벽에 일어난 소동'은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새벽에 그 난리를 치고 누나는 다시 잠에 못 들었으며 엄마는 다시 미싱공장으로 나갈 준비, 나는 학교 마친 후 매일 집에 상주하다시피하는 빚쟁이들과 상대해야 했다. 현재 살고 있는 우리 집에는 바퀴벌레가 없다. 아버지도 함께 살게 되었고 누나는 결혼해서 또 가족을 이루었다. 우리 가족은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운도 따라줬고 그렇게 위기를 극복해나갔다. 하지만, 현재에도 '바퀴벌레'와 투쟁을 벌이고 있는 가족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의 현재가 나중에 웃으며 추억으로 말할 수 있는 과거로 만들어줄 수 있도록 개인의 노력 이외에 공동체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내 고민의 최대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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